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면 되는 거야

1화. 달리기

by 루비

앞만 보고 달려왔다. SES의 달리기란 노래처럼. 내 인생은 언제나 넘고 또 넘는 인생의 연속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들면 그동안의 고생이 씻은 듯이 날아간 듯 기뻤고, 고입 시험에서 합격했을 땐 환호에 차 제일 먼저 엄마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대입 시험에 합격해서 그토록 고대한 교대에 가게 되었을 때는 내 인생에 먹구름이란 건 없을 줄 알았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거의 3~4번 바뀌고 반 학급이 무너져서 여러 따돌림과 체벌로 고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 인생은 앞으로 장밋빛만 펼쳐질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상대평가로 운영되는 교대 시스템은 서로를 경쟁자로 만들었다. 학점 경쟁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자가 많은 학교 분위기 상 좋은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여자들의 신경전 또한 치열했다.


“너 시험공부 다 했어?”

“도서관이야.”

“공부 좀 그만해.”


“오늘 민수, 긴 머리의 예쁜 여자랑 데이트하던데.”

“그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눈치 없고 해맑은 여자는 왕따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속을 내보이고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며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은 정글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독이었다. 그렇게 20대를 연쇄적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때 SES의 꿈을 모아서를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뽑던 나는 꿈이란 건 사치인가, 사랑이란 건 이룰 수 없는 건가,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이불속에 처박혀 완전한 폐인이 되었다.


“일어나. 수영장에 가자.”

“가기 싫어. 그냥 내버려 둬.”

“이럴수록 더 힘들어져. 가서 씻고 수영하면 개운할 거야.”


그런 나를 엄마가 일으켜 세웠다. 만날 때마다 싸우고 끊임없는 잔소리에 너무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만, 내가 세상에 무너지고 모든 친했던 사람들한테서 외면받을 때조차도 내 곁을 지킨 건 엄마였다. 씻지도 않고 이불속에서 잠만 자고 가끔씩 영화만 보던 나를 엄마가 억지로 수영장에 데리고 갔다. 엄마는 다이빙도 즐겨할 만큼 수영을 무척 좋아한다. 나도 엄마 따라 쫄래쫄래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물속에서 내가 교사라고 하자 부럽다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내가 휴직 중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그렇게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랜 휴직 기간도 점점 초조하고 지쳐가기 시작하며 빨리 복직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나의 복직 날짜가 다가왔다. 설레는 마음이 커져갔다.


서른 살, 나는 1학년 학생들을 맡게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땐, 내가 아픈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하고 잘 해냈다. 그런데 아이들만 하교하고 나면 복도에만 나가도 쓰러질 듯 온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서 보건실로 가서 침대에 누워있기 일쑤였다. 교무실에서는 없어진 나를 찾는 방송이 들려오고 보건 선생님은 나를 숨겨주었다. 결국 사실을 알게 된 교감 선생님은 다시 나를 휴직하라고 종용하셨다.


“선생님, 휴직하셔야 돼요.”

“교감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 돼요.”

“죄송합니다. 기회를 주세요.”


나는 싹싹 빌고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계속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힘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전년도에 무산된 유럽 여행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늘 읽어왔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헬스장도 다니기 시작했다. 6개월간 다닌 명동성당에서 교적을 옮겨 집 근처 성당에서 세례 받았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연이 끊긴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났다.


마음이 슬프고 울적하고 힘들 때가 많았지만, 새로운 취미생활을 늘려가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매주 홍대입구 역 앞에 가서 색연필화를 배우고, 상담을 시작하고, 피아노와 우쿨렐레도 배웠다. 1학년 아이들은 너무나 귀여웠고, 간간히 대화 코드가 맞지 않아 우울하긴 했지만 동학년 선생님도 잘해주셨다. 젊은 교사 모임에서는 빠졌지만, 새로 알게 된 남자 선생님도 나에게 친절하셨다. 내가 울고 불고 억울함을 토로할 때 교무부장님은 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셨지만 1년 동안 내 편이 되어주셨다. 서럽고 억울할 때도 많았지만 좋은 사람도 많았다.


내가 살던 원룸 앞에는 꽃밭이 있었다. 무슨 꽃인지 이름은 모르지만, 여러 빛깔의 꽃들이 작은 원룸촌 공터에 심어져 있는 게 신기했다. (후에 그 자리에는 식당이 생겼다.) 그래서 종종 꽃들을 구경하고 셀피를 찍기도 했다. 그렇게 간간히 행복한 순간들을 포착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가서 축하를 해주었다. 결혼식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고 또 다른 친구가 예쁘다고 해줬다. (단발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었는데...)


참으로 힘겹게 버텨온 시간들이었는데 지나고 나면 추억이다. 돌이켜보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지만 겪어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면 받아들여야지. 대학생 때 읽었던 소설, <사립학교 아이들>에서는 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면 된다는 문장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야겠다. 이제는 과거는 잊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그리며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지는 데는 참 많은 우연과 기회와 선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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