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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석희 Mar 05. 2017

번역가님, 오타 찾았어요

얼레리꼴레리

이젠 번역가와 관객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을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오래전에 어떤 영화 커뮤니티에 썼던 글의 일부다. 이때는 영화번역가라고 할 것도 없었고 주로 케이블 방송을 작업하던 시절. 관객들은 번역가들을 불신했고, 번역가들은 관객들이 뭘 몰라서 트집을 잡는다고 무시했다. 내가 영화번역가가 된다면 둘 사이의 가교가 되고 싶단 생각이 든 것도 이쯤이다.


여러 루트로 관객들과 얘기를 해온 덕인지 요샌 그나마 예전보다 친근한 관객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내가 작업한 영화에서 오타나 오역이 발견됐을 경우 어김없이 SNS 메시지나 피드백 이메일이 오는데 어투가 무례하다거나 삭막하지 않다. 물론 무례한 메시지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친구처럼 메시지를 보낸다.


번역가님! 이번에 ㅇㅇ을 봤는데 오타 찾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와 같은 얼레리꼴레리 식이랄까.


그럼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영화에 대해 한두 마디 더 대화를 하기도 하고 2차 판권에 나갈 자막은 말씀드려서 수정해 보겠다고 답한다. 일단 이대로라면 내가 의도하던 관객과의 친밀감은 얻은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인 접촉으로 서로의 친밀감을 쌓는 경우보다 관계가 단절되어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그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내밀 수가 없다. 트위터처럼 단문으로 질의가 오가는 SNS가 도움이 꽤 된다고 생각했는데 익명이라 그런지 대화가 아니라 감정을 배출하게 되는 예가 많아 오히려 소통에 방해가 돼서 계정을 닫은 상태다.


요새는 세 줄만 넘어가도 읽지 않는 세상이긴 하지만 긴 글을 나누고, 긴 글이 주는 비교적 안정적인 틀 안에서 깊은 얘기들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짧게 짧게 단문으로 소통을 하기보다, 오히려 반대로 길고 깊은 대화의 장을 열어 개개인과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 구닥다리에다가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이게 낫지 않을까.


번역 관련된 책은 제안이 계속 들어와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요새 같아선 하나 쓰는 게 낫겠단 생각도 든다. 번역 후기 말고 작업 에피소드 같은 것들로. 이번 <로건>의 스페인어 자막 누락 같은 부분처럼 관객들이 몰라서 오해하는 것들도 많고, 그 외 관객들이 영화 번역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것들도 꽤 있다. 책 한 권 분량으로 썰을 풀면 적어도 독자들의 자막에 대한 불만도 많이 줄고 외화를 보는 시야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영화 번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들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고 싶은 거지. 그런 편견은 번역가들에 대한 편견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니까.


다행히 내가 가지고 있던 관객에 대한 편견은 이미 많이 깨진 상태다. 작품마다 너무나 친절하고 유익한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어서 필모가 늘어날수록 배움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번역가를 무턱대고 싫어하는 게 아니다.




So we shouldn't judge, we shouldn't fight,
because in the end... in the end, none of it matters.


편견을 갖거나(재단하거나) 누구와 싸우지 마라
결국에 가면 다 부질없단다

<해피 홀리데이>에 시한부 환자로 출연했던 빌리 코널리가 손녀에게 해주는 이야기다. 결국에 가면, 정말 결국에 가면 모두 부질없는 갈등이다. 이젠 정말로 서로 손을 내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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