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3년 간 OO에 갇혀 지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by 작은인간


나는 13년 간 OO에 갇혀 지냈다.

여러분은 위의 빈칸에 어떤 장소가 떠오르나요? 13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 할 수 있겠죠. 그 긴 시간 동안 도대체 어디에 갇혀 지냈던 걸까요? 그래도 돌이켜 보면 아주 절망적인 시간들만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 맞는 것 같아요. 나름의 온기와 설렘, 그리고 가끔이지만 약간의 흥미로움도 찾아왔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곳은 내가 있고 싶지 않은 곳이었어요.


이쯤에서 제가 어디에 그리 오래 갇혀 살았는지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어떤 곳을 예상하셨나요? 혹시 병원? 아니면... 설마... 감옥...은 아니겠죠?(ㅋㅋ) 저 다행히도 나쁜 짓은 안 했고요. 오래 아프지도 않았어요. 제가 13년 동안 지내야 했던 곳은 바로 장애인 시설이었어요. 다수의 장애인을 소수의 인원(비장애인, 복지사)이, '관리'라는 명목 하에 집단으로 수용되었던 곳이었죠. 저는 시설 수용 생존자입니다.


시설 수용 생존자. 몇 해 전 UN에서 발표한 용어인데요. 전 이 단어가 저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생각했어요. 저는 그곳에서 정말로 '살아남아야' 했거든요. 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은 안 하셔도 돼요. 하루 세 끼는 꼬박 나왔으니까요. 전문 영양사도 있어서 먹는 건 잘 먹었어요. 물론 청결을 위해 하루 한 번은 샤워를 했죠. 인간 생존에 필요한 먹고 자고 싸는 건 부족하진 않았어요. 만족했냐라고 물어보면 자신은 없지만요.


배는 곯지 않았지만 배움이 고팠어요. 잠을 청할 이불은 있었지만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어요. 신진대사에 문제는 없었지만 가슴 한 구석이 늘 답답했죠. 시설이라는 곳은 그런 곳이에요. 그저 존재만으로 그런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단체 생활, 엄격한 규율, 통제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기에 전, 나를 잃지 않으려 늘 신경을 곤두 세우고 살아야 했어요. 그야말로 내 자아가 죽지 않도록 생존해야 했죠.


전 그곳에 9살 무렵 맡겨졌어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그저 놀러 가는 줄로만 알고 시설로 향하는 차에서 신나 했던 기억이 나요. 아주 천진하게 말이죠. 그런데 웬걸, 전 그 길로 가족들과 떨어져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먹고 자야 했어요. 아쉬운 일이지만 가족을 탓하진 않아요.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의 현실에 원망은 드네요. 아무튼 전 그곳에서 대학 입학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 13년을 살았네요.


어떤 분들은 오히려 시설이 좋은 곳 아니냐, 장애인들을 위해 지어진 곳 아니냐라고 물어보실 수도 있겠죠. 아뇨. 장애인이 생활하기 편하게 건물을 지어 놓고, 장애인을 돌보는 인력이 24시간 붙어 있다고 해도 주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이 사는 곳은 그곳에 사람이 산다라고 할 수 없을 거예요. 생명이 안전하다 한들─이 마저도 담보 할 수 없지만─ 인격이 존중되지 못하면 사람의 존재 의미를 말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창 클 나이에 전 사춘기를 제대로 겪어 보지 못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반항할 엄두도 못 냈었죠. 그것도 받아줄 부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겠다러고요. 그곳은 상벌 체계가 명확했어요. 들어가자마자 만난 *생활지도교사는 아주 엄격하고 조건부 사랑이 명확한 사람이었어요. 처음에 막 시설에 입소했을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을 몰라 눈치만 보다 바지에 소변 실수를 했었어요. 그날 밤은 옷이 홀딱 벗겨진 채 복도에서 잤어야 했어요. 이후, 그 충격이 13년 내내 따라다녔죠.


다행히도 어두운 날만 있지 않았어요. 나름 예쁨을 받기도 했고, 의사소통이 되는 몇 없는 *이용인이라는 이유로 약간의 특혜들은 있었어요. 예를 들면 내 개인 컴퓨터가 있었다던가. 비교적 외출이 자유로웠다던가. 파마를 할 수 있었다던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이 특혜로 주어졌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하네요.


하지만 아무리 그런 특혜 아닌 특혜들을 누렸다 해도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것에 한계를 느꼈어요. 그곳에 있으면 영원히 누군가의 통제에 의한 삶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 삶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가족조차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됐다고 생각해요. 도저히 우리 가족 여건 상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나를 온전히 케어할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렸을 때의 나는 내 삶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의 삶은 내가 선택하며 살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허락과 결정에 의해 통제되는 삶을 죽을 때까진 하기 싫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대학 입학이라는 명분을 붙들었고, 운이 좋게 제 바람대로 이루어져서 그곳을 빠져나왔어요. 어느덧 제가 지역사회로 나온 지 13년이 넘은 이 시점에 이 글을 쓰게 되네요.




오늘은 그냥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뭐, 어떤 의미를 찾아보자면 장애인 시설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장애인도 같은 인격체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욕구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달까요? 전 그런 인간 존재의 의미가 개인이 가진 능력의 여부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장애의 유(有)/무(無)가, 심지어 장애의 경(輕)/중(重)이 인간의 자격을 논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시설에 약 3만 명의 장애인 분들이 거주하고 있어요. 이미 선진국들에서는 장애인 거주 시설을 폐쇄하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고민과 염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해요. 더 이상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생존'의 문제를 야기하는 일을 되도록 줄여가야 해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세상과 분리된 곳인 시설에 가야 하는 선택지는 더 이상 우리에게 없었으면 해요. 몸이 약해져도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정신이 흐릿해져도 온전한 나로 존중받는 세상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 아닐까요? 그리고 전 그런 세상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 확신해요.




제 글을 찾아와 주시고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이 환경에 짓눌려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위협에 놓인 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읽으시며 작은 용기라도 가지실 수 있길 바라봅니다.


매주 화요일, 마음속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생활지도교사 : 시설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전문 인력.

*이용인 : 시설 거주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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