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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Aug 13. 2021

상하이에서는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

상하이 생활 12년 차의 ‘상하이 전격 해부’ 3편



2010년, 남편이 상하이 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1년 반 정도 되는 짧은 북경 생활을 부랴부랴 정리하고 상하이로 이사한 후 가장 놀랐던 것은 물가였다. 상하이는 세계에서 물가 높은 도시로 유명하다. 집 값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다른 도시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의 기를 팍 죽이고(그것도 돈으로) 시작했다. 상하이는 도도하면서 돈은 많고 쉽게 곁 안 내주는 까칠한 친구 같다. 그런 상하이를 다들 겪고 나면 좋아한다는 사실. 그 매력은 무엇일까. 상하이 이곳저곳을 어지간히 쑤시고 다닌 상하이 생활 12년 차의 (주관적인) 내공으로 정리해 보았다.

 

 


8. 상하이에서는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

 

상하이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물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좀 더 특별하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지인들 중 대부분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꼽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상하이 시 지원을 받으며 깨끗하게 잘 운영되고 있다. 몇 년 전, 오래된 그 주변 지역에 재개발 붐이 일었지만 상하이 시에서는 우리나라의 요청에 의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건물을 보존하기로 했다고 한다.(앞으로도 쭉 백 년 천 년 잘 보존되어야 할 텐데요. 언제 허물어버릴지 모르는 조바심도 생기네요)

우리 조상들이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임시정부까지 수립할 수 있었던 것도 상하이 정부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년 전에 방문한 대한민국임시정부



홍구 공원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으로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매헌 기념관이 있다. 또, 상하이에서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항저우나 자싱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가 있다. 독립운동을 테마로 하는 여행도 계획해 보기 좋은 곳이다.


상하이에 드물게 눈이 내린 겨울날 매헌기념관. 시진출처:상하이한인신문



상하이는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의 현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 보니 독립유공자 후손들도 많이 정착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민 사회에서도 우리나라 역사연구회 활동도 활발하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행사도 개최되었다. 정정화, 연미당, 권기옥, 이화림, 허정숙 등 한국에서는 알지도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새롭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이 독립의 꿈을 꾸며 걸었던 상하이의 길을 걸으며, 제 몸 하나 겨우 뉘우며 누추하고 비루한 타국 생활을 견뎠을 그 집터를 서성이면서 나도 모르게 찡해져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연미당 선생 가족사진.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연미당 선생. 연미당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싼 보자기를 만든 인물이다.





지난해, 기회가 닿아 하련생(夏輦生)이라는 중국 작가를 만날 자리가 있었다. 기자 출신의 하 작가는 웬만한 한국인들보다(당연히 나보다 더 많이)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를 훤히 뚫고 있었다. 그녀는 개인적인 경험과 호기심에 의해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한류삼부곡(韩流三部曲)이라고 불리는 세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첫 번째 작품 '선월(船月)'은 김구 선생의 피난 시절, 김구 선생과 20세 뱃사공 주애보의 이야기를 소설화 한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 '호보류망(虎步流亡)'은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에 관한 내용이고, 세 번째 회귀천당(回歸天堂)은 윤봉길 의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중국인인 그녀에게서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느 순간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내가 참 많이 부끄러워졌다.


왼쪽이 하련생 작가이다. 지난해 10월, 주상하이총영사관에서 인터뷰 영상을 찍고 있는 중이다




상하이에는 의미 있는 박물관이 한 곳 있다. 2016년, 상하이사범대학 캠퍼스에 개관한 중국 위안부 박물관이다. 위안부 박물관에는 위안부 생존자와 연구자가 기증한 각종 유품과 문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해, 박물관을 방문했으나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상황이라 주변만 얼쩡거리다가 온 아쉬운 기억이 있다. 위안부 박물관 앞에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조각가가 공동으로 제작해서 기증한 한중 위안부 평화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방문객들이 소녀상 앞에 두고 간 꽃다발이나 생수, 간식거리, 모자나 목도리 등을 보면 오만 가지 회한으로 마음이 먹먹해진다.


중국 위안부 박물관이 있는 상해사범대학 건물


상해사범대학 안에 있는 힌중 위안부 평화 소녀상





고백하자면 나는 30년 넘게 우리나라 역사나 애국과 거리가 멀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모두가 하나 되어 "대한민국"을 외쳤던 유명한 스포츠 경기 시즌에도 나는 그 흔한 빨간색 응원 티셔츠 하나 없었다. 그땐 그렇게 삐딱한게, 남들 다 하는 거 안 하는게 쿨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상하이를 10년 넘게 살다 보니 나에 대해, 내 나라의 역사에 무지한 것만큼 안 쿨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진짜 쿨한 척은 알건 다 알고 나서 하는 것.  상하이는 나 같은 사람도 반성하게 만들고 애국자로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상하이가 좋다.






#4부에서는진짜로-상하이의치명적인단점대공개



상하이 생활 12년 차의 ‘상하이 전격 해부’ 1편

https://brunch.co.kr/@littlepool/31


상하이 생활 12년 차의 ‘상하이 전격 해부’ 2편

https://brunch.co.kr/@littlepool/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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