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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Aug 23. 2021

중국인 친구가 손수 만든 ‘김치’를 선물했다

 모스크바에서 배워 온 손 맛


아이의 학교 입학 오리엔테이션 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뻘쭘했다. 중국인들의 친화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도 중국인들 사이에서만이다. 다들 처음 보는 사이 들일 텐데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면서 두 명 세 명 모이더니 어느 순간 한 그룹을 만들었다. 아마도 나는 온몸으로 긴장감과 어색함을 드러내며 외국인 티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중국인에 몇 명의 미국인들과 몇 명의 일본인들 속에서 한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나름 친화력 좋은 나도 그 순간에는 낯 가리고 의기소침한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의 속사포 같은 중국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지루한 멍 때림의 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그녀는 자기 이름을 판시라고 소개를 하고, 자기 아이들은 남녀 쌍둥이인데 같은 반이라고 했다. 모스크바에서 유학할 때 한국인 친구들이 있었다고, 친구들에게 배워 한국어도 몇 마디 할 줄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맛있어요”, “예뻐요”를 꽤 정확한 발음으로 했다. 그날 나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와준 판시가 어찌나 고맙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중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활동을 하는 꽤 유명한 화가였다. (그녀의 작품들은 꼭 그녀의 이미지처럼 단아하고 우아했다)



그 후 두 번째로 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핼러윈 파티를 한다고 했다. 학부모들도 음식 한 두 가지씩을 들고 참석을 해야 했다. 가기 싫지만 가야 했다. 나는 파스타와 김치전을 준비했다. 한국 음식도 한 가지 하고 싶었고, 김치전이 무난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김치전 색깔이 호박 색깔과 비슷해서 김으로 데코도 해봤다. 차갑게 식은 나의 파스타는 피자와 치킨에 밀려 그리 인기 있지 않았다. 대신 덤으로 해 간 김치전이 꽤 선방했다. 한국 음식이라고 하니 다들 한 번씩 맛보고 싶어 했고, 우리 반에 들른 교장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도 한 조각씩 맛을 보았다.


스스로도 기특했던 김 데코.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


피자와 치킨에 밀린 나의 파스타. 새벽부터 만든 이 정성을 알 턱이 있나




그날도 판시는 여전히 뻘쭘하게 혼자 겉돌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김치 담글  알아. 모스크바에서 유학할때 
룸메이트가 한국 친구였거든.  친구가 김치를 
담가 먹어서 같이 만들면서 배웠어.
나도 집에서 종종 만들어 먹어.”



나도 담글 줄 모르는 김치를, 한 번도 시도해 본 적도 없는 김치를 담가 먹는 중국인이라니. 심지어 판시 남편은 미국인인데도 김치를 좋아하고 아이들도 잘 먹어서 주기적으로 담가 먹는다고 한다. 마침 며칠 전에도 김치를 담갔다고 원하면 맛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판시가 아이들 편에 보낸 김치 두 통이 들어있었다. 정말 김치였다. 조미료 맛 하나 없고 양념 맛도 가벼운 집에서 만든 김치였다. 우리나라 김치처럼 젓갈 잔뜩 넣은 진한 맛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맛있었다. 아마도 원래 요리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았다.


판시가 직접 만든 김치



판시가 보낸 김치를 먹을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준 판시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이후 판시의 작업실에도 몇 번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늘 온화했다. 예술가는 까칠하고 예민한 줄만 알았던 나의 편협한 생각도 바뀌었다.

판시가 모스크바에서 만났던 한국 친구들, 특히 룸메이트였던 그분께도 정말 고마웠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아주 좋은 분일 것 같다. 그분이 판시에게 심어준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덕분에 나 역시 판시에게 따듯한 호의를 받을 수 있었을 테니. 그래서 판시의 김치가 더욱 특별했다. 한 조각씩 먹을 때마다 한 번도 안 가본 모스크바까지 떠올리게 했으니 말이다.



판시의 인터뷰를 계획만 하고 아직 실행에 옮기지를 못했다. 인터뷰를 핑계 삼아 모스크바 룸메이트와의 추억도 좀 더 물어봐야겠다. 판시의 김치 레시피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집에 초대해 쿠키를 만들고 있는 판시. 오른쪽에서  세번째



#판시의모스크바룸메이트를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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