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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오늘 하루 어땠나요?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7] 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방'(1932), 셸던 뮤지엄

뉴욕의 한 아파트입니다. 밖에서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네요. 그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다. 몸도 서로를 향하기 보다는 빗겨있거나 상체를 뒤틀고 있습니다. 완강한 거부와 외면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자의 다리는 남자를 향하고 있어 대화나 교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만 굳게 다문 입을 보면 스스로 먼저 다가갈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 남자는 좁아보이는 암체어에 자신을 꼭 가둔 채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서로 고개를 들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합니다.

집 안에 밝게 켜진 조명으로 미루어 밤이 분명합니다. 두 사람 모두 힘든 하루를 보낸 것처럼 보입니다.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뉴욕에서의 하루가 어떨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하루는 전혀 새롭지 않은, 무한히 반복되어온 것일테지요. 내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 두 사람은 관계보다는 혼자를 택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간과 공간에 놓여있지만 철저히 혼자인 듯 행동하고 있습니다. 마치 서로가 없는 취급을 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유난히 좁아보이도록 구겨넣은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심리적 간극은 마치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도달할 수 없어 보입니다. 

흔히 이러한 그림을 보며 고독, 소외, 공허 등을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외로운 것이 분명한데도 이상하게 각각 외로워만 할 뿐 그것을 해소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너무 지쳐버린 탓일까요. 아니면, 차라리 혼자가 좋은 것일까요.




에드워드 호퍼는 뉴욕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무렵의 뉴욕 풍경을 화폭에 옮겨담은 화가입니다. 위 그림처럼 뉴욕의 한 장소를 특정해 제한된 공간을 정지된 듯한 화면으로 그려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빠르게 변해가는 뉴욕의 삭막함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여유를 잃고 바쁘게 내몰리는 삶이 주는 공허함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디 하나 마음 둘 곳 없는 뼛속 깊은 외로움을 소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뉴욕의 이러한 변화에 완강히 맞서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대로 그리고 또 그릴 뿐입니다. 그가 느끼는 바는 뉴욕의 부산함 이면에 자리한 고요와 혼자였습니다. 이를 외로움, 소외, 공허라고 부르는 것은 무언가 부족해보입니다. 딱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나이트호크(1942),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오히려 그의 그림에는 박제된 시간과 진공의 공간이라는 다소 환상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가구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그들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 곳, 그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정지, 멈춤에 있습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는 노래에 맞춰 그대로 멈춰버린 것이죠. 이 놀이의 규칙은 먼저 움직이거나 키득거리거나 하면 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철저히 서로 시선도 외면하고 오로지 아무 것도 하지 있지 않음(무위)에 집중해야 합니다. 시선을 둘 무언가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바로 위 그림 속의 두 남녀처럼 말이죠. 그들은 절대로 먼저 바라보지도 않고 말을 걸지도 않을 것입니다. 멈추어버리기로 했기 때문이지요. 




그림 속에 사람이 등장하면 우리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 그림의 경우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까지 관계에 집중을 하게 되죠. 

하지만 에드워드 호퍼는 이러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 혼자 등장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역시나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지요. 그림 속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마저도 아예 지워버리고 빈 방, 덩그러니 놓인 집, 가로등 불빛이 빛나는 골목 등 사람을 위한 곳이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 풍경도 자주 그렸습니다. 진공의 공간, 정지된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추라고 주문을 하는 것일까요.


다시 한번 위의 그림을 들여다 봅니다. 여자의 얼굴에는 왠지 불만이 가득해 보이고 남자는 무심하고도 완강하게 여자의 신호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 있습니다. 관계에 위기가 왔고 상담을 받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조언을 해주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문제가 보이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만 내버려두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또는 두 사람의 관계가 꼭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은 꼭 서로를 바라보아야만 하나요? 두 사람은 분명 즐거워 보이지도 않고 관계가 좋아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꼭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식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을 바에야 끝내버리는 것이 좋을까요? 둘의 관계가 꼭 나빠질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누구나 힘든 날을 보냅니다. 그런 날에는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함께 하는 사람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어주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림 속의 두 남녀는 오늘이 어쩌면 그런 날인지도 모릅니다. 




호텔 방(1931), 티센 보르네미서 미술관

신문을 든 두 팔을 무릎 위에 놓은 채 신문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남자는 진짜로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일까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자세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있을 때에든, 혼자 있을 때에든 이렇게 손에 무언가를 쥐고 들여다보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손에 쥔 것을 열심히 읽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눈은 손에 고정되어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들은 왜 그러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려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자신만의 시공간으로 가뿐히 뛰어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곳에서 그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은 채 스스로를 비우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채우고 있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까요.  

이때 그들의 얼굴은 아예 보이지 않거나 무표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의식할 필요도 없고 어떠한 가면도 필요가 없을 때 우리의 얼굴은 흔히 아무런 표정이 없습니다. 그것은 곧 자유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혼자만의 시간, 정지, 멈춤은 곧 진정한 휴식이 되는 셈이지요.  


온전히 혼자가 되어본 자만이 그 시간이 주는 평온과 자유, 고요와 무위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르골을 돌리면 감미로운 음악이 나오지만 그것이 멈추었을 때의 적막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오르골 안에서 춤추는 인형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정지한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림 속 그들을 판단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바라봐주고만 싶습니다. 오늘 하루 어땠나요? 마음 속으로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물론 대답을 들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 혼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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