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극장이 있다면

연극 <젤리피쉬>가 내게 남긴 말 없는 위로

by 작은인간

마련된 자리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난 연극 한 편을 보기 위해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2시간이 조금 넘는 희곡을 보기 위해, 왕복으로 약 6시간의 이동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과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나는 아무리 재밌어도 두 번은 절대 보지 않는다. 그런데 오죽하면 연극이 끝나고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이 ‘또 보고 싶다’였을까. 난 그날 그 연극을 통해 내 지나온 인생을 위로받았고 살아갈 인생에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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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또 공연하게 되면 또 갈거다ㅠㅠ


이 연극을 인스타 릴스를 보다가 발견하였는데 너무 보고 싶어 당장 표를 알아봤다. 공연 종료일이 얼마 남지 않아 남는 자리가 없었지만 다행히 극장 측에 확인해 보니 따로 빼둔 자리가 있다고 했다. 나와 같은 휠체어 장애인과 그 동반인을 위해서는 자리가 있으니 예매가 가능하다고 *접근성 매니저가 알려주었다. 그렇게 극장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하며 예매를 무사히 했다. 극장에 접근성 매니저가 있다니. 이건 말 다 했다.


*접근성 매니저 : 관객이 장애 등의 이유로 연극 관람 시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필요에 따른 연극 관람 접근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지원하는 역할. 난 사전과 당일에 휠체어 좌석 안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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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절한 연극, 그러나 이루어져야 할 당연한 세상


존재가 위험이 되는 세상

이 연극의 이름은 <젤리피쉬>이다. 극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다운증후군 여성의 연애, 자립, 출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여주인공의 남자 상대역은 비장애인이다. 나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이런 연극이 존재한다는 게 기뻤다. 더군다나 배우들 또한 장애 당사자들이라 더 진정성 있게 와닿았다. 한편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이뤄지는 이 비통속적인 사랑 이야기가 대중성을 가질 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 궁금증을 가지고 극을 홍보하는 인스타 릴스의 댓글창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난 어느 한 댓글에 마음이 불편했다.


487325237_17925925173045864_7696219528670300379_n.jpg 오른쪽이 주인공 켈리, 왼쪽이 그 상대역 닐


다운증후군이 자녀를 낳으면 자녀가 다운증후군이 될 위험은 없나요?


‘위험’이라... 어떤 이들에게는 한 생명이 그 자체로, 그들에게 위험적 요소로 느껴지는 걸까? 아, 그 질문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게 될 아이가 이 척박한 세상에 살아가게 되는 것을 위험하다고 본 걸까? 아니면 장애아를 낳게 되는 그 부모의 인생이 위험하다고 한 걸까? 도대체 귀하디 귀한 생명의 무엇이 위험하다고 하는 것인가 이 말이다. 난 참지 못하고 그 댓글에 덧글을 남겼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는 것이 위험한 건가요...?’ 내 덧글은 역시나 부정적인 반응들을 불러일으켰다.


-다운증후군이 좋은 건가요?ㅋㅋ
-지적장애인을 자립하기 위해선 가족의 크나큰 케어가 필요하죠
-장애로 살면 물리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위험한 건 맞음 ㅋㅋ
-위험한 게 아니면 산전검사에서 왜 선별하나요
-다운증후군이 지적장애도 있어서 정상적인 자식을 낳는다 해도 한쪽이 감당해야 할게 더 많긴 하죠.. 주변시선은 덤


비꼬는 듯한 말투, 잘못된 이해, 장애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들... 모든 덧글들에 조목조목 따지고 싶었지만 연극을 보러 가는 것으로 내 투쟁심을 대신했다. 이런 연극이 소위 '잘 팔려야' 세상도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극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당일, 극장 안을 꽉 채운 객석을 바라보며 새로운 세상을 더 선명히 그려보기도 하였다.


이 무대는 모두의 것이다

이제 시선을 돌려 극장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휠체어석은 대여섯 개쯤 보였다. 연극은 대부분 소극장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휠체어가 들어가기 힘들다. 그런데 이 극장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고려한 설계가 돋보였다. 하긴 극장 이름 자체가 '모두예술극장'일 때부터 알아봤다.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다. 무대 위, 양 옆에는 배우들의 대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소리 없이도 연극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 가지만 더 극장에 대해 찬양하자면, 극을 진행할 때의 조명은 일정 조도를 유지한다. 이는 암흑에 공포를 느낄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섬세함은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이미 배우들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 난 마음이 열렸다. 이 연극을 다 보고도 감명을 안 받을 자신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극장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일절 금지였다. 대신 눈으로 더 담고 마음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 어쨌든, 마침내 극이 시작하기 10분 전, 환했던 조명이 일정 조도를 유지한 채 은은하게 드리웠다. 곧 배우들이 하나 둘 무대 위로 올라와 원형을 이루고 서로를 마주했다. 그 둥근 대열에는 모든 배우와 더불어 검은 옷을 입고 헤드셋을 낀 스텝까지 있었고 몸풀기 순서를 진행했다.


그들은 관객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서로에게 집중할 뿐이었다. 이 무대를 만들 동료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의 이름을 불러줬다. 손짓으로 어떠한 기(?)를 던져주는 것 같은 제스처도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은 한두 번이 아닐 텐데도 너무 행복해 보였다. 난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았다. 그리고 내 멋대로 해석한 그 행위의 의미는 이렇다. 무엇을 만든다는 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불러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함께 만들어간다는 건 역할만 있을 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몸풀기 순서마저 연극 무대의 일부로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아, 무대에 대해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 무대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홀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무대 네 귀퉁이 아래에 사람이 앉을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다. 젤리피쉬의 주인공 이름은 켈리, 그녀가 당당히 무대로 걸어 나온다. 다운증후군 역을 맡은 배우 역시 다운증후군 당사자였다. 그리고 주인공과 함께 검은색 옷을 입은 스텝이 따라 나오고 무대 아래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두 손에 대본을 들고 말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스텝분의 명칭이 따로 있었다. 바로 인간 프롬프터였다. 말 그대로 프롬프터의 역을 충실히 소화했다. 단순히 스케치북 같은 데에 다음 대사를 미리 보여주는 식이 아니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의도에 맞게, 인간 프롬프터는 있는 듯 없는 듯했다. 당연하다. 그분은 주인공이 아니기에 공연 중에 눈에 띄면 안 될 터이다. 그러나 실제 주인공이 필요한 순간에 무대 밑에서 켈리가 빛을 잃을 뻔한 순간마다 다음 대사와 지문을 읽어 주었다.


�연극 [젤리피쉬 ���������]� 연극 젤리피쉬 속 프롬프터❝프롬프터가 배우와 함께하는 순간이불완전함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연극적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라면❞전통적인 프롬프터 방식과 다른새로운 프롬프터 개념을 만들어낸 연극 젤리피쉬-#연극젤리피쉬2025.03.18 - 04.13모두예술극장.jpg
�연극 [젤리피쉬 ���������]� 연극 젤리피쉬 속 프롬프터❝프롬프터가 배우와 함께하는 순간이불완전함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연극적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라면❞전통적인 프롬프터 방식과 다른새로운 프롬프터 개념을 만들어낸 연극 젤리피쉬-#연극젤리피쉬2025.03.18 - 04.13모두예술극장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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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과 연대를 구성하는 새로운 방식


켈리역을 맡은 배우분은 그나마 다운증후군 장애인 중에서도 지적 기능이 좋은 편에 속해 보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사는 외우셨지만 그래도 장애 특성상 완벽하게 대본을 숙지하는 것이 힘들었나 보다. 어떻게 인간 프롬프터라는 역할을 만들 생각을 하였을까. 난 연극을 구성하는 이러한 모든 것에서 이 공연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극의 내용도 너무 좋았지만 오늘은 무대를 만드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여 글을 써보기로 한다.



위험이 아닌 가능성을 보기

사람들은 종종 ‘위험’이라는 단어로 존재를 가늠한다. 살아가는 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주변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를 기준 삼아 어떤 생명을 미리 판별하려 한다. 하지만 <젤리피쉬>는 말한다. 위험은 존재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회의 시선 속에 있다고. 무대 위의 켈리와 그녀를 바라보는 수많은 손길은 그 증거였다. 연극은 결핍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결핍 없는 존재란 애초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이었다. 켈리와 함께 등장한 인간 프롬프터는 누군가의 삶이 계속되도록 곁에서 조용히 돕는 이들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 모습에서 생명이 얼마나 단단하게 피어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난 그날의 그 댓글을 조용히 반박해 본다. 연극을 통해 나는 위험을 목격한 간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았다. 모든 존재가 제 자리를 허락받는 세계, 그것이 이 연극이 내게 보여준 가장 큰 위로이자 응답이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분할선 너머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젤리피쉬>는 그 물음에 연극이라는 방식으로 답했다. 한 생명이 위험이 아닌 선물로 여겨지는 사회, 그곳에서 비로소 예술도, 삶도, 사람도 제대로 빛날 수 있다는 걸 나는 믿고 싶어졌다.




오늘도 제 글을 읽는 데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존재가 위험하다고 느껴지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우리가 가진 위험성은 또 다른 가능성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매주 금요일, 기억이 추억으로 덧입혀지는 시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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