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은 이렇게 피곤하게 살지 않을 거야
나는 태생이 성실과 야망이었다. ESTJ, O형, 사주조차 성실의 대명사 '기토 사주'.
그래서 항상 바빴다. 미래의 내가 행복하다면 현재의 내가 인내하는 것은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 글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성공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행복의 역치가 너무 높아 항상 만족을 못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력한다고 모든 걸 이룰 수 없는 현실에서 계속 넘어지고 부딪혀가며 그럼에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자 하는 '미생'의 나를 기록하고 이제는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노력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이 피곤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우리끼린 서로 노력을 알아주자며 그들에게도 위로 한잔 건네어 보고자 한다.
그래서 많이 이뤘냐고 묻는다면, 반은 이뤘고 반은 아직이다.
사회에서 주어진 과제는 초스피드로 끝냈다. 초효율주의자의 스케줄이었다.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대학 졸업 후 만 24살에 방송국에 취직을 했고, 만 26살에 결혼을 했으며, 만 28살에 출산과 작지만 내 집 마련을 모두 끝내버렸다.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듣는다면 인생에 곡절도 많았다. 20대로 돌아갈래 묻는다면 '절대 안 가'다.
작은 일, 큰 일 가리지 않고 내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욕심 없이 사는 삶.
정말이지 다음 생엔 그런 성격으로 태어나서 자신을 갈아 넣지 말고 자주 행복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꿈을 이루지 않으면 결코 그 행복이 완성될 수가 없다.
나는 17년 차 콘텐츠업계 종사자이다. 내 꿈은 연출 PD였지만, 취준생시절 언론고시 준비하다가 한해에 방송국 통틀어 10명도 안 뽑는 PD에 지원하기 위해 나의 소중한 몇 년을 쓸 자신이 없어 바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국비로 방송유통과정을 교육기간에서 훈련하게 되었고, 그 경험으로 SBS그룹에서 사업과 유통부분을 맡고 있는 SBS콘텐츠허브에 2010년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국내외 콘텐츠 유통, OST사업 등을 하다가 콘텐츠 기획 투자 부문을 맡게 되었고 일의 범위를 키워나가다 팀장으로 팀도 운영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여러 제작사들도 만나고, 좋은 원작이나 기획을 고르는 일을 하며 콘텐츠 사업이 아닌 제작에 한 발짝 발을 담그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났다. 원래 내 꿈을 타협하며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방송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과 나름 대기업에 있다는 것에 위안하며 그냥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하며 살고 있었는데 갈증이 몰려왔다. 제작사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제작 업계 키플레이어로 활동하는 분들, 콘텐츠 유통에서 제작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분들을 보며 부러웠고, Youtube와 Netflix의 등장으로 오히려 콘텐츠 제작의 다양한 문이 열려있었서 이제는 기회가 더 많아진 세상으로 보이자 묻어 두었던 꿈이 다시 욕심이 났다. 그리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직접 뛰어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기존 회사에서 나의 역할을 제작 쪽으로 완전히 전환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어서 나는 2년 전 드라마 제작사로 첫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코로나 때 오히려 더 잘 나가던 우리 콘텐츠업계는 전례 없는 불황 속에 망하는 제작사가 속출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해지려고 이직했지만 행복을 손에 쥐기 더 멀어진 느낌을 받으며 허덕이며 달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내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지금도 채찍질하며 피곤한 현생을 이어가고 있다.
'갓생'하다보면 그 끝에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