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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Sep 16. 2020

키토제닉 다이어트 1년 하고도

두 펭귄의 ‘지방을 태우는 몸’ 실험 종료


키토제닉 다이어트

1년 하고도 4개월 후



올해 6월 1일, 우리는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작년 1월 말에 시작했으니까 1년 하고도 4개월 정도를 했다고 해도... 되려나.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달력 군데군데 내장지방처럼 낀 치팅데이 Cheating Day 때문이다. 우리는 식단과 치팅을 반복하며 1년 하고도 4개월을 버티다, 결국 백기를 들었다. 더 이상 다이어트를 유지하지 않는 게 정신적 · 육체적 건강에 유익할 것 같았다.



상태 보고서


체중변화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만든 2019년 1월 18일부터 6월에 다이어트를 중단하고도 두 달이 지난 2020년 8월까지의 그래프를 보시라. 아델리펭귄은 그나마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총 2kg 정도를 감량했지만, 황제펭귄은 초반에 좀 떨어지다가 오히려 2kg 정도 증량했다(옆에서 황제펭귄이 "어제는 73kg 까지 올라갔었다고..."라고 속삭였다).


비교적 엄격하게 클린 키토를 유지한 초반 1-2개월 동안에는 두 펭귄 모두 3-4kg 정도 감량했었는데, 식단과 치팅의 반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다이어트를 중단하고 나서는 다시 상승세를 탔다. 아델리펭귄의 경우에는 그래도 80kg 선을 간당간당하게나마 넘지 않고 있지만, 황제펭귄의 경우에는 계속 새로운 체중을 갱신하고 있다.


왼쪽이 아델리 펭귄 / 오른쪽이 황제 펭귄


기분변화

식단을 하는 동안 "오늘은 또 뭘 먹나"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고, 막상 요리할 음식을 생각해 내도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식욕 억제에는 확실히 키토제닉이 탁월한 듯). 둘 다 이직과 퇴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기라 먹는 걸로 풀려는 충동이 커서 치팅도 꽤 자주 했고, 시작하면 끝날 줄을 몰랐다.


신체변화

식단을 유지하면 확실히 머리도 맑고 기분도 안정되었다. 식사시간에만 조금 불행할 뿐. 하지만 식단을 유지할수록 식사 자체에 큰 미련이 없어졌다. 그냥 살려고 먹는 기분이랄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살려고 먹는 사람"과 "먹으려고 사는 사람"으로 구분하는데, 우리는 먹으려고 사는 펭귄들이라 이 다이어트가 더 힘들었다. 같은 거 오래 먹어도 안 질리고, 먹으려고 산다기보다는 살려고 먹는 분들은 이 다이어트가 맞을지도 모르겠다(그런 분들은 어차피 다이어트가 필요 없겠지만). 황제펭귄은 치팅을 한 다음 날에 머리가 멍해지는 브레인 포그 Brain Fog 가 심해서 식단을 유지하는 게 더 좋다고 했지만,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는 늘, 항상, 꾸준히, 무너졌다.


운동

다이어트 기간 동안 아델리펭귄은 일주일에 3-4번은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고 1-2번은 수영을 했다. 황제펭귄은 아델리펭귄이 수영장에 끌고 갈 때만 겨우 했는데, 그나마도 연말에 그만뒀다. 아델리펭귄은 그래도 일주일에 3-4번씩 1-2시간 정도 꾸준히 운동을 했지만 그게 감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황제펭귄이 증량한 걸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운동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측정 결과

우리는 클린 키토를 유지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던 초반에도 케톤 수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 케톤 수치가 1.5 mmol/L 정도는 되어야 케토시스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단식을 하루 정도 해도 그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0.5 mmol/L 을 넘는 경우조차 드물 정도로 낮은 수치라서 매일 아침 손가락을 찔러 나온 피가 아까울 정도였다. 왜 그렇게 수치가 나오지 않았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바이오 해킹을 디버깅하기


우리의 실패를 되짚어 보자. 이 식단을 재도전할 가능성이 제로이긴 하지만, 적어도 뭐가 잘못됐는지는 짚어봐야 유종의 미라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1. 반복된 치팅

키토제닉 카페에서 주말마다 치팅한다는 글을 보고 약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정도로, 우리도 치팅을 자주 했다. 치팅을 한 다음 날에는 확실히 몸이 무겁고 둔해진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별로였지만, 「최강의 식사」의 저자처럼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식단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싶을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다(아니면 치팅하는 동안 너무 행복했던가). 한참 유지를 잘하다가 뭔가 좀 될까 싶으면 훅 치고 들어오는 생리나 스트레스 때문에 치팅을 시작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그 문이 열리고 나서였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걸 모두 먹으려고 어마어마한 식단을 소화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지금 아니면 먹을 수 없으니까 먹고. 배가 부르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먹나 싶어 또 먹고. 이럴 거면 차라리 다이어트 접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2. 식단 연구 실패

키토제닉을 하면서 주야장천 삼겹살만 구워 먹을 게 아니라면, 식단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지방 80%, 탄수화물 5%, 단백질 15% 비율을 맞추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인데, 거기에 잘 먹지 않던 야채도 풍부하게 먹어줘야 한다. 그럼 비율만 맞추면 되냐, 그것도 아니다. 생고기 대신 소시지나 미트볼 같은 기성품을 사용하면 안에 탄수화물이 많아 도움이 안 될뿐더러 몸에도 좋지 않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식재료를 쓰다가 갈수록 귀차니즘이 도져서 기성품으로 비율만 대충 맞추게 된 것도 실패 요인 중에 하나다.


3. 갈수록 줄어드는 지방 섭취량

황제펭귄은 처음부터 방탄 커피를 먹기 힘들어했다. 아델리펭귄은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고 했다. 아침에 먹기엔 약간 느글느글하긴 하지만 양질의 지방을 충분히 섭취하는데 이만한 게 없어서 둘이 펭귄 하이파이브를 하며 꾸역꾸역 먹었다. 치팅을 하다가 식단으로 돌아오면 방탄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며 키토제닉으로의 귀환을 위장에 선언하곤 했다. 시간이 가면서 펭귄 하이파이브로 이겨내는데도 한계가 생겼다. 아침부터 느글느글 점심에도 느글느글 저녁에도 느글느글하다 보니, 갈수록 지방 섭취량이 줄어들었다. 포만감을 주는 지방 섭취량이 줄어드니 자꾸만 음식 생각이 났고 그러다 다시 치팅의 늪으로 빠졌다.


4. 수치에 대한 민감증

초반엔 매일 케톤 수치를 측정하면서, 왜 높은 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고심했다. 수치는 어떻게 보면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한데, 내 몸의 기분과 상태를 고려하기보다 숫자에 더 집착했다. 아침에 측정한 값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뭐가 잘못됐을까 머리를 긁었다. 친구가 혈당도 같이 재면 도움이 된다고 해서 혈당 스트립도 사서 같이 기록을 했는데, 숫자가 고집스럽게 매일 비슷해서 점점 흥미를 잃었다. 몸이 기계처럼 단순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동시에 이렇게까지 복잡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나 보다. 식단을 하면서 이런저런 책도 보고 유튜브도 찾아봤는데, 보면 볼수록 내 몸을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력의 문제만은 아니고요


아델리펭귄은 한 때 채식주의에 빠졌을 정도로 육식과 친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두 펭귄과 같이 식단에 도전한 친구 A는 탄수화물을 안 좋아하는 육식주의자라 그래도 수월할 줄 알았다. 사람 심리가 웃긴 게 고기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매일 먹으면 질리고, 원래 탄수화물을 멀리하던 사람도 제한하면 더 먹고 싶어진다.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지력의 부족도 문제지만, 먹지 말라면 더 먹고 싶은 청개구리력의 충만도 문제다.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건강상의 이익을 주는 건 맞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다이어트를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전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다만 우리는 이 식단을 건강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길게 유지할 수 있는 분이라면, 그는 건강한 삶을 얻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 식단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에게 아주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다. 뭘 해도 될 분들이야, 그분들은.


우리를 키토제닉으로 인도한 친구 D도 그 중 하나다. 이 친구는 키토제닉으로 전보다 확실히 건강해짐을 느꼈고, 그게 강한 동기로 작용해서 우리가 겪은 문제를 이겨냈다. 아직도 엄격하게 식단을 유지하고 있는 D는 보통 하루에 한 끼를 직접 해 먹는데,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식단을 연구한다(빵순이인 그녀는 온갖 키토 빵과 키토 아이스크림까지 만들어 먹고 있다). 최근에는 수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연속혈당측정기를 몸에 부착했으며, 계속해서 관련 분야를 파고들며 공부하고 스스로 실험하고 있다.




평생 습관 유지하기


우리는 처음부터 평생 함께할 식단을 찾고 있었다. 작하면서도 극단적인 키토제닉 식단이 그 답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예견된 실패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무심코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뒤통수가 울릴 정도로 충격을 크게 받아서 우리와는 맞지 않는 길로 빠져버렸던 걸까. 일단 키토제닉으로 체중을 감량한 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서 목표한 체중에 도달하면 서서히 키토제닉과 속세의 중간 정도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지금 돌이켜 보면 야망에 가득 찬 생각을 했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몸은 희망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키토제닉을 1년 넘게 끌어오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두 펭귄은 나이를 먹는 만큼 살도 꾸준히 쪘다. 이제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감량은 고사하고 증량조차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식이조절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것이든 평생 유지할 수 없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바꿔 말하면, 한 번 시작한 건 평생할 각오로 임해야 한다. 우리는 키토제닉 식단을 평생 유지할 자신이 없었고, 어떤 종류의 다이어트든 평생 유지할 수 없겠다 싶른 건 앞으로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1년 동안 키토제닉을 하면서 배운 몸에 좋은 습관들은 유지하기로 했다.


- 밤 11시에는 잠자리에 들고 충분히 자기

- 16:8 간헐적 단식 유지하기

- 배고플 때 먹고 자주 몸을 움직이기

- 질 좋은 자연식품으로 요리하기

- 성분 표시를 읽었을 때 알아들을 수 없는 성분이 많은 제품은 피하기


마지막으로, 사람의 몸은 제각각 다 다르다.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과 습관과 사고방식과 그 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으므로 DNA가 같은 쌍둥이라도 건강상태는 다를 수 있다. 내 몸도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는 잘 맞은 방법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오늘 내 몸의 상태와 기분에 집중하고,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거다. 삼십 년을 넘게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새로운 방식으로 몇 개월 산다고 해서 몸이 확 바뀌는 게 가능할까. 물론 잘 바뀌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건 그 사람이 평소 몸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우리의 건강상태는 빠른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못해준 부분이 있다면 더더욱. 결국 키토제닉이 남긴 것은 우리 몸에 더 집중해서 스스로에 맞는 방식을 찾아 건강을 유지하는 실험을 계속 하는 것이다. 그게 때로는 당연해 보이는 운동일 수도 있고, 전에는 없던 키토제닉 같은 방식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서 이 펭귄 바디를 더 사랑하고 잘 보살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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