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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Mar 04. 2019

딸에 대하여-김혜진

독서중독자의 책 이야기

★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폭력이라면 우리 역시 피해자일까.



1.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심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 가면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깃발을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인권이 하나의 커다란 이슈로 자리잡으면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살아야했던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역사적인 문제나 누구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문제들만이 목소리를 냈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미투 운동을 비롯하여 성소주자까지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문제들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딸에 대하여]는 단순히 어머니와 딸의 갈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머니도 딸도 그동안 할 수 없었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단지 어머니는 살아온 세월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면 딸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작은 부분까지도 소리를 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미투 운동을 비롯하여 성 소주자 문제, 성폭력, 미혼모와 낙태 문제까지 인터넷과 사람들 사이로 떠오르는 목소리들은 기존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즉 목소리와 또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낸 목소리를 모두가 응원한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항상 반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가진 힘이 강해서 소수의 목소리는 그릇되고 더러운 목소리가 되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면서 남을 위해 살아온 젠이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치매 노인이 된 것을 보며 그렇게 살아야 했는가 라는 의심과 나 역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딸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어느날 딸의 파트너이며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그 애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딸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2층의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줄 알지만 어머니는 이러한 딸이 부끄럽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 어머니 역시 여성으로서 또는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어하며 딸이 내는 목소리가 나쁘지 않다는 것과 여전히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안다. 단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내 딸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딸에 대해 어머니의 고백적인 문체는 불안감이 드러나 있다. 이는 딸이 목소리를 내고 시위를 하고 다치면서도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과 젊었을 적 수 많은 아이들을 후원하며 존경을 받았던 젠의 모습을 통해 그 끝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존경을 받아도 치매 노인이 되면 기자들도 돌아서고 후원을 받은 아이도 젠을 기어가지 않고 훌륭한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열악한 병원으로 보내버리고 싶어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내 딸도 저리 될까 하는 불안감, 나 역시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젠처럼 되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불안감은 커져갔을 것이다.
 누구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한다. 그리고 분명 말이 안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일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서는 것이 두렵다. 딸은 독립적이다. 가족이라는 일상적인 개념을 벗어나 한 개인으로서 인격과 개인으로서 독립성을 누구보다 존중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젠의 모습을 통해 홀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일임을 알고 있으며 딸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비난 받는 일이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딸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거부한다. 
 예전처럼 모든 이들이 동조할 수 있는 목소리가 유일했다면 이제는 거센 반대와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목소리가 생겼다. 설사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하더라도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라면 개인이라면 동물이라면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존재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그 애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이해한다면 거짓말이다. 둘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동안 살아있을 수 있을까. 거짓말이라도 이해한다고 하면 난 딸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젠을 집으로 데려와 죽을 때까지 보살폈던 것은 딸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것을 알고는 있었기 때문이다. 딸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고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목소리를 내는 딸과 그런 딸을 지켜보며 자신을 배려하는 그애 모습을 통해 그 애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 분명 사람들이 비난하고 욕을 하지만 그것이 그애들 잘못은 아니며 그애들이 동성애기때문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젠은 어머니에게 단순히 돌봐야할 노인이 아니다. 일정한 월급을 받고 요양원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대우을 노인들에게 행하더라도 입을 다물고 넘어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어쩌면 병원에서 잘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그럴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낸다. 오로지 어머니만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새댁은 시원했다며 남몰래 어머니를 도와준다. 
 어머니가 변화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고 딸이 좋은 남자 만나서 평범하게 살길 바라며 남들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는 지혜를 가지길 원했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 젠이 입원한 병원까지 달려가서 딸과 그 애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데려온 것은 어쩌면 나중에 젠이 죽었을 때 후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고 가슴아파하지 않게 지금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어머니가 젠을 데려오고 딸이 멍이 들면서도 전단지를 돌리고 남들이 비난을 해도 그린 옆에서 그린을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양성을 요구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만 거센 반대의 목소리가 더 큰 사회, 그래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폭력이라면 우리 역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책 제목: 딸에 대하여

작가: 김혜진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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