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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당신의 뒷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15] 구스타프 카유보트

'Youngman at His Window'(1875), 개인 소장

젊은 남자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은 채 꼿꼿이 두 발을 딛고 서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창 밖입니다. 햇빛이 가득한 바깥 공간은 어두컴컴한 실내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듯하게 들어선 건물과 깔끔하게 닦은 도로가 꽤나 현대적으로 보입니다. 밖에는 파리의 시민들이 한산하게 걷고 있습니다. 극적인 원근법의 사용으로 바깥의 사람들은 아주 작은 반면 남자의 존재감이 캔버스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밖으로 작게 보이는 여인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청명하고 잔잔한 바깥 공기를 즐기고 있는 것일까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뒷모습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표정도 알 수 없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보니 무표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집일 가능성이 높으니 아무런 경계심도 없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방심하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자신의 뒷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있으리라고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요? 따라서 그는 자신이 방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줄도 모를 것입니다. 즉, 가장 진솔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뒷모습을 본 적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경도 잘 쓰지 않게 되지요. 하지만 남들에게는 어쩌면 우리의 뒷모습이 더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그 사람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입니다. 경계가 필요없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에게는 뒷모습을 보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 그림 또한 가족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Youngman at His Window'(1875)는 카유보트가 자신의 동생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일까요? 그림 속 남성은 창밖을 자주 보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어쩌면 집에서 주로 지낸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죠. 

카유보트는 사람의 뒷모습을 주로 그렸습니다. 뒷모습을 그릴 때에는 위 그림처럼 동생을 모델로 했음에도 주로 익명성을 강조해 젊은 남자 또는 남자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장소나 행위를 묘사한 그림에서도 사람이 등장할 때에는 주로 뒷모습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초상화처럼 앞모습을 그린 그림에 더하여 굳이 뒷모습을 그린 그림을 하나 더 그렸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이고 싶었던 것일까요? 대상에 익명성과 동시에 보편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관람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하도록 하기 위함일까요? 결국은 세 가지 다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만, 다시 위의 그림을 보겠습니다. 

이 그림은 제목에 나와있듯이 젊은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바깥도, 실내도 주인공은 아닙니다. 따라서 화가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그린 것으로 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델처럼 억지로 불러다 세운 것이 아니라 평소의 모습이나 순간의 장면을 포착한 것처럼 보이는 즉흥성이 있습니다. 동생을 그렸음에도 굳이 젊은 남자라고 지칭함으로써 익명성을 부여하면서 누구나가 될 수 있는 보편성 또한 갖추었습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아도 자세나 분위기를 보아 상태를 짐작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사실 뒷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즉, 그는 현재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뒷모습은 모호해서 해석의 여지가 많고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오히려 자유로운 면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면서도 정작 중요한 부분은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지요. 한편으로는 뒷모습의 상대에게 자신을 감출 수 있기에 그 대상에 대해 가장 솔직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가는 대상의 감정이나 대상에 대한 감정이 아닌 화가 자신의 감정 자체를 그 사람에게 투영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카유보트는 이에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그가 그린 뒷모습은 대체로 쓸쓸하면서도 사색적인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바로 위의 그림처럼 말이죠. 




당시 파리의 상류층으로 살면서 카유보트는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취미 생활을 하면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도 그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에 대해 진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살롱에도 출전하고 인상주의자 화가들과 함께 독립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동료 화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그림을 후한 값에 사서 모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82년 이후로는 그림을 그리는 일도 거의 정리를 하고 후원자 및 컬렉터로서의 역할도 잦아들었습니다. 세느 강 북서쪽 지역에 집과 땅을 사 그곳에서 정원을 가꾸고 보트를 제작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정원과 보트에 대한 그의 마음 또한 무척 진지했습니다. 

이렇듯 관조하면서도 열중하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면서 그는 무심한 듯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의 그림에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무료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밖은 잘 정돈된 도시 계획에 따라 새롭게 변모하고 있었죠. 멋진 건물들이 들어서고 도로는 반듯하게 닦였으며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와 다리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도로 위에는 예전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생계를 위해 노동을, 몸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들에게 도시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잘 닦인 도로와 새로 개발된 건물들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점점 더 빼앗아 갔습니다.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죠. 하루하루가 고단했을 것입니다. 

위의 그림 속 바깥의 풍경은 겉보기엔 말쑥해보이지만 왠지 피상적으로만 보입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개미처럼 작게 그려져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왠지 지친 듯 고단해 보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까요? 그러고보니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결코 한가롭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세 또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면서 비장해보인다고나 할까요?

집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거리의 사람들을 무심하게 그려낸 그림들도 많았습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Paris Street, Rainy Day'(1877) 속 사람들은 그저 거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딱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거리를 지나고 있을 뿐이죠. 도시의 사람들은 공간을 차지하는 요소 중 하나일 뿐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파리의 비오는 거리를 보며 낭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카유보트의 의도는 사실 전혀 달랐습니다.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솔직한 편이고 관조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카유보트가 그린 대상들은 부르주아나 귀족 계층이 아니라 노동자들이나 거리 위의 평범한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1875년 살롱에서 퇴짜맞은 그림 'The Floor Scrapers'(1875) 또한 마룻바닥을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그렸습니다. 웃통을 벗고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저속'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좌) 'Paris Street, Rainy Day'(1877), 시카고 미술관 / (우) 'The Floor Scrapers'(1875), 오르세 미술관


이렇듯 카유보트는 다소 드라이하게 당시의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당시의 기준으로는 통속적이라는 표현이 맞았겠지요. 사실 카유보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주로 어울렸지만 그의 스타일은 리얼리즘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가 본 당시의 풍경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이고 관조적인 것이었지만 전통과 권위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낯설고 발칙한 것이었습니다. 




'Man at His Bath'(1884), 보스턴 미술관

목욕을 마치고 나와 타월로 등을 닦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담은 '목욕하는 남자'(1884) 또한 오로지 자신의 몸을 닦는 데에만 열중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담았습니다. 역시나 대단할 것도 없는 모습일 뿐 아니라 은밀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모습이 적나라하고 노골적이이서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아방가르드 화가들 사이에서 비전통적이고 이상적이지 않은 여성의 몸은 종종 등장했지만 남자의 몸을 이리도 통속적으로 그린 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진솔한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당신의 뒷모습이 이 모든 것들을 말해줄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의 뒷모습을 한번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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