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패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도 한다. 실패를 통해 본질로 돌아온다
잠시 글을 멈추었다.
발리에서 한인 요가원에 취직되어서 브런치북에 신나게 발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써내리고 난 뒤 일에 몰두했었다.
새로운 요가원을 청소하고, 홍보하고, 작게나마 오신 한분 한분과 소중히 수업하며.
그런데도 잘 안되어서 원장님은 이곳을 닫기로 했고, 나도 긴급히 한밤 중에 내일부터 문 닫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비자가 남은 기간 동안 지인 집에 지내기도 하고, 서핑샵에서 일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다 내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들이라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 날 친구와 밥을 먹으며 말했다.
“ 나는 발리에 미쳐서 내 본질을 잊은 것 같아.
나는 나를 잘 먹여주고 재워줄 의무가 있었는데, 나를 함부로 대한 것 같아.
그저 발리에 오는 것이 중요해서 그런 걸 잊었어. 그래서 이번 도전은 실패한 것 같아.”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 물었다.
“ 괜찮아, 젊으니 무엇이든 해볼 수 있어. 이번기회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있으면 된 거야.”
그리고 나는 어떠한 꿈도 욕망도 다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발리가 그립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온 지 6개월 뒤, 아빠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린 이별했다.
아빠가 입관하던 날 아빠가 사랑하던 것들만 기억에 남았다.
아빠에 대한 가족들의 어떠한 오해도 억울함도 다 사라지고 몹시 자유롭겠단 느낌이 들었다.
많이 울었다.
장례식 후 수업에 돌아왔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인지 몸과 마음이 축난 느낌이 들었다.
건조했다 모든 것이.
문득 오랜만에 발리가 떠올랐다.
발리의 끊임없이 이는 파도, 풍부한 과즙의 과일들, 마지막 식사를 함께했던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졌다.
마침 에리카 바두가 포테이토 헤드에서 공연을 하다고 했다.
그렇게 2년 만에 발리를 다시 방문했다.
잠시 쉬고 오면 충전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발리를 나누고 싶었다.
마침 요청도 들어왔다.
그렇게 리트릿을 잘 마무리했고, 신기하게 내가 발리에서 경험한 자유와 배려, 완벽한 평온함이 아닌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은, 일상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감각을 느끼셨다고 했다.
본질을 잃은 나를 반성하며 부산이란 현실에 만족함이 좋은 결론일 수도 있을 텐데 내겐 아니다.
본질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한 적이 없다.
잘 못 먹고 좋은 곳에서 잠을 못 잔 순간에도 나의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저 모든 실패와 성공으로 보이는 물결을 따라 여기로 왔다.
그저 나의 속도로 흐르고 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사랑하면서.
말 그대로 나답게 흐르는 기분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