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의사 선생님의 <나를 지키는 관계심리학> 두 번째 강의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한 최적의 거리 정하기>에서 ‘가끔씩 오래 만나는 친구는 누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질문을 받음과 동시에 나는 나의 친구들 몇몇을 떠올렸고 유튜브에서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를 찾아보았다. 고등학교 중국어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중국어 버전을 여러 번 들려주셔서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중국어 선생님이셨던 담임 선생님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가장 오래간다며 우정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셨었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래도록 계속 만나고 연락하는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가 맞지만, 연락을 끊은 고등학교 친구도 많기 때문이다.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의 ‘괜스레 힘든 날 턱없이 전화해 말없이 울어도 오래 들어주던 너’ 가사처럼, 신규 교사 때 학교 분위기가 숨 막히고 너무 힘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내가 더 힘들어!”였다. 내가 함께 놀던 고등학교 친구 무리들은 무직이거나 아직 변변찮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자신들과 달리 스물네 살에 교사가 된 나를 좀 다르게 대했다. 그들은 내가 편한 직업을 가진 주제에 징징댄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때는 친구들이 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내가 더 한 번이라도 밥을 사고 내가 더 손해 보고 내가 더 잘해주면 우정 관계가 오래갈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비굴해져 갔고, 나는 점점 더 만만하고 하찮은 존재가 되어갔다. 결국, 나는 그 친구들과의 연락을 완전히 끊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클래스메이트와 친구를 혼동한 것 같다. 내가 진정으로 괜찮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옆자리에 앉아서, 같은 모둠이 되어서,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서라는 이유로 친해진 사람들과 오랜 관계를 유지했고, 그게 친구라고 착각했었다. 나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 같다. 정작 나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는 친구들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들, 고등학교가 달라지거나, 사는 곳이 멀어진 점 등을 이유로 잘 챙기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만나고 연락하는 사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내 진짜 친구가 아니었기에 어쩌면 더 오래 연락되었는지도 모른다. 쉽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뿐.
서러운 감정만을 남긴 채 멀어진 친구들이 아닌, 나를 소중하게 아껴준 친구들이 가끔씩 생각나고 그리울 때가 있다. 과수원집을 하던 서경이와 글씨체가 예뻤던 현숙이와 춤을 잘 췄던 혜민이. 다들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한편 두려운 마음도 있다. 만났을 때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하지만 다시 만나면 꼭 예전처럼 약속을 잡고 맛있는 것을 먹고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혹시 내 글 보면 꼭 연락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