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리리산책 Sep 28. 2020

짠내 나는 중국 학교 학부모 도전기

학부모는 처음이라, 게다가 중국에서는 


첫 부모 칼럼이 나간 후 오히려 제게 많은 분들이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어떻게 그 힘든 시기를 이겨냈는지,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뾰족한 묘안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했고 그저 그것들을 실천했을 뿐입니다. 2회 부모 칼럼 지면을 통해서 제가 해 온 몇 가지 방법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아무쪼록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큰 아이 담임 선생님과 첫 면담을 한 후, 바닥으로 떨어진 나의 자존감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아이의 학교 생활 자체가 위기였다. 나도 아이도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거의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착실히 학원을 다니며 중국어를 배워왔고, 그 전 유치원 선생님들과 집에 오는 아줌마와의 대화에서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터였다. 나의 중국어는 그렇게 형편없지 않다고 착각했었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원래도 말이 빠른 사람이었다. 준비해온 듯한 말을 빠른 시간에 속사포처럼 쏟아내었고, 내 의견도 물었다. 그때의 난처함이란. 자괴감에 우울해할 여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의기소침해진 큰 아이를 대신해서 나라도 담임 선생님과 소통을 해야 했다. 나의 언어 문제로 아이의 학교 생활을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나의 첫 번째 도전은 대학 내 중국어 어학연수 코스에 등록을 한 것이었다. 마실 가듯 동네 학원을 어슬렁거리는 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두 번째 도전은 매달 있는 우리 반 학부모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반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 수업 시간, 학교 시험, 학원과 과외 정보 등의 학교와 아이들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외국인은 늘 나 혼자였다. 3-4시간 중국어 수다에 무방비로 노출이 되고 돌아온 그 날은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날이었다. 아이의 학교 생활이 얼마나 고달플지 실감하는 날이기도 했다.  


당시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모임에서 만난 중국 엄마들은 나와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드라마에서 배운 “오빠”, “예뻐요” 등의 간단한 한국어를 쑥스러워하며 말해보기도 했다. 그때 무슨 용기였을까. 솔직하게는 몇 마디 하는 한국어 발음을 좀 더 정확하게 교정해 주고 싶은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국문학을 전공했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전혀 다른 분야라는 것을 이후에서야 알았다).


“한국어 배우고 싶니? 내가 가르쳐 줄까?” 그 말이 발단이 되어 난 졸지에 우리 반 엄마들 여섯 명의 ‘한국어 김 샘’이 되었다. 그 후 3년 간 매주 화요일마다 한국어 공부를 위해 만나 인생 이야기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담임 선생님의 제안으로 학교 특별활동 수업 중 하나로 한국어 기초반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그 수업을 위해 부랴부랴 모교의 한국어학당에서 하는 한국어 교원양성 온라인 과정까지 이수해 한국어 지도교사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 인생은 늘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전개된다.





세 번째 방법 역시 쉽지 않았다. 큰 아이가 3학년 때까지 나는 매일 숙제 검사를 했다. 숙제를 다 했는지 체크만 한 것이 아니라 답을 맞게 썼는지 까지 확인을 했다. 큰 아이는 이미 나에게 숙제 검사를 받으며 모르는 것을 다시 한번 복습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숙제를 완벽하게 해 오는 모범생으로 인식이 되었고 과목 선생님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큰 아이 주위에 친구들도 늘어갔다.



그때는 늘 불안했다. 정답을 모르니 무엇이든 열심히 하거나 열심히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 가기 싫은 아이에게 재미있게 학교 생활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이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엄마도 처음 하게 된 학부모 역할을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는, 가끔은 너의 위로가 필요하다며 아이에게 엄살도 부렸다. 내가 아이를 위로해 주는 날도 있고, 아이가 나를 위로해 주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위로의 시간이 쌓여갔다. 아이의 토실토실한 손이 토닥토닥 내 등을 두드려주는 날은 내가 최고로 행복한 엄마가 되는 날이었다.

이전 01화 몰라도 너무 모르는 엄마의 고백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발랄 엄마의 상하이 생존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