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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Nov 21. 2015

세상에 없는 걸 세상에 있게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25


세상에 없는 걸 세상에 있게

Melbourne, Victoria

Australia  



너의 작은 스튜디오에 내 커다란 여행 가방을 덜덜 끌고 들어가면, 넌 입이 찢어지게 웃으면서 날 맞아주겠지.


창가에 길게 뻗은 네 침대를 좀 돌리고, 그 옆에 나무로 된 널찍한 책상을 놓아달라고 할래. 그러면 지금껏 가방 속에서 웅크리고만 있던, 그래서 조금은 곰팡내 나는 내 책들을 모두 꺼내 가지런히 꼽아둘 수 있을 거야.


옷장을 대충 나눠 좁은 가방 속에서 꼬깃꼬깃해진 옷들도 잘 개어 넣어두고 나면, 넌 텅 빈 내 가방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놓고 날 떠나지 못하게 하겠지.


너의 작은 소파를 옮기고, 큰 모니터도 옮기고, DVD 컬렉션도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한쪽 구석에 있는 부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간에 일단은 와인글라스부터 사놓을 거야.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늘씬한 샴페인 글라스도.


매일 밤이 파티 같을 거야.



아침에는 꼭 늦잠을 자고 한낮의 햇살에 더 노랗게 보이는 플린더스 역 근처 카페골목으로 가자. 줄지어 있는 카페들을 매일 한 군데씩 순례하고, 한 바퀴를 다 돌면 가장 좋았던 순서대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주중에는 멜버른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진 골동품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쓸데없지만 예쁜 물건들을 구경하고, 주말에는 일찍 일어나 아침에만 여는 캠버웰 선데이 마켓에서 낡고 오래된 물건들을 구경하자.


창가에 놓을 작은 화분도 사야지. 햇살이 너무 잘 들어서 금방 자라 버리면 어떻게 할까.



너는 아직 수백 킬로미터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내 머릿속에선 그런 이미지들이 돌아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공간을 천천히 공들여서 만들고 있어.


그렇게 하다 보면 그런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좀 쉬워지지 않을까 해서.


그런 순간을, 언제쯤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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