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사회성일까
한국 회사에 취직하고 몇 주가 지났다. 한국에서 하는 한국 회사의 사회생활에 아주 조금씩 적응해 가는 중이다. 외국에서 생활을 더 오래 한 내게, 한국 회사에 문화는 좀 특이하다. 나는 본래 호주에서도 유럽에서도 어느 정도 'formal'한 복장규정이 있었기에, 블라우스에 치마나 정장바지, 혹은 원피스를 주로 입고, 로퍼를 신고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복장 규정이 따로 없는, 과한 노출 정도만을 규제하는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걷는데 너무나 불편한 로퍼는 눈에 안 띄는 올블랙 운동화 (슬쩍 멀리서 보면 구두로 봐줄 것도 같은 타입의)로 바꾸었지만, 복장은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남들은 다 그렇게 입더라도, 막상 내가 갑자기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려니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복장은 조금 일을 만만하게 본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데 한 편으로는 다들 캐주얼을 입고 편하게 오는데 나 혼자 블라우스에 정장치마를 입고 스카프를 매고 오니,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얼마나 꾸며도 되는 걸까.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그런 것들이 미묘하게 어렵다. 한국은 돈 얘기에 민감해서 어디에 사는지 월세가 얼마인지도 물으면 안 되고, 주식 얘기도 하는 사람들끼리만 해야 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주식을 하든 안 하든 다 같이 이야기를 하고, 농담하고, 웃고, 집에 농장이 있다느니, 사격으로 전국대회를 나갔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들었었다. 아무도 거기에 대해 이상하다거나, 사회성이 모자라다거나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달에 명품 사는 데 돈을 다 써서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는 이야기를 농담 삼아하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놀릴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사람이 저택에 살든, 단칸방에 살든, 월에 천만 원을 쓰던, 백만 원을 쓰던 그냥 이야깃거리의 하나고, 대수롭지 않은 주제였다. 남의 삶이야 어떻든 다른 생활이기에 듣는 재미가 있고, 가진 걸 자랑하는 게 자연스럽고, 못 가진 걸 부끄러워하거나 가진 걸 부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타인과 나는 분리된 삶이고 영화를 보듯이, 소설을 읽듯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공감이 되면 공감을 하고, 공감이 안되면 그만이고, 그냥 그뿐이었다. 재미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말 하나하나 그렇게 신경을 써 가며 선을 지키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편하게 이야기했고,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처럼 지냈다. 타인의 이야기 정도는 유쾌한 농담쯤으로 넘길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었다.
한국이 라트비아보다 GDP도 더 높고, 인구도 훨씬 많고, 큰 사회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스쳐 지나갈 사람들에게, 혹은 어차피 일할 때만 보고 말 사람들의 이야기에 연연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