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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Aug 18. 2021

“정확하고 품위 있게 모국어를 구사하라”

엄마의 이기적인 한글 집착기



중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세 가지 언어에 노출된다. 우리 아이들도 한국어, 중국어, 영어에 노출되어 자라고 있고, 이 순서대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아이 둘 다 같은 로컬 쌍어(중국어와 영어) 유치원과 로컬 초등학교 국제부를 졸업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중국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인 곳으로 중국어를 주로 사용하고 영어는 외국어로 배우는 정도였다. 지금 재학 중인 로컬 중 고등학교 국제부는 중국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기본 사용 언어는 영어인 곳이다. 영어를 주 언어로 수업을 하고 소통을 하지만, 수업 외에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할 때도 있는 곳이다. 큰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한국을 떠났고,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15년을 외국에서만 살고 있다. 외국에 있는 한국학교도 다닌 적 없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가장 잘 구사하는 언어로 한국어를 꼽는다. 나의 이기심이 큰 몫을 한 것 같다.




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며 중국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쓰는 말의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말 문장에 중국어 단어를 섞어 쓰더니 점차 우리말 문장과 중국어 문장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잘 들었냐고 물어보는 내 질문에 “네, 그때 제 귀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유치원 선생님이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오늘 귀 가지고 왔어 안 왔어?”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을 하고 있지만 표현은 중국어인, 국적 모를 언어에 당황하는 순간이 늘어갔다.



둘째 아이도 중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끼리 중국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부터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더 많아졌다. 중국어로 쫑알거리는 모습이 귀엽고 신기했지만, 둘의 대화에서 나의 소외감도 커졌다.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와의 소통도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니.


 

중국에 사는 동안은 아이들에게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싶고, 모국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맞아요, 욕심이 많죠). 모국어를 배워야 하는 여러 중요한 이유도 있지만, 나는 아이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학교 생활도 듣고 싶고, 친구와의 고민도 나누고 싶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같이 수다도 떨고 싶고,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시나 소설을 권하고 소감도 나누고 싶었다. 나의 중국어와 영어 수준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늘 우리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는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사촌들과 만났을 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중국어와 영어는 학교에서,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고 말하도록 했다. 물론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창 중국어와 영어가 늘고 있는 시기에 한국어까지 가르친다고 하다가 더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을 아이들도 좋아하고 잘 사용했으면 했다.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한글 공부 학습지와 한글책을 트렁크 한 가득씩 넣어왔다. 한글 공부 학습지 덕으로 한글을 수월하게 떼었던 것 같다. 책도 주로 한글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휘도 늘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에는 방학 동안 한글로 일기를 쓰게 했다. 나는 그 일기를 읽고 틀린 맞춤법이나 표현 같은 것을 정정해주고, 엄마의 답글도 남겼다. 가급적 정성껏 길게. 국민학교 때 담임 선생님들이 일기 검사 후 뒤에 남겨주는 몇 줄의 코멘트를 읽고 또 읽었던 내 추억을 응용했다. 아이들도 엄마가 남긴 글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몇 년 동안 꾸준히 다닌 한글 논술 수업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어 학원과 논술 학원 중에 선택을 해야 할 때 우리 집은 늘 논술 수업이었다. 모국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이렇게라도 한국인이 되길 바랬다. 엄마 아빠 말고도 한국인 어른과 한국어로 심도 있게 대화하고 다양한 시각과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큰 아이가 일곱살때 쓴 일기


큰 아이가 4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일기. 지금보다 한글도 내용도 더 잘 쓴 것 같은건 나만의 느낌인지



우리 아이들이 세 가지 언어 중에 한국어가 가장 편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어는 참 어려운 언어라고 한다. 특히 높임말과 맞춤법, 띄어쓰기는 늘 모르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은근슬쩍 나를 원망하기도 한다. 어릴 때 영어공부를 왜 더 시키지 않았냐고. 요즘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하고 표현하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한다. 특히 영어와 중국어로 에세이를 쓸 때는 자신들이 쓰는 어휘나 표현의 한계가 느껴진다고도 한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우리 아이들과 우리말로 편하게 대화하고, 서로의 농담에 썰렁하다고 타박도 줘 가면서 노닥노닥할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심지어 아이들은‘스벅’이나 ‘빠바’ 같은 줄임말을 쓰는 나에게 바른말을 쓰라는 잔소리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줄임말이라도 좀 써야 더 젊어 보이지 않을까 싶어 기를 쓰고 쓰지만.



30년  넘게 하버드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던 찰스 W. 엘리엇 박사가 말했다."인간 교육의 필수 요소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모국어를 정확하고 품위 있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그의 전공은 수학과 화학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적확성을 넘어 품위 있는 모국어에도 도전을 해야 하려나. 그전에 품위 있는 모국어는 나부터 배워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중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던 시절, 한국 문화원에서 한글 전시회를 해서 같이 갔었다. 한복체험 코너에서 한복을 입어 본 중국 친구들.



#한글날도아닌데한글사랑만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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