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바이킹 Dec 24. 2020

나의 길을 버틴다는 것

<두 번째 초년생> 외전


“거기서는 이제 오래 버텨야겠네.”

네 번째 회사로 향하는 세 번째 퇴사를 앞두고, 직장인 인생 두 번째로 같은 말을 듣는 중이었다. 그래, 첫 회사를 그만 둘 즈음 저 말을 들었으니 그것도 한 8년쯤 되었구나. 이후 두 곳의 회사를 더 거쳐 온 나는, 어디서도 버티지 못했던 걸까? 버틴다는 것이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의 무게를 의미한다면 내가 가장 오래 버틴 시간은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8년 전 모 부장님의 한마디와는 달리, 이번 ‘버티라구’ 앞에는 ‘이제’가 붙었다. 이젠 너도 좀... 어디서든 자리 잡아야 하지 않겠냐는 안쓰러운 눈빛과 함께.


어쩌다 보니 ‘성장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기고 제안을 받을 만큼 변화라는 키워드를 등에 떡 붙인 채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들려오는 성공한 사람들의 ‘버팀의 미덕’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그 등짝을 매번 세게 후려치곤 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았으면, 그것이 잘 될 때까지 꾹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버티지 못하고 짧은 호흡으로 돌아서고, 돌아서고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정상에 오르는 성취는 가질 수 없다고. 아, 너무 토 달 수 없이 맞는 말이라 들을 때마다 울적해졌다. 버티지 못한 나는, 이제 영영 위로는 못 올라가는 건가? 부족한 폐활량 때문에?


사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직업을 바꿔 회사를 옮기고, 서른 넘어 남의 나라 학교에 갔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온 뒤 또 회사를 옮기는 그간의 변화무쌍한 삶은 오로지 결론적인 것이었다. 무슨 역마살을 타고 나 한 곳에 몇 철 이상 머무르지 못하는 병이 든 것도 아니고, 빨간 머리 앤처럼 ‘아, 난 내 안의 가능성이 너무 궁금해!’ 하며 미지의 세계를 열렬히 좇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잦은 변화의 경험은 변화라는 것이 그를 전후로 일상을 아스라질 만큼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뼈에 새기게 했다. 새로움은 그 매력만큼 다정하지 않다는 것도. 그러니 전에도, 지금은 더욱이 나는 변화를 ‘계획’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짐한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이 나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변화의 손을 들어주고야 만다. 궁금한 것이다. 이 변화 너머에 어떤 모습의 내가 있을지. 살아보지 않고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그래서 굳이 고생이 빤한 길로 발길을 옮겨 가 보아야만 만날 수 있는 내 삶의 모습이. 살아오면서 내가 나를 관찰하며 얻은 통계에 따르면, ‘해 본다’ vs ‘하지 않는다’의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해 본다’ 쪽에 마지막 순간 1점을 얹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남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괜히 했어!”보다 “해볼걸!” 쪽을 더 괴로워했다. 그런 이유로, 계획과는 상관없이 나의 인생에는 등산로가 아닌 둘레길이 생겼다.


둘레길도 나쁠 것이 없다. 우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원 웨이가 아니다. (‘최단 경로’를 포기하면 길은 여러 갈래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둘러 간다고 신발 밑창이 더 헐지는 않는다. (오히려 잘하면 더 좋은 신을 신을 수도 있다.) 한 번씩 다른 코스를 탈 때마다 길은 점점 더 꼬이고, 난이도는 상승하겠으나 그 또한 가파른 등산로에서 마주할 ‘견뎌내는’ 어려움과 비등할 것이므로 딱히 생색낼 것도 없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것과는 다를, 나름의 위치에서 보이는 나름의 경관이 있다. 쭉 하늘을 향해 오르는 등반가들은 보지 못할, 둘레길 위의 나만이 볼 수 있는 나만의 뷰.


어...... 그런데, 솔직히 정상에 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써 삼킨 열망을 말하자면 나도 성공한 저들처럼 멋진 곳에 서 보고 싶다. 가는 길은 다를진대 어쨌든 산을 오른다는 상황은 같기에, 앞선 이의 묵직한 발자국이 보일 때면 등짝을 후려맞기도, 배가 아파 잠시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가 보고 싶은 길을 모두 다녀 보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정상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니. 그래서 나는 버틴다.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고민하는 힘과 선택하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남들보다 빠르지 않고, 계획보다 높이 서지 못해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도록. 성장하는 삶이 성공하는 삶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젠 낮에 마신 커피 한 잔이 밤잠을 방해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언젠가 내 안의 물음표를 무시하지 않도록.


내일은 나의 네 번째 회사의 첫 번째 출근일이다. 나는 계속 묻기 위해, 계획하지 않은 풍경을 만나기 위해, 여전히 다정하지 않을 새로움 속에서 하루 또 하루 나의 길을 버틸 것이다.





이 글은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X문토 웹진 '긺'의 12월 24일자 칼럼에도 실렸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