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이륙한 지 약 3시간 만에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 사실 나는 정말 겁이 많다. 비행기를 타면서도 혹시라도 추락하거나 사고가 나면 어쩌지 머릿속으로 걱정이 많다. 유럽 여행 갔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약간 운명을 믿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아무리 걱정이 많아도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엄마도 걱정이 많은데 비행기에서 본 다른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비교가 됐다. '엄마도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건 철저해 내 중심적인 시각이란 생각이 든다. 남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나를 바꿔야 한다는 말에 집중하려고 한다. 엄마는 여행을 싫어하지만, 내가 좋아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하는 게 훨씬 수월한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나 또한, 걱정을 줄이려고 많이 노력해야겠다. 실제로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4%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니깐... 어쨌든 공항에 도착하니깐 입국심사가 1시간 여 가량 걸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캐리어도 금방 찾고 좋았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지만, 무사히 통과하니 이제 정말 여행의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거의 14년 만의 방문이다.
인천공항에서 8시 반에 출발했는데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서 신치토세 공항에서 점심을 사 먹었다. 우선 휴대폰이 꺼져서 충전기 어댑터부터 샀다. 예전에 도쿄 갔을 때도 로손 편의점에 들렀었는데 로손 편의점이 보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 챗gpt로 일본어로 번역한 다음에 똑같이 말했는데 직원이 알아듣지를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냥, 충전기 케이블을 보여주니깐 이해하고 어딨는지 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어댑터를 사고 어느 식당에 가서 먹을지 찾아보았다. 사전에 조사한 대로, 수프 카레를 먹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총 세 군데의 식당을 찾았고 제일 가까운 데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한 일본인에게 좀 더 정확히 하고자 물어봤는데 정말 친절히 알려주었다. 일본에 올 때마다 일본인들은 참 친절하다고 느낀다.
수프 카레는 가장 기본 메뉴에 마일드한 맛으로 시켰는데 매콤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맛있었다. 오돌오돌 씹히는 닭고기도 좋았고, 거의 1시간을 웨이팅 했기에 벌컥벌컥 마시는 물맛도 좋았다. 일하는 여직원들을 보면서 얼마나 고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하면 안 되지만, 한국에서는 퉁명스러운 직원들을 얼마나 일이 힘들면 저럴까라는 마음으로 이해하려 했던 경우가 참 많았던 것 같다.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친절한 건지, 내가 서툴게 말해도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해주니깐 나도 더 여행객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공항철도를 타고 삿포로 역으로 이동했다. 매표기는 한국어 지원이 되었다. 내 뒤에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한국인 일행이 어떻게 표를 끊을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주로 선진국만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깐, 여행 갈 때마다 정말 주변에 한국인이 많았다. 그래서 정말 마치 명동이나 신촌에 놀러 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표를 끊고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일본어를 읽지를 못하니깐, 어디로 가야 할지 너무 헷갈려서 마침 플랫폼에 서있었던 역무원에게 물어봤다. 그러니깐, 대기 중이던 열차를 가리키면서 3호차로 가라고 알려주어서 그리로 가서 탔다. 공항철도는 지정석과 자유석 두 가지인데 자유석이 좀 더 저렴하다. 지정석으로 구매하고 싶었지만, 매표기에서 자유석만 선택하도록 되어있어서 그렇게 끊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가서 편했다. 그런데 20분 출발인데 10분에 출발한 거 보니 아무래도 잘못 탄 것 같았지만 표를 검사하지도 않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사히 삿포로 역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 찾기 어려울까 봐 삿포로 역에서 가까운 호텔로 예약해 두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즈니스호텔로 예약했는데 분명히 예매할 때는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정메일을 확인하니 조식 불포함이었다. 그래서 조금 아깝긴 하지만 아침 일찍 나가려면 조식이 있어야 편할 것 같아서 추가로 비용을 치렀다. 3일에 8400엔.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4시쯤에 오도리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삿포로 시계탑을 보았다. 정시마다 종소리가 울린다는 데 들어보진 못했다. 안에도 굳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오도리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너무 늦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밖에서 보는 건물의 외형은 정말 예뻤다. 게다가 하얗게 눈까지 소복이 쌓여있어서 더 아름다워 보였다.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워낙 건물의 높이가 높아서 카메라 앵글 안에 다 들어오지는 않아서 아쉬웠다.
드디어 오도리 공원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눈 쌓인 풍경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온통 새하얀 설원이 마음까지도 환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도 그 안에 끼어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길가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눈사람도 한 번 손으로 만져보았다. 눈사람 얼굴이 귀엽진 않았다. 겨울왕국의 올라프처럼 생겼으면 한 번 같이 사진도 찍어보았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냥 눈뭉치의 촉감을 느껴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오도리공원에는 가족단위, 연인끼리 온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나도 누군가와 같이 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혼자 온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혼자 여행할 때의 좋은 점은 사색의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여행의 풍경, 사람들, 멋진 건축물 등에 기대어서. 알랭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서도 이야기했던 내용이다.
뭔가 나만의 사유를 글로 적고 싶은데 나는 그리 천재적이지 못해서 아직은 그냥 여행 코스 이야기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 같다. 장강명 작가는 <5년 만에 신혼여행>이란 책에서 3박 5일의 보라카이 신혼여행 이야기를 한 권의 에세이로 펴냈는데, 나에겐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저녁은 근처 마트에서 도시락과 삿포로 맥주를 사들고 왔다.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산 그릭요거트도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아파서 침대에서 쉬다 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친구와 도쿄에 여행 갈 때는 둘이서 예매하느라 좀 더 비싼 호텔에 머물렀는데 마사지기도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여행은 이런 점이 아쉽긴 하지만, 나름 창 밖으로 멋진 도시 풍경도 보이고 괜찮았다. 이렇게 첫째 날은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