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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Jan 27. 2021

21세기 엄마에게도 필요한 성교육

어쩌다 부모 in 상하이


 
큰 아이가 5학년 때의 일이다. 같은 반 학부모 중 가깝게 지내는 대만인 엄마 두 명이 점심 식사를 하자고 연락을 했다. 상의할 내용이 있다고 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날 만난 한 여학생 엄마가 아이 책상을 청소하다가 일기장을 발견했고 그 일기장 안에 남녀가 성관계하는 그림이 여러 개 그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아이에게 그런 장면을 어떻게 그렸는지 물었더니 학교 친구에게 들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학교 친구는 일본인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자기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반 친구들에게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한다. 왜 안 그랬겠는가. 그 또래 아이들이 가장 흥미로워할 주제인데
 


대만 엄마들이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우리 아이가 그 일본 학생과 스쿨버스에서 같이 앉고 학교에서도 앞뒤로 앉아 성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염려에서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을 상의하자고 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아이가 나에게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라 그 자리에서 처음 듣게 된 것이다. 우리가 상의해야 할 대책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엄마가 열두 살 자녀에게 구체적인 부부관계까지 설명하는 성교육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했다. 그렇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또한 한 일본 가정의 문화인 것을. 하지만 나랑 생각이 달랐던 두 대만 엄마에게 내 입장을 자신 있게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그때를 계기로 아이들의 성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냥 듣고 흘려버렸다”라고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던 것이 내겐 회피의 구실이 되었다.
둘째 아이의 목욕을 담당하던 남편이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남편의 신체 일부를 빤히 쳐다본다고 말했을 때도, 집에 있는 백 여권의 WHY 시리즈 중에 ‘음식과 요리’, ‘해부학’과 더불어 ‘사춘기와 성’이 가장 낡은 책이 되었을 때도, ‘소중’이라고 얼렁뚱땅 가르쳐 준 성기의 진짜 이름이
‘소중’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고 나에게 물었을 때도, 난 일관되게 그 싸인들을 회피해왔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진 못한 내가 아이와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내 교육부터가 시급했다.



몇 년 전, 한국 사회가 미투 운동으로 들썩이면서 성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새삼 강조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케이블 채널 TV 프로그램에서 한 강사가 성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강사는 아들이 첫 몽정을 했을 때 ‘존중 파티’를 해 주었고 당시 찍었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아들에게 첫 몽정은 엄마 몰래 팬티를 빨아야 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어서 엄마에게 알려 축하를 받아야 할 일이었다. 성인이 된 아들과 강사가 함께 자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유튜브 동영상은 조회수 60만이 훌쩍 넘는 아주 유명한 동영상이 되었다.
 


그 강사가 쓴 책 ‘움츠러들지 않고 용기 있게 딸 성교육하는 법’을 읽으면서 나의 공부도 시작되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페기 오렌스타인이 쓴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학생들 중에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페미니스트이며, 수업시간에 소설에 등장하는 상징에 대해 선생님이 잘못 설명하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여학생들이 파티에 가서 어떤 남자가 허락 없이 스킨십을 해올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적극성과 자신감이 그 순간에는 발휘되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후회와 수치심이 뒤따른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제대로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었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이 장면을 생각해보며 성교육에 대해 더 이상 우물쭈물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각성을 했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비슷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던 여러 학부모들과 영국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원제:
Sex Education)’를 함께 시청하고, 경험들과 조언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인간관계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교육의 핵심은 ‘성지식’이 아닌

'인간 존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내 인생의 띵작이기도 하다.
 


최근 성교육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체와 임신, 출산에 국한되어왔던 교육이 성인지 감수성과 성별 혐오까지 포괄적인 내용을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독일의 성교육 전문가들은 “성교육은 생명교육, 인권교육이자 문화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하다. 좋은 성교육은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인권 개선에 기여하기 때문에 성교육만으로도 더 관용적이고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과 당당하게 성에 대해 대화를 하고자 마음을 먹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성기의 명칭을 알려준 것이었다. 저녁 식사 중이던 10대의 두 아이들이 깜짝 놀란 표정과 민망함까지 겹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의욕만 앞선 엄마의 성교육 첫 교시는 밥 먹다 체할 것 같이 황당하게 찾아왔지만 그 후 우리의 대화는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자신의 신체를 이해하고 당당하게 여기기, 나의 성적 자기 결정권, 나와 다른 성에 대해 이해하는 젠더 감수성 등을 비롯해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주제들이 있다. 그만큼 나도 더 부지런히 배우고 고민하려고 한다. 20세기에 태어나 제대로 된 성교육조차 못 받고 어찌어찌 성인이 되었지만, 21세기 엄마가 되려면 내게도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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