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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Sep 09. 2021

추석 맞이 전복 플렉스

전복이란 무엇인가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짐이 한가득 이었다. 친정 엄마가 새벽부터 꾸린 이민가방 안에는 배추김치 10kg, 장아찌와 젓갈, 고추장, 김, 어묵, 참기름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상하이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어김없이 엄마의 전화가 왔다. 가지고 간 먹거리들이 행여 공항 검열대에 걸려 빼앗기지 않았는지 확인 전화였다. 10년 넘게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매번 걱정이시다.

그날은 엄마의 목소리가 좀 달랐다. “그리고….” 하시며 덧붙이시는 톤이 좀 은밀했다고나 할까. 김치가 담겨있는 아이스박스를 어서 열어보라며. 아이스박스 안쪽에 몇 겹의 뽁뽁이 비닐로 단단히 포장된 무언가가 있었다. 내장까지 손질된 큼직한 전복 몇 마리였다. 엄마의 서프라이즈!



엄마의 야무진 손끝과 상하이에 있으니 잘 못 먹는다며 바리바리 싸주신 그 마음까지 담긴 전복죽을 끓였던 날. 여기서 산 전복 20개를 넣고 끓여도 안 나올 깊고 진한 맛이었다.



남쪽 바닷가 출신 부모님께는 전복이 가장 귀한 음식이고 최고 선물이었다(결혼하고 나서 지역에 따라 귀한 대접받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시댁에서는 소고기가, 손위 동서 고향에서는 대왕 문어가 그렇다). 추석이나 설 등의 명절 선물로 친정에 어른 손바닥만 한 자연산 전복이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졌다. 딸들과 사위들, 손주들이 다 모일 명절 연휴 어느 날의 저녁 식탁을 위해서였다. 좋은 와인도 몇 병 따는 날이었다. 엄마는 익숙하게 전복을 손질하고 얇게 썰어 회로 내었다.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표 갈비찜과 몇 가지 나물, 그리고 각자 자기 집이든 시댁에서 해 온 음식 몇 가지를 곁들여 명절맞이 가족 식사를 한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자연산 전복은 싱싱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 (내 기준에) 식감이 그리 좋지는 않다. 오독오독 몇 점 씹다 보면 턱이 아파올 정도로 딱딱하기도 하다. 그래도 부모님은 귀한 것, 몸에 좋은 것이라며 많이 먹으라고 자꾸 권하신다. 그 순간에는 맛 평가 따윈 저만치. 온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안부를 확인하고, 밀린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진미가 된다.




추석이다. 만물이 가장 풍성한 때라 마음도 넉넉해진다고 한다. 무더위에 한참 지친 후 맞는 명절이라 더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내게 추석이란 버건디 톤의 선선한 낭만과 가족들의 저녁 집합, 왁자지껄한 수다와 끊이지 않은 웃음, 가끔 사위들의 노래 배틀로 기억이 된다. 명절 잔혹사를 기억에서 지워버려서가 아니다.




시댁과 친정 모두 서울이고 거리도 가까워서 명절 때 오고 가는 대란이 없었다. 게다가 친정이나 시댁이나 집에서 모시는 제사가 없다. 아빠는 형제 중 막내이시고, 큰집과 외갓집 모두 우리나라 끄트머리에 있는 곳이다. 명절맞이 대이동에 동참하기에는 이래저래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결혼 후 시댁도 사정이 같았다. 시아버지 역시 장남이 아니시고 큰집도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가족들과 집에서 식사하는 것으로 나름의 명절을 보내신다. 그러니 나는 지금껏 추석 차례나 제사를 지내본 적도, 그것을 위해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으며 산더미 같은 전을 부쳐 본 적도 없다. 기껏해야 가족들 먹을 정도였으니 전 좀 부쳐봤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명절의 추억이 얕고 가벼울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명절 때마다 전국으로 흩어졌던 친척들이 다 모인다는 장손 집의 맞딸인 친구를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물론 결혼 전에 말이다). 그 친구는 20대 때 이미 '전 부치기 명예의 전당'에  올라도 될 만큼 많은 전을 부쳤다. 명절 연휴를 보내고 만난 친구는 '무릇 우리나라의 명절은 이래야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조촐한 명절을 보낸 나에겐 부럽기도 한 이야기였지만, 친구는 진저리를 쳤었다.




그래도 추석이다. 해외생활이 점점 길어지고, 코로나 시국까지 겹쳤지만 보름달은 뜰 것이다. 내 솜씨에 송편을 만들 수는 없고 주문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송편이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다. 전복 가지고 뭐라도 하면 속절없이 밝기만 한 보름달이 덜 초라하려나. 추석 저녁, 그 식탁의 자연산 전복회는 상하이에서는 전복죽과 전복 김밥, 전복 버터구이로 바꿔 기분을 좀 내볼까 한다. 마음에는 넉넉한 보름달도 띄워놓고 말이다.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달빛 기도 中, 이해인 지음



추석을 맞아 코스트코에서도 대용량 전복을 판매했다. 플렉스 하고도 남을 양



레시피 따위는 없다. 내맘대로 전복 김밥
역시나 내 맘대로 전복밥. 버터와 간장도 필수







# 추석이란 무엇인가

# 전복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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