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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은 Apr 22. 2020

[2] 코로나가 내게 선물한 단 한 가지

코로나19로 결혼식을 미뤘다.


몇 달 내내 감사한 분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며 청첩장을 돌렸다가 다시 연락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받았던 축하만큼 이젠 내가 위로를 받는 상황에 놓였다. 밥을 먹다가 울었고, 코미디 영화를 보다가도 울었고, 화장을 하다가도 울었다. 가장 설레며 준비했던 이벤트였고, 좋아하는 얼굴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기쁨이자 평생에 한 번뿐인 가장 예뻐 보이고 싶은 하루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결혼식이 갑자기 사라졌다. 한창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피크를 칠 때의 일이라 3개월 뒤로 예식일을 변경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코로나는 내게 많은 것들을 가져갔다. 결혼은 물론이고, 신혼여행, 프리랜서의 일거리, 해외 출장, 친구들과의 소중한 만남,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악화. 알 수 없는 무기력함과 괴로움에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펼쳐지기 전부터 스스로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택했다. 여전히 우리 곁에 코로나가 맴돌고 있지만 그가 내게 선물한 단 한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에 알맞은 고민거리가 접수되었다.



저는 와이프의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호감에 반해 결혼을 했고, 지금도 그런 와이프를 믿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 2년 뒤,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퇴사를 준비할 때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와이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만큼 믿었으니깐요.


결국 1년 후 퇴사를 했고, 운이 좋게 바로 계약을 따내 걱정 안 하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일이 수월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인 경기침채로 자연스럽게 계약은 해지되었고 낙동강 오리알 마냥 목표를 잃어버린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큰 일을 하고자 개인 사업자까지 내며 큰 꿈을 꿨지만 바로 이렇게 타격을 입을 줄이야.. 당장에 수입이 뚝 끊길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계약일은 그렇다 쳐도 본인이 퇴사 후 계획했던 일도 갈피를 못 잡게 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난 뭘 해야 할지? 목표가 뭔지?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이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울하니 조금이라도 했던 운동도 못하게 됐고, 코로나 핑계로 헬스장도 못 가고 몸도 망가지고.. 몸이 망가지니 정신은 더 피폐해지고... 더 빨리 지치고 일을 장기적으로 못하게 되고 악영향만 늘어났습니다.

 

해결책은 분명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하고 운동으로 자기 몸을 만들어 정신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지금 당장은 체력이 떨어지고 목표 없는 자기 자신을 탓하고 부정적으로 볼까 봐 걱정입니다. 옆에서 천천히 하자 라던지, 어떤 것을 하면 좋겠다든지 그런 말도 부정적으로만 들릴까 봐 하지 못해요. 괜히 알면서 누가 옆에서 잔소리하면 더 싫어지는 것처럼요.


예전에 그 밝은 에너지의 와이프를 찾고 싶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은 정은님은 어떻게 그렇게 좋은 에너지만 내시나요~

힘드실 땐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코로나가 힘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누구를 탓할 수 없다. 나의 능력 부족을 탓하거나 누군가의 실수를 탓한다면 그건 다시 수정하거나 보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인간도 과학도 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다. 둘째, 기한이 없다. 고통의 시간제한이 없다는 말이다. "다음 주까지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다음 달부터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거예요."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방학을 맞이한 듯, 갑자기 생겨난 시간들을 여유롭게 보내거나 화려하게 보낼 것이다. 시험기간도 고통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는 누구나 명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당최 언제 끝날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기한 없는 고통에 스스로 지쳐 무너져 간다.


나 또한 모든 것들이 연쇄 반응으로 이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대는 강의와 행사 취소 전화에 핸드폰과 sns를 멀리하게 되었고, 입맛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의욕이 없으니 밖을 나가지 않게 되고 운동을 멀리하게 되며 불규칙한 생활과 스트레스가 쌓이니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면서 난생처음 대상포진도 앓았다. 몸이 아프니 더욱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몸을 움직이자.


하지 못하게 되었음에 무엇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은 나를 계속해서 억누르기에 바빴다. 우선, 이러한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 몸을 바삐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바쁜 일은 없었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기에는 당연히 아직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운동보다 더 간편하고 쉬운 걸 찾아야 했다. 운동, 러닝이 즐거웠던 이유를 떠올리면 두 뺨으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풍경이었다. 그 기쁨 만이라도 누려보기 위해 드라이브도 추천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자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걷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걷기조차 어렵다면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다. 아무것도 내 뜻대로 되는 것 없는 이 상황 안에서 내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하나씩 반응한다는 기분은 뇌를 자극하고 몸 전체에 피를 흐르게 돕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숙면을 돕는다.


버킷 리스트를 다시 찾아보자.

 

그동안 우리가 세웠던 버킷리스트는 대체적으로 이런 식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 더 하기, 캘리그래피 배우기, 요리 배우기, 바디 프로필 찍기, 대형 면허 취득하기, 특이한 외국어 공부하기, 일주일에 책 1권 읽기, 제주도 올레길 걷기 등. 이 중에 몇몇은 지금 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생각해보면 대다수는 지금 실행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접어두었던 버킷 리스트를 새로 꺼낼 수 있는 기회였다. 일이 어그러졌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여유가 생겼음에 집중하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에 집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 시기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값지게 활용하는 방법이다. 점과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비결이 될 것이다.


과거를 정의하자.


과거를 정의하는 것은 현재라고 한다. 지금의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 과거는 가치 있는 재산이 되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과거는 빠져나올 수 없는 영원한 고통으로 남게 된다. 깨달음을 얻을지 말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아무리 아프고 잊을 수 없는 과거라 할지라도 그 과거를 기회로 여긴다면 과거는 감사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4년 전, 나는 어렵게 중국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합격했지만 사드 배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사드)로 인해 2년 넘도록 취업비자를 받지 못했다. 200명의 한국인 합격생 중 유일하게 비자를 받지 못했다. 취업을 할 수도 없었고 누구를 탓하지도 못했고 우울증에 빠졌다. 그때의 상황도 지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달리기로 인해 지금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현재, 과거를 정의하자면 정말 더럽고 치욕스럽고 속상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중국으로 가는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되려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잘 나가는 공주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매력 없다. 갖은 풍파를 겪고 가난에서 공주가 되어가는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승승장구만 하면 스토리에 재미가 없지 않은가. 과거를 정의하는 것은 현재에 달려있다. 지금은 괴롭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반드시 과거를 정의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이러스가 나를 버려도 곁에는 나를 버리지 않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는  영원한 고통은 없었다. 사연의 주인공도 와이프를 믿고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그런 남편이 곁에서 응원하고 있노라면  고통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  또한 믿는다.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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