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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Oct 31. 2020

여덟 살의 사랑, 뭐가 잘못인가요?

어쩌다 부모 in 상하이


큰 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일 년 동안은 휴대폰 벨소리나 메시지 알림 소리만 나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오늘은 무슨 사고를 친 걸까.   
지금 큰 아이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상상이 안 가는 일이겠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는 뛰어놀고 장난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였다.
 


시작은 우리 아이가 학교 복도에서 뛰어다닌다는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부터였다. 수업 시간에 짝꿍과 시끄럽게 했다고 연락이 오는 날도 있었다.
심하게는 점심시간에 축구장 골대 그물 위로 올라간 것, 제일 먼저 올라간 아이라고 지목받아 더 혼이 났다.

화장실에서 친구들이랑 물 뿌리며 장난쳐서 화장실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어 반성문을 쓴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짧은 중국어 실력이지만 최대한 진심을 담아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집에서 잘 가르치겠다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안 그래도 새내기 학부모로서 매 순간이 긴장인 데다 외국인으로서 위축되는 것도 있어 충분히 심난한 시기였다. 휴대폰 화면에 담임 선생님이라고 뜰 때마다 심난함은 공포로 변했다. 아이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혼이 났다. 나는 아이에게 한국인의 이미지까지 들먹이며 부담을 주고, 제발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협박조의 부탁을 했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눈물도 흘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 알림을 보고 채 읽기도 전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감지했다.

장문, 장문의 메시지였다!


사건은 이러했다. 우리 아이가 같은 반 남자아이의 책상 안에 ‘I love you’라고 쓴 쪽지를 넣었다. 그 아이가 그 쪽지를 집에 가져갔고, 아이의 엄마가 쪽지를 보게 된 것이다. 그 아이의 엄마는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서 이 쪽지를 문제 삼은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말하길, 그 남학생의 엄마가 아직 어린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은 남학생도 학교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아이를 집에서 지도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받은 당시 나의 심정을 추측해보길.
난 담임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덟 살 아이의 ‘I love you’가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나 같으면 우리 아이가 그런 쪽지를 받아오면 새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오히려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큰 아이가 풀이 죽은 채 내 눈치를 살폈다. 아마도 이 문제로 담임 선생님한테 또 혼이 난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불러다가 ‘I love you’는 어른들이 사용하는 말이니 나중에 커서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네가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무서워한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 집은 자기 전에 하는 인사가 “굿나잇, 아이 러브 유”였다. 유치원 다니면서 우리 아이와 친구들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I love you’라고 쓰고 예쁜 그림도 그린 쪽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우정을 확인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은 여덟 살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 과잉해석을 하고 호들갑스럽게 반응할 일인가. 우리 집 굿나잇 인사도 될 수 있는 말을 그렇게 취급하다니. 도대체 우리 아이의 ‘l love you’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 남자아이의 엄마와 담임 선생님에게 화를 내고 따지고 싶었다. 어른들의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으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우리 아이의 마음을 말이다. 속이 많이 상했다. 그리고 이런 교육 환경에 우리 아이를 계속 두어도 될지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교장을 찾아가 따지고 싶은 일이나, 사실 그 남자아이는 바로 교장의 아들이라는 웃픈 상황.
 


나도 담임 선생님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자주 주고받았던 쪽지 이야기, 가족들과 자주 사랑한다고 표현을 하는 우리 집 분위기를 설명했다. 우리 아이의 사랑 표현은 친구의 우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친구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겠다고도 덧붙였다.

담임 선생님도 우리 집 분위기가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며 잘 알았다는 쿨한 답변을 보내왔다.
 


중국 학교를 보내는 한국 학부모들은 참 많이 참는다. 억울한 일도 화가 나는 일도 그냥 덮어버리고 며칠 속앓이로 끝내버리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중국어가 서툴러서 전달이 어렵기도 하고, 한국과 학교 분위기가 다르다 보니 행여 일을 더 크게 만들어 아이에게 또 다른 피해로 돌아올까 봐 하는 앞선 걱정이 크기도 하다.
나 역시 그냥 알았다고 주의를 주겠다고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에게 사랑을 왜곡되게 가르치는 상황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도 없이 기가 죽고 눈치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곳이 중국이라도, 적어도 아이 학교는 외국
인 학생들도 다니는 국제부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임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 속이후련했다. 이 후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몇 번은 더 억울한 상황에 대해 담임 선생님과 장문의 메시지를 오가거나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늘, 참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길 잘했다는 쪽이다. 그렇게 서로를,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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