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하, 사계절, 2025
동네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창창한 미래 대신 암울한 죽음이 화제가 되곤 한다.
그때 A는 늘 스위스에 갈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상황을 정리한다. 그가 구체적으로 조력사망 기관인 ‘디그니타스’를 알고 한 말인지는 모른다.
우린 그저 안락사라는 말처럼 편안한 죽음을 떠올릴 뿐, 그 선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아픈 이들의 구체적인 고통은 모른다.
이 책은 작가 남유하의 엄마 조순복 씨의 이야기이다. 말기암 환자인 그녀가 왜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같이 고민하고 아파했던 딸이 남기고 싶은 엄마 이야기이자 다큐멘터리이다.
# 엄마의 선택
순복 씨는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람, 삶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65세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1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암이 온몸에 전이되는 바람에 손쓸 수 없는 말기암 환자가 되고 만다.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고 잠을 자다가도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딸은 그 방법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설득하지만 불안하다. 그러던 어느 날 순복 씨가 말한다.
“엄마도 스위스 갈까?”
스위스가 어떤 의미인지 아는 딸은 엄마를 돕기로 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수많은 고민 끝에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한 엄마를 지지한다고.
“나는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 없었다. 오히려 안도했다. 엄마가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혼자 외롭게 떠나지 않아도 되니까.”
녹록지 않은 서류 준비 끝에 디그니타스로부터 그린라이트(조력사망 허가)를 받고 백여 일 후로 디데이를 잡았지만 순복 씨의 상태가 나빠진다. 스위스까지 갈 수 없다면 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디데이는 점점 앞당겨지고 결국 한 달 뒤 스위스 땅을 밟는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내일이 바로 그날인데, 순복 씨가 말한다. 하루라도 빨리 고통을 끝내고 싶은 마음을 알기에 딸은 속울음을 삼킨다.
순복 씨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에서 해방된 편안한 얼굴로 삶을 마친다. 그리고 그가 바라던 대로 그의 유골은 호수와 언덕, 숲이 있는 취리히 근교에 뿌려졌다. 그의 죽음은 의료진이 처방한 치사량의 약물을 직접 마심으로써 죽음에 이른 ‘적극적 안락사’이자 ‘조력자살’로 분류되지만, 저자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과 의미의 왜곡을 배제하고자 ‘조력사망’이라 쓴다고 밝히고 있다. 순복 씨는 자신이 기꺼이 하나의 사례로 기록되길 원했고, 그의 스위스 행과 생전 인터뷰 등은 JTBC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 말할 수 없는 죽음
30년 넘게 산 아파트 이웃에게 순복 씨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의 남편은 “말이 길어지니까” 그녀의 부재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병원에 있다고 얼버무린다. 저자는 엄마의 선택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친지들은 아픈 환자를 말리지는 못할 망정 그런 선택을 도운 이상한 딸이라고 막말을 던진다. 그럼에도 그는 토론회장으로, 국회로 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법이 만들어지기를, 말기암 환자가 더 이상 낯선 이국 땅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순복 씨의 뜻이기 때문이다.
# 생각들
뜻대로 죽기 어려운 세상이다. 오죽하면 <즐거운 어른>의 이옥선 작가가 “내 꿈은 고독사”라고 얘기했을까. 외롭게 죽더라도 병원에서 연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이리라. 그러나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항암과 진통제로 버텨왔지만 온몸으로 전이돼 마치 ‘낡은 봉제 인형’처럼 돼 버린 말기암 환자들. 호스피스 시설은 조건에 맞는 환자들만 들어갈 수 있고, 고통의 끝은 죽음밖에 없다고 여겨질 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 가족들 옆에서 숨을 거두고 싶지만 매일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싶은 유혹에 직면한 사람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디그니타스 같은 기관이 돈만 내면 신청자 누구에게나 조력사망을 허락하는 건 아니다. 제한된 규정이 있고, 환자 스스로 판단할 의지가 있어야 하며, 그야말로 다른 선택이 없을 때로 국한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잔잔하지만 큰 파문을 일으킨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런 논의를 할 때가 아닌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