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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omee Dec 10. 2017

베를린의 도시 텃밭 '공주의 정원'

베를린의 어반가드닝 문화 들여다보기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삭막한 도심 속 자연만큼이나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유럽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비교적 저렴한 물가와 편리한 인프라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자원 이외에 베를린은 독일에서 가장 높은 녹지 비율을 자랑하는 대도시입니다. 약 2500여 개의 공공녹지와 휴식공원을 갖추고 있으며 도시 면적의 25%를 숲과 공원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풍겨져 오는 역동성의 한편에는 풍부한 녹지와 휴식공간에서 즐기는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베를린 공식 페이지의 문화·여가활동 부분에는 심지어 도심 속에서 텃밭을 가꾸는 Urban Gardening(도시 원예) 파트가 클래식, 오페라, 클럽, 영화, 박물관, 미술관등 문화 카테고리 한가운데에 단일 항목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를린 도시 곳곳에 지역공동체가 함께 가꾸는 도시 텃밭이 일반화되어 있는데요. 주목할만한 점은 베를린에서 이 마을 텃밭은 단순히 휴식처를 제공하는 녹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문제, 나아가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인 공간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텃밭도 가꾸고 사람도 가꾸는 공간


베를린의 도심 한복판 크로이츠베르크에 위치한 '공주의 정원(Prinzessinengärten)'은 도시 텃밭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베를린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는 관광지가 될 만큼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축구장 정도 크기의 '공주의 정원'은 2009년 이전까지 버려진 빈 공터였습니다. 쓰레기로 가득 차고 마약 중독자들이 드나들던 말 그대로 버려졌던 공간이었죠. 차량 도로로 재개발될 예정이었던 이 공간은 2009년 '노마딕 그린(Nomadisch Grün)'이라는 비영리업체에 의해 각가지 농작물로 가득한 마을 정원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시작은 1년짜리 임시 계약의 마을 텃밭이었습니다. 당시 150명에 달하는 동네 자원봉사자들은 공터에 널브러진 쓰레기들을 치우고 정리했으며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함께 정원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퇴비 회사는 퇴비를 무료로 제공하고 원예사는 원예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주민들의 노력은 빛을 보게 됩니다. 1년짜리 임대 계약으로 시작한 것이 그다음 해에 다시 2년이 연장되고, 이후 2012년 여름에 부지가 다시 판매되야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무려 3만 명 이상의 지지자들이 공주의 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결과 임대 계약은 2018년 12월까지 연장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모여 1년짜리 임대계약이 10년 가까이 공동체 텃밭을 일굴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시점 이후의 프로젝트의 연장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정원의 임대 비용과 기타 부대 비용은 공주의 정원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혹은 농작물 판매로 벌어들이거나 텃밭 이용료와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어반가드닝 워크숍과 문화이벤트, 정원 내에 위치한 카페와 레스토랑 등부대시설은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 공주의 정원을 찾는 사람들에게까지 열린 공간을 제공하며 텃밭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다른 도시 텃밭 중 '베롤리나 세대 정원'같이 세대 간의 화합의 공간을 만드는 곳도 있습니다. 어린이 보호시설 근처 오래된 주거지역에 위치한 베롤리나 세대 정원은 노인들과 어린이들에 의해 함께 운영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작은 관목과 아름다운 꽃, 나무들로 가득한 이 정원은 자연 생태계를 직접 경험하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두면서도 세대 간의 통합과 문화적인 상호 교류를 지향합니다.


 또 다른 형태의 이색적인 도시 텃밭을 찾아볼 수도 있겠습니다. 땅 위가 아니라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도시 텃밭입니다. 도시에 가드닝을 위한 공간이 점점 줄어들자 건물의 옥상이 공동 텃밭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옥상정원이자 펍이기도 한 크룽커크라니히(KlunkerKranich)입니다. 주차장 건물 꼭대기를 개조하여 만든 이 공간의 목적은 도시를 녹색화하고 사람들을 모아 참여를 이끌어내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도시 농업, 지속가능성, 농업생태계, 생물의 다양성과 같이 도시의 생태 환경을 둘러싼 사회문제에 공감하며 새로운 형태의 도시 텃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루프탑 바이자 옥상정원인 베를린의 크룽커크라니히(Klunkerkranich)




독일 도시 텃밭의 역사


도시 텃밭의 역사는 19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급격한 도시의 산업화로 인해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굶주린 사람들에게 부족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도시텃밭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을 겪으면서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려되기도 했죠. 시는 도시의 가난한 서민들에게 일정한 규모의 토지를 제공한 다음, 그들이 먹을 야채를 직접 경작하도록 했습니다. 개인 혹은 공터의 텃밭에서 식재료들이 경작되기 시작했고 1951년부터 1972년 사이에 유럽의 도시 텃밭은 점차 대중화되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도 독일은 150년 정도의 오랜 도시 텃밭의 역사를 가집니다. 그 역사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의사였던 슈레버 박사(Dr. Schreber) 의해 진행된 '시민농원운동 (allotment garden movement)'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슈레버 박사는 평소 환자들에게 '오로지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흙에서 푸른 채소를 가꾸라'는 독특한 처방을 내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삭막한 도시 환경 속의 나쁜 공기와 운동 부족, 자연과 먼 일상에서 오는 부작용을 잘 알기 때문이었겠죠. 슈레버 박사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공기와 의미 있는 여가 활동을 제공하기 위한 장소로서 도시 텃밭의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슈레버 박사의 이름을 따와 'Schreber Garden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과일나무와 꽃, 잔디, 야채밭의 다양한 형태를 띠는 도시 텃밭은 독일 연방의 시민농원법(German Federal Allotment Garden Law)에 따르도록 되어있으며 대부분의 부지는 시 소속이거나 혹은 개인, 교회의 소속된 땅입니다. 이 도시 텃밭들은 시민 단체에 의해 직접 운영됩니다. 텃밭 이용자들은 이 단체에 일정한 멤버십 비용을 지불하고 텃밭을 대여하게 됩니다. 관련 법에 의하면 반드시 텃밭 부지에 클럽하우스나 놀이터 같이 주민 간 사교활동을 위한 부대시설과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 같은 조항을 통해 도시 텃밭의 기능이 이웃 공동체와 네트워킹 수단으로써 목적을 가진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도시에 텃밭이 필요한 이유


오늘날의 대도시는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먹거리가 부족해 기근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넘치는 풍족함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맞겠습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도시 텃밭의 필요성은 여전합니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인간은 생활의 안정과 여유를 찾았지만 과도한 도시 개발, 가족의 해체, 개인주의의 심화, 자연 훼손, 녹지 공간의 부족 등 도시문제라는 또 다른 병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결과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키워드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대안적 방법으로써 도시 텃밭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듯합니다.


1. 지속 가능한 생태도시를 만드는 출발점

도시 텃밭은 중요성은 베를린 정부의 도시녹지 개발계획에 따라 강조되기도 했습니다. 베를린의 녹지 구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과열된 온도를 낮추는 데 큰 도움이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도심에서 식물을 재배하고 가꾸는 것은 삭막한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생물의 다양성 보전, 채식주의, 업사이클링, 환경보호 등의 활동을 충분히 가능하도록 만듭니다. 경제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족·자정능력을 지닌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시도가 되는 것이죠.


2. 자연과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공간

도심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젊은 가족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자연 체험 활동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원예활동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만의 취미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의 관심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책과 모니터 앞을 벗어나 집 앞에서 식물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직접 흙을 만지며 채집해 먹기도 하는 아주 좋은 경험이될 수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메마른 일상에서 벗어나 생기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유로움을 제공하며 삶과 밀착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3. 도심 속 마을공동체

삭막한 대도시에서 주민 간의 소셜라이징 활동을 북돋는 마을공동체의 역할도 합니다. 다문화의 용광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문화가 공존하는 베를린은 한편으로 개인적인 소외감이나 문화 간 갈등, 사회적인 단절·부적응과 같은 문제가 잇달아 발생합니다. 도시 텃밭에서는 문화의 차이가 오히려 서로의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화합하는 큰장점으로 작용합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농작물과 원예 노하우 등을 함께 공유하고 배우면서 공동체의소속감과 이웃 간 화합 같은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난민, 장애인, 정신 약자, 실업자, 한부모 가정 등 사회적으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동 텃밭은 관심과 도움을 나누는 곳이자 사회 활동의 한 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도시 여가 활동의 한 부분으로 어반 가드닝의 인기가 증가하는 만큼 도시 텃밭 운영은 갈수록 장려되고 있습니다. 베를린 도시 텃밭의 분양 대기자 명단이 이미 길게 늘어서있다고 하니 그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유럽 도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어반 가드닝이 이렇듯 거주민과 도시 전체에 가져오는 이점을 생각해보면 믿고 만들만한 대안적인 문화 공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집 근처에 있는 마포의 경의선 숲길은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습니다. 도시재생 차원에서 폐철로 부지를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경의선 숲길 앞 공터에는 '늘장'이라는 문화 장터가 있습니다. 주말에는 플리마켓이 열리고 평일 저녁에는 공연 등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그곳에서 언제부턴가 한가운데에 한 두 평 남짓한 텃밭이 생겼습니다. '염리동댁', '대흥댁' 같이 동네 이름을 딴 팻말이 어찌나 정겹던지요. 텃밭에 가득 핀 해바라기 사이로 해바라기보다 더 화려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으신 동네 아주머니께서 자리에 구부리고 앉아 텃밭을 가꾸는 모습은 미소가 절로 나는 풍경이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5차선 거리에 차가 밤낮없이 쌩쌩 달리고, 높은 회사 빌딩과 회사원들이가득, 밤과 새벽에는 술 취한 행인들이 많아 늘 불만이었는데 늘장과 경의선 숲길의 개장은 안쓰럽게 메마르고 갈라진 곳에 기적같이 솟아난 오아시스 같았습니다.


공주의 정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문득 늘장의 조그마한 텃밭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정원과 같은 도시 텃밭이 서울 곳곳에도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봤습니다.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부족한, 아니 오히려 마주치면 살짝 민망하곤 했던 동네 이웃들이 모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텃밭을 가꾸는 초록빛의 따뜻한 상상을요.





공주의 정원 공식 웹사이트

prinzessinnengarten.net/

베를린의 어반가드닝 프로젝트 더 알아보기

 www.berlin.de/kultur-und-tickets/tipps/2407321-1678259-urban-gardening.html

www.urban-gardening.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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