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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Feb 21. 2020

인간 탐욕이 부른 비극 - 박경리의[가을에 온 여인]

독서 중독자의 책 이야기

★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과 집착과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고독괴 소외이 불러운 한국형 비극



1.  푸른 저택이 상징하는 의미 그리고 그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들


  [가을에 온 여인]은 그동안 작가가 써 온 작품들과 다르다. 전쟁과 일제 시대를 거쳐온 한국의 모습과 그 속에서 관습과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왔다면 이 작품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인간이 가지는 본성과 내면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푸른 저택은 부를 의미한다. 당장 하숙비를 구할 수도 없는 성표에게 푸른 저택은 자신이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아름답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그 저택은 성표에게 혼란과 혼돈만 가져다주는데 푸른 저택은 탐욕과 집착과 이기심이 뭉쳐 상처받은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인물들을 푸른 저택 안과 밖으로 분리해놓고 있다. 푸른 저택을 의미하는 오부인과 강사장, 영희, 현박사는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신분적으로 영희는 오부인과는 다른 사람이라 볼 수 있지만 미술을 전공하고 오부인을 가장 가까이 닮아 있어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남자 때문에 고생하는 정란이나 노대중과 같은 인물은 전형적인 서민의 모습이라 볼 수 있고 작가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이다. 기존의 작품들과 이 작품이 괴리가 느껴지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는 작가의 작품 속에 정란이나 노대중과 같은 모습을 보았다면 이 작품에서 그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오부인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푸른 저택은 반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죽어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푸른 저택은 시간이 멈춰있다. 그래서 항상 푸를 수 밖에 없다.  사랑이 없는 곳 그래서 시간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푸른 저택은 죽어 있으며 아름답지만 그 안은 추악할 수 밖에 없기에 푸른 저택은 반어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각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푸른 저택의 사람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부와 지성을 겸비한 사람들이다. 똑똑하고 아름답고 돈이 많은 사람들, 그래서 다른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지만 실상 그 안에서 상처가 나고 고름이 터져 나와 악취가 풍기는 사람들이다. 사랑을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들, 허영과 허세에 잡혀서 악과 선을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겉과 다른 인간의 또 다른 내면을 보여준다.

 반면 천부적은 자질을 가졌지만 가난하기에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정란은 소시민적이다. 남자 때문에 자신의 재능마저 발휘하지 못하는 정란의 모습은 어리석고 바보 같이 보인다. 그러나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애정과 누구보다 삶에 대한 애정은 순수하다.  

  결국 푸른 저택이라는 공간 속에서 서로가 상처 입히고 상처주고 사랑이 없는 탐욕과 순수함이 없는 집착과 이기심은 인간을 추악하게 만들고 비극을 불러일으키는데 나중에 진정한 가수가 되어가는 정란과 비교되면서 푸른 저택은 더욱 추악하고 신랄하게 비쳐진다.


2. 신성표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의 소외와 고독


 신성표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젊은이를 상징한다. 재능이 있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그 재능을 펼칠 수 없는 인물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음대를 졸업하거나 공부한 인물들이다. 작품 속에서 성표가 가르치는 과목 역시 피아노이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음대가 가지는 위치가 어떤 지 알 수 있는데 최경자와 같은 인물을 통해 우아하고 품위 있으며 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인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돈 걱정없는 최경자와 같은 인물에게는 우아하고 고상하지만 당장 하숙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청년 성표에게는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성표는 당시  미래에 대해 꿈을 꿀 수 없어 더욱 소외되고 외로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을 표상하고 있으며 영희도 이와 마찬가지로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이 있지만 결국 스스로 타락해버리고 외로움을 느낀다. 후에 성표가 만나는 나성구 역시 뛰어난 재능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작곡가로 전략하게 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가지는 상실감과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성표처럼 재능이 있지만 가난해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영태처럼 돈은 있지만 재능이 없는 젊은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올곧은 인물은 영태는 집은 부유하지만 음악에는 재능이 없다. 그래서 항상 방황한다. 그래서 고립되고 소외됨을 느낀다. 그래서 영태는 성표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성표의 재능에 이끌려 성표를 따라다닌다. 그가 정란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도 푸른 집 사람과는 다르게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3. 한국형 비극의 묘미 [가을에 온 여인]


 비극의 시작은 작은 점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애인의 배신, 가족의 비밀, 이룰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절망 등. 그리고 비극은 쉽게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사랑도 배신도 미래도 마찬가지다.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어서, 재능은 있지만 돈이 없어서 그래서 절망이 가득차고 비극이 일어난다.

 이 작품의 비극은 푸른 저택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모든 본성이 압축되어 있고 거기다 한국사회의 비극이 곁들어져서 누군가를 죽이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지 않으면 해결 될 수없다. 그래서 비극이다. 기존의 작품에서 운명에 저항하거나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슬프다. 슬퍼서 비극적이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비극은 추악하고 더럽다. 그래서 절망적이다. 반면 푸른 저택 밖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정란은 더 이상 나이트 클럽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영태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비극적이지 않다. 세형은 변할 것이 없지만 정란은 절망적이지 않다. 삶에 대해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맞서고 있지만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면은 볼 수 없다. 푸른 저택은 절망덩어리다. 강사장의 사업이 망한 것은 그동안 이어오던 비극을 마무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외면적인 일은 비극이 되지 않는다. 푸른 저택을 감싸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상처와 슬픔이 비극을 초래한다. 결국 비극은 죽음으로서 끝이 나고 푸른 저택을 감싸는 인간의 추악함도 같이 사라진다.




가을에 온 여인/박경리/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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