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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Jun 07. 2021

졸업식 꽃다발 속 추억은 방울방울

어쩌다 부모 iin 상하이


 

중국에서 6월은 꽤 중요한 달이다.  7 • 8월 여름휴가만을 기다리며 보내는 지루한 달이 아니다. 1일부터 어린이날(儿童节)로 화려하게 시작을 하고, 대부분의 학교들이 졸업식을 치르는 달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상해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을 하고 나니, 이제 6월은 마무리를 하는 졸업의 달로 느껴진다.

 


# 1 프리지아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요’랍니다

 

졸업식 하면 해사한 프리지아 꽃다발이 먼저 떠오른다. 졸업식 때 프리지아 꽃다발을 받아서가 아니라 받지 못해서이다. 중학교 졸업식 날 아침, 엄마는 내게 원피스를 입으라고 권하셨다. 열여섯 살, 한참 삐뚤어지고 싶은 나이에 단정한 원피스를 입는다는 것은 졸업식을 포기하는 것과 맞먹는 일이었다. “이 원피스에 노란색 프리지아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예쁘겠니”, 엄마가 아침 내내 나를 설득하신 말이었고, 나는 당당하게(사실은 밉상스럽게) 청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잊지 않고 던진 말, “프리지아 절대 사 오지 마세요.”



그날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화사하게 꾸미고 온 친구들 사이에서 청바지를 입고 있던 내 모습이 너무 평범해서, 프리지아가 아닌 다른 종류의 꽃다발을 사 들고 오신 엄마께 죄송해서 안 그래도 삐딱한 마음이 더 못나게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그 후 프리지아의 꽃말이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요’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중학교 졸업식 날은 내 인생에서 참 밉고 지지리도 못났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 2 폭우 속에서 지킨 꽃다발

 

큰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은 나에게도 특별한 순간이었다. 졸업식 날이니 당연히 꽃다발을 안겨줘야 할 것 같아 그 전 날 큰 아이와 근처 꽃 시장을 찾았다. 꽃 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꽃다발을 고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꽃집이 아니라 꽃 시장이었던 것이다. 꽃다발에 넣을 꽃들과 배합할 것들도 직접 골라야 했고, 그것들을 어떻게 배치할지, 포장지와 리본 끈까지 어떤 것을 사용할지 다 직접 결정해야 했다. 사야 할 꽃다발은 다섯 개. 아이 것과 담임 선생님 것만 준비하려고 했다가, 아이가 영어 선생님도 드리고 싶다고 하더니 수학 선생님도 눈에 밟히고 교장 선생님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꽂이를 배워둘걸’ 하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꽃다발 사진들을 찾아보며 다섯 개의 각각 다른 꽃다발을 만들었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 날은 상해에 기억할만한 폭우까지 내리던 날이었다. 거센 빗줄기에 꽃다발이 망가질세라 애지중지 끌어안고 집에 돌아와 보니, 꽃다발은 멀쩡하고 나와 아이 옷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큰 딸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아슬아슬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선생님과 친구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없다고 했다. 중국어도 영어도 모두 어설펐을 때였다. 원어민 영어 선생님 수업에서는 숙제를 알아듣지 못해서  개월 동안 숙제를  해갔던 적도 있었다. 아이가 조금 적응을 하고 나니, 이제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문자 메시지나 전화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짝꿍이랑 수업 시간에 떠들어요, 아이들이랑 물장난을 해서 화장실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었어요, 축구장 골대 그물을 올라갔어요, 위험한 일이니 집에서 지도 부탁해요 등등. 엄격한 담임 선생님과 5 동안 보내면서 오고  메시지 양만 공책   정도는 되려나.

 (상해의 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5학년 학제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가 졸업할때까지 담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입학했을때 그 반 그대로 이어집니다.)



졸업식 , 담임 선생님은 내내 울고 계셨다. 아이들도 울었고, 학부모들도 울었다. 우리 아이가 졸업 가운을 입고 의젓하게  있는 모습만으로도 눈물이 흘렀다. 아이도 나도  버틴 것에 대한 자축과 안도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축하한다고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담임 선생님께 폭우 속에서 지킨 꽃다발을 드렸다. 졸업식이라고 꽃다발을 들고  학부모는 거의 없었다. 5년간 쌓인 미운  고운 정에 폭풍우 같던 5년을 잘 지나온 동지애에, 특별한 감사의 마음까지    다발은 많은  담고 있었다. 꽃다발은  담임 선생님의 다홍색 원피스와도   어울렸다.  하도 울어 바알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서로 머쓱하게 웃던 그날의 이미지는 아직도 뭉클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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