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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당신의 정원에는 무엇이 자라나요?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8] 클로드 모네

(좌) '화가의 정원, 지베르니'(1900), 오르셰뮤지엄 / (우) 모네의 지베르니 집과 정원 - Photo Ariane Cauderlier  

지베르니는 파리의 북서쪽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방의 한 마을입니다. 모네가 말년을 보낸 집과 정원이 있는 곳이죠.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는 시기에는 모네의 집과 정원을 보기 위해 전 세계로부터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마치 물감을 담아놓은 팔레트처럼 가지런히 심어진 꽃들과 나무들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모네는 평생을 인상주의 화풍에 머물며 빛과 색의 향연을 캔버스에 옮기는 데 충실했던 화가입니다. 아카데미의 정석에 반기를 들고 형태보다는 색에 중점을 두며 순간의 인상을 담아냈습니다. 빛의 작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의 은은하고 오묘한 번짐 효과는 모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883년 지베르니로 이사를 온 뒤 숨을 거둔 1926년까지 43년 동안 그곳에 머물며 모네는 자신만의 집과 스튜디오, 정원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동안 빛을 찾아 들판이든, 강 위든, 해변이든, 어디든 밖으로 나가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리던 모네에게 자연에 둘러싸인 자신만의 공간, 물과 꽃과 나무가 있는 자신만의 정원을 만드는 일은 어쩌면 평생의 바람이자 꿈의 실현이었을 것입니다. 

1890년까지 렌트로 살다가 집과 근방의 땅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돈이 모이자 모네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과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즐비하고 회양목으로 구획지어진 원래의 정원을 자신의 계획대로 대폭 변경했습니다. 

집 정문에서 길까지 쭉 이어지는 길에 늘어선 나무들을 집 앞의 두 그루만 남기고 모두 잘라낸 뒤 그곳에 금속으로 된 아치를 만들어 세우고 덩굴장미를 심어 꾸몄습니다. 회양목도 모두 뽑고 넓고 확트인 꽃밭을 만들어 수선화, 튤립, 양귀비, 모란, 붓꽃을 심었습니다. 중간중간 벚꽃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어 낮게 핀 꽃들과 높낮이에 균형을 이루고 녹음이 지도록 했습니다. 이리하여 저마다의 색으로 피어난 꽃들로 가득한 정원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뿌듯하고 흐뭇한 일이었을까요. 


모네에게 정원을 꾸미는 일은 지치지도 않고 쉼없이 평생토록 이어지는 과업이었습니다. 1893년에는 집 앞 철길 건너편의 땅을 사서 제2의 정원을 짓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 유명한 수련연못이 있는 정원이었습니다. 정원 안에 연못을 만들기 위해 모네는 마을에 흐르는 엡트 강 유역의 루 하천에서 물이 새어들어오도록 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습니다. 

이를 위한 허가를 받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모네가 심은 이국적인 나무와 식물들이 강을 오염시킬까봐 두려워 이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난관을 뚫고 모네는 연못을 만들어 그 위에 수련을 띄웠습니다. 일본풍의 다리를 놓아 녹색으로 칠하고 등나무를 심었습니다. 연못 주변에 수양버들과 단풍나무, 대나무, 진달래나무 등을 심어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정원을 완성했습니다. 당시 일본 판화에 푹 빠져있던 모네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것이었죠. 

이렇듯 대대적으로 만들어낸 정원을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정원을 가꾸는 원예에 몰두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당연히 전문 정원사를 일곱명이나 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네의 정원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모네의 캔버스에 옮겨지기 위한 전초전이었던 것이죠. 이제 이 시기에 완성된 모네의 그림들을 살펴볼까요?




위의 그림을 먼저 볼까요?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과 보기좋게 드리워진 나뭇잎들, 환한 햇빛이 가득 들어선 정원은 빛과 색으로 찬란합니다. 정원의 실제 모습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모네 사후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모네의 집과 정원은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거듭났습니다. 때문에 사진과 그림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모네가 느낀 감흥을 경험하기에는 충분합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림이 주는 감흥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요? 그림에서는 꽃과 나무가 보다 더 밀도있게 표현되었네요. 즉, 각각의 형태와 색으로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어우러져 빛과 그늘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좌) '수련연못, 그린 하모니'(1899), 내셔널갤러리 / (우) 지베르니 정원의 일본풍 다리 Photo Ariane Cauderlier

이러한 효과는 연못이 있는 정원을 그린 그림에서 더욱 확연합니다. 모네가 자신의 정원에 연못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는 바로 물에 비친 빛과 색의 효과에 흠뻑 빠졌기 때문입니다. 물의 표면이 흡수하고 반사하는 빛의 농도에 따라 공기 중의 색과는 다른 부드럽고 은은한 색을 띠는 것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아침에 안개가 끼었을 때에는 또 얼마나 신비로운지요. 

연못에 수련이 가득할 때는 또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뿜고는 했습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수련의 잎은 마치 구름인 듯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그 위로 피어난 연꽃은 흰색,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 등 다채로운 색을 뽐내며 피어오르곤 했습니다. 

일본풍 다리 위에는 등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그 주변을 가득 채우는 수양버들이 드리우는 늘어진 가지와 잎들은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신비롭고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모네는 자신의 정원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또한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많은 지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정원을 함께 둘러보고는 했죠. 

자신이 원하는 것, 정확히는 그리고 싶은 것을 정원 안으로 모두 들여왔으니 이제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어졌겠지요.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과 나무의 색, 아침 저녁으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물의 표면, 한 낮의 햇빛 속에서 따사로이 빛나는 공기, 이 모든 것들은 모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특히 수련 시리즈는 모네가 1899년 그리기 시작해 20년이 넘도록 지속적으로 그려낸 연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위의 그림처럼 일본풍 다리 아래 놓인 수련들을 그리는 방식으로 주로 그렸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크고 넓은 캔버스에 오로지 연못 위에 띄워진 수련만을 그리는 방식으로 나아갔습니다. 


(좌) '수련'(1917-1919), 호놀루루 아트뮤지엄 / (우) 지베르니 정원의 수련 연못 - Photo Ariane Cauderlier

연못에 비친 하늘의 구름으로 인해 마치 구름 위에 수련이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피어난 수련 잎들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또 얼마나 무심한 듯 오묘한가요. 크고 작은 원들이 모여 의도하지 않은 무정형의 모양들을 만들어내고 그 위에 점점이 찍힌 붉은 빛의 연꽃은 잎 위에 살포시 얹혀져 강렬한 색의 대비를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모네의 수련 시리즈가 20세기 추상화와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꿈을 담은 정원을 완성하고 지속적으로 가꾸며 그에서 영감을 받아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모네. 그의 정원에는 봄이 오면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꽃이 피고 푸른 나무가 자라며 연못이 고요히 드러납니다. 자연이 어김없이 순환하듯 그의 정원도 순환하며 영원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웠던 그의 정원에는 햇빛을 받으며 피어나고 자라는 꽃과 나무 외에도 모네의 생각과 취향, 애정과 헌신이 가득합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작업이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꽃과 나무는 생명력이 넘칩니다. 실제의 정원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정원이라도 한 번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끼고 가꾸며 바라보고 애정을 쏟아부은 당신의 정원에는 무엇이 자라나요? 모네의 그것만큼이나 아름답고 흐뭇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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