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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석희 Feb 11. 2017

괜찮지 않은 일

<와일드>

며칠 전 빙부상을 치렀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감정을 추스릴 새도 없어 아내는 아직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다. 난 지난 3년 새 두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내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까닭에 임종을 지킬 수 없었고, 장인어른은 입원 열흘만에 돌아가셔서 아내와 함께 열흘간 간병하며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한이었는데 막상 실제로 임종을 지킨다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게 더 괴롭냐고 물어본다면 답하기가 불가할 정도로.


대부분의 머리 굵은 아들이 그렇듯이 난 아버지와 그리 살갑지 않은 사이였다. 부자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도 있었고 하도 티격태격하는 바람에 끝내 화해도 못 한 채 보내드렸다. 그게 너무 한이 돼서 장인어른께는 더 잘하고 싶었다. 하늘이 준 두 번째 기회로 생각했달까. 장인어른도 당신의 아들에게는 서운한 것도 있으시고 서먹한 것도 있으셨지만 사위는 마냥 예쁜 사위였다. 한국만 이런 걸까? 내 아버지도 아들들과는 서먹한 관계였고 사위와는 막역하셨다. 나도 그런 까닭에 5년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인어른께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족들이야 미운 정도 있고 고운 정도 있겠지만 내겐 고운 정만 주시던 분이다. 어떤 면에선 아버지보다도 가깝던 분.


내 아버지의 장례 때는 어머니가 같이 사고를 당하셔서 중환자실에 계셨고 자식들끼리 상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장남이란 괜한 책임감에 마음껏 울 수가 없었다. 사고 수습을 하고 상을 다 치르고 고인의 유골을 안장하고 아버지 집에 짐을 내리러 들어가서야 터져 버렸다. 이제야 할 몫이 끝난 것 같아서. 태어나 그렇게 크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질색하는 가부장 문화에서 자란 영향이 이런 데서 나오는 걸까. 상주라고 마음껏 울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상주였지만 처남이 있어서 그랬을까. 정말 많이도 울었다. 병원에서도 빈소에서도. 밤새 영정 앞에 앉아서 술을 따르고 또 따르고. 약주를 그리 좋아하시던 분이셨으니. 사위랑 마지막으로 많이 드시자고.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지금 아무리 슬퍼도 조만간 그 슬픔을 제쳐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히 지운다는 게 아니라 마음 한켠으로 밀어놓을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알게 된다. 잠시만 버티면 이따금 조금씩은 웃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슬픔에 잠식되는 시간보다 슬픔을 밀어놓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을.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느끼는 바는 다르다. 유독 눈물이 많은 아내를 달래야 하는 순간이 많은데 아내를 안아주고 토닥이면서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왔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일은 전혀 괜찮지 않은 일이라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다리에 생채기가 난 정도나 괜찮은 것이지. 생각해 보니 전혀 괜찮지 않은 일이었다. 슬퍼해야 하고, 괜찮지 않아야 하고, 울어야 할 일이다.


내 빙부상과 이틀 차이로 지인이 부친상을 당했다. "힘내라, 툭툭 털고 일어나라, 괜찮다"란 위로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괜찮지 않은 일이므로.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사소한 것에도 위로받는 하루가 되시라" 인사했다. 지나가는 바람 한 조각이 얼굴에 닿아도 위로로 느껴지기를.


당신과 우리 모두 괜찮지 않으므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가장 위로가 될 영화로 늘 <와일드>를 말해왔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니 그 영화를 꺼내어 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역시나 말은 말일 뿐이다. 마음 한 구석이 부서져 있는데 마음이 완전히 아스라진 사람의 여정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습에 내가 위로가 될까? 그나마 위로가 된다면 마지막 대사일 거다. 셰릴처럼 PCT를 걸을 순 없지만, 내 마음을 누를 것 없이 이대로 실컷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또 웃고 사랑하며 살다보면 언젠가 또 좋은 얼굴로 그분을 만날 것이다.


흘러가도록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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