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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고 싶다면

아래로부터의 변화

by 루비

흔히 무지개를 칠할 때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깔로 칠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무지개 색깔의 스펙트럼은 더 다양하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몇몇 유형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학생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도 왜 학교는 여전히 획일과 규율을 내세워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걸까? 그러한 비판은 몇십 년 전부터 계속되어왔지만, 아직 우리가 체감할 정도로 학교의 변화가 드라마틱하진 않다. 물론 혁신 학교, 꿈의 학교, 신나는 학교, 미래 학교 등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실험적인 학교가 생겨나는 것을 볼 때 마냥 비관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다만, 교육에 대한 이견도 다양하고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바, 학교 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모든 주체의 공감대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주변에서 심심찮게 정부와 교육부, 교육부 장관을 비난하며 제도적인 틀에서 학교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거시적인 변화도 중요하다. Top-down방식의 변화는 안정적인 틀 안에서 주어진 조건에 최대한 적응하는 방향으로 효율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하다간 소통 불능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하여 앞서 적었듯이 불만과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반대로 Bottop-up방식의 변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 비록 제도적인 틀과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가장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발휘하여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상층부의 목표와 가치관과 충돌하여 자칫 잘못하면 탄압을 받을 수도 있고 주변의 몰이해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교육관이 확고하다면 주변을 설득해나가는 것도 변화 추구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여파가 번져서 점차 Top-down방식의 변화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Bottop-up방식의 변화를 추구할 용기와 의지는 없으면서 Top-down방식의 변화만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불평하는 것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좋은 과실만 얻고 싶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인간 세상은 저마다의 욕망과 욕구, 이기심이 충돌하는 장이다. 그 안에서 서로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양보도 하고, 때론 주장도 관철하면서 수위를 조절하고 이해관계를 조율 해나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것은 조금도 내려놓지 않고 얻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의 각축장이 되어 사회를 혼란과 분열로 몰아놓고 있다. 그런 어른들의 세계가 학생들의 학교 현장까지 번져 학교폭력과 부적응 행동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학생들의 개성이 묻히고 개별화교육을 하기 힘들 정도로 학급당 학생 수가 많고 업무부담이 심하고 제도적으로 어려운 여건이라고 볼멘소리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변화란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발성과 책임감도 한몫한다. 그럴 때 더 빠르고 효과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교육의 각 주체 한 사람 한 사람이 ‘나 혼자 힘으로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는 비겁한 변명은 벗어던지고 책임감을 느끼는 진정한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다 해나갈 때 우리는 교육의 희망을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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