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각자의 노래로

당신이 부르는 그 노래가 귀하다

by 작은인간

흥겨운 소리들이 뒤섞여 흐른다. 심상치 않다. 단번에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난 그 소리들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다. 내가 집중한 소리 뒤에는 노래 반주가 깔렸다. 그 위로 마치 어린아이가 세상을 향한 힘찬 생명을 알리는 듯한 소리들이 지나갔다. 비록 반주와 함께 발맞춰 춤춘 소리는 아니었지만, 반주가 더 풍성히 느껴지도록 또 다른 음표들을 찍고 있는 소리였다. 그렇다. 분명 그것은 노래였다.


그 노래는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들렸다. 난 장애인 분들을 만나 상담을 해드리기도 하고, 그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그날은 여러 유형의 장애인 분들이 모여 노래 부르기 활동을 하는 날이었다. 참여자 분들이 언젠가 한 번 노래를 같이 불렀으면 좋겠다 하여 모임을 기획했다. 노래방을 가면 좋으련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있고 1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하는 공간을 찾기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센터의 활동실에서 TV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다행히 센터에 엠프가 있어 간이(?) 노래방을 만들었다.


그런데 모임을 준비하며 걱정이 한 가지 있었다. 참여자 분들의 언어 발화 기능이 저마다 달라서 노래를 부르기 쉬운 분들도 있고 어려운 분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모임에서나 그렇겠지만 특히 장애인 분들이 모이는 곳에서 소외는 더더욱 민감히 예방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험의 제한을 두는 건 더더욱 지양해야 한다. 중요한 건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균등한 기회의 조건을 마련하는 상상력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번 활동도 걱정은 됐지만 우선 진행하기로 했다.


드디어 모임 날짜가 되었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모임에 잘 나오지 않던 분도 보였다. 다들 기대가 크셨나 보다. 나는 여전히 걱정을 안고, 긴장한 채 모임을 이끌어 나갔다. 앞서 말한 상상력이 도저히 내 머릿속에서 피어나지 못한 채 모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는 한 톤 올라갔고 나만 알 수 있는 떨리는 음폭으로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불러가며 부르고 싶으신 노래를 물어봤다. 역시 걱정대로 발화가 어려우신 분은 노래를 부르길 꺼려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같이 부르자고, 옆에서 도와 드리겠다고 하며 평소에 좋아하시는 노래를 핸드폰에서 찾아 유튜브에서 노래를 틀었다.


먼저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시는 분의 트로트 열창이 시작됐다. 그렇게 한 두 곡 흥이 달아올랐을 때 드디어 한 분이 곡을 요청하셨다. 이 분은 평소 자신이 발화가 안된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던 분이다. 그래서 평소 모임에서도 잘 안 나오셨다. 그런데 이번 활동에 나오신다 하여 속으로 의아해했었다. 겨울왕국 ost인 <Let's it go>를 부르시겠다고 했다. 난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대신 불러 드려야 하나 싶었지만 혼자 하시겠다 하여 존중해 드렸다. 드디어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고 난 궁금증과 염려를 뒤로 감춘 채 그분이 노래를 시작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분의 노래가 시작된 순간 내 안의 걱정덩어리들이 녹아 없어졌다.


사실 그 노래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멜로디의 모양과는 달랐다. 그런데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렛잇고 중에서 진정성만큼은 가장 뛰어난 노래였다고 자신한다. 그 순간 그분은 이 노래에 진심을 다하셨다. 한 편의 공연이 시작된 것처럼 느낄 정도로 기운이 상당했다. 비록 휠체어에서 팔을 휘젓는 정도의 몸짓 밖에 안되었지만 그 공간을 다 휘어잡을 정도의 열정이었다. 들리는 소리의 모양은 단조로운 것처럼 보였으나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모양은 너무나 다채로워서 내 귀에 저장해 놓고 싶은 음표들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열기를 내뿜으시고 난 뒤, 그분은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라는 곡을 부르시며 발라드의 깊은 감성을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열창하셨다.




그날의 노래는 어쩌면 세상 사람들 기준에서는 서툴고 삐걱거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 어떤 무대보다도 진실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단순한 음의 흐름이 아니라, 그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완벽한 선율과 정답 같은 리듬을 좇지만, 사실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답 바깥에서 흘러나오는 한 사람의 고유한 소리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조금 느려도, 흔들려도, 음이 맞지 않아도 그 안에는 각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단순한 몸짓 같아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진심은 언제나 다채롭다. 결국 삶이란 완벽한 화음을 찾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고유한 노래를 들으며 함께 울고 웃는 길 위에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