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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이 있나요?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9] 장 시메옹 샤르댕

조리도구, 냄비, 캐서롤, 계란이 있는 정물(1733-34), 루브르 박물관

캔버스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묵직한 냄비와 그 옆에 균형있게 자리한 조리도구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계란 세 알과 테이블 아래로 떨어질 듯 아슬하게 놓인 쪽파 하나. 황토빛 계열의 조리도구들, 그보다 톤이 낮은 벽면과 선반의 색은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소박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투박한 표면과 질감이 느껴지는 선반은 튼튼하고 단단해 보이네요. 그 위에 놓인 조리도구들은 아무렇게나 놓인 듯 무심해 보이지만 이보다 더 안정적인 구도가 있을까 싶을 만큼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선반 끝자락에 걸치듯 놓인 작은 단지와 뿌리의 흰부분이 모두 선반 밖으로 나와있는 파는 우연성을 나타내는 듯도 하고 정적인 분위기에 긴박성을 부여하는 듯도 하네요. 단순해 보이는 정물화 하나지만 그 안에 피라미드 구도의 안정감과 다양한 질감의 표면들, 비슷한 계열의 색깔들, 빛과 그림자의 대비, 선반의 깊이감, 정중동의 조화까지 어느 하나 빠짐이 없는 완벽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그림의 구성 요소들을 따지다보면 왜 이 그림에 마음이 끌리는지 설명이 되는 듯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림에 이상하리만큼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이와 같은 정물화는 주류에 속하는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세기 프랑스는 아카데미 미술이 위용을 자랑하던 시기였습니다. 역사화가 언제나 최고의 위치를 점했고 역사화를 그려야만 살롱에 전시하고 입상하고 커미션을 받아 성공과 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 샤르댕은 오로지 정물화와 장르페인팅(실내에서 집안일이나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부녀자와 어린이들을 주로 그린 그림들)만을 그렸습니다. 샤르댕은 어찌하여 비주류에 속하는 그림들을 그렸던 것일까요. 야망이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림 실력이 없었던 것일까요. 어쩌면 역사화를 그릴 만한 지식이나 교양이 없었던 것일까요.


다행이었던 것은 샤르댕의 그림들이 당시 몇몇 평론가들의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샤르댕은 '동물과 꽃' 부문의 화가로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있었고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살롱에 꾸준히 참여도 할 수 있었습니다. 루이 15세도 그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고 당시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의 부르주아와 귀족, 왕족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장르페인팅이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를 반영하듯 샤르댕은 초기에는 주로 정물화를 그리다가 1730년대 중반부터는 장르페인팅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가 그린 장르페인팅을 보고 있으면 왜 그의 그림이 인기가 많았는지 절로 이해가 갑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결코 대단하다고 할 수 없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순수하고 평온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덩달아 마음을 가다듬고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냥 좋아서 자꾸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요. 


17세기 더치 페인팅의 정물화와 장르페인팅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샤르댕의 그림은 이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습니다. 과일, 꽃 등이 시간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다든지 실내 풍경이 공간의 다이내믹한 구성과 디자인을 통해 그림의 재미적 요소를 전달한다든지 하는 더치 페인팅과는 그 결을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샤르댕의 그림은 어떠한 의미 전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훈 같은 것은 딱히 없어 보이고 테크닉을 과시하면서 화가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어떠한 대상을 캔버스에 담아 보여주려고 합니다. 물론 이왕이면 무심한 듯 따뜻하게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샤르댕의 그림에는 말하자면 상반된 두 가지가 병치, 공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분명히 생명이 없는 정물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왠지 온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사람의 손길이 빈번히 닿고 사람에게 많이 쓰이는 물건이라서 그런 걸까요. 비록 무생물의 대상이지만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사람에 의해 쓰이는 물건에서 새어나오는 어루만짐의 흔적 때문이겠지요.

순무를 다듬는 여인(1738), 알테피나코텍 미술관

장르페인팅의 경우에도 사람이 등장하기에 당연히 온기가 느껴지겠지만 샤르댕의 그림은 특히 더 포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장르페인팅에는 또한 그림 앞부분에 정물화 못지 않게 많은 물건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무수히 닿는 물건들이 주변은 물론 바닥 이곳저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러한 물건들에 둘러싸인 사람은 마치 그 물건들로 환치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이 많이 사용하고 자신의 손 때가 묻은 물건을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분신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잘 것 없는 물건, 아무 것도 아닌 물건, 흔하디 흔한 물건에서 따스한 온기와 살아숨쉬는 생명력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곤쿠르 형제는 샤르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평하기도 했습니다. "샤르댕은 비주류 장르를 최고 수준으로, 예술의 가장 놀라운 상태로 끌어올렸다. 한없이 평범한 물건을 마법의 손길을 통해 변모시키는 능력을 통해 정물화의 가치를 이와 같이 높인 적은 없었다."

이렇듯 당시 주류 화가들과는 달리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샤르댕의 그림들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마법과도 같은 능력에 있었습니다. 그 능력이라는 것은 바로 보잘 것 없는 것에 관심을 주었고 그것을 아끼듯 바라보았으며 그것에 애정을 쏟아부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방해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딱히 그림 속 물건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느낌이 좋고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마치 마법에 빠진 것처럼 말이죠. 




샤르댕은 인생의 후반으로 접어들어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작가로서의 작업도 전성기 때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인기가 사그라졌고 역사화를 드높이고자 하는 아카데미 신임 원장의 푸대접으로 아카데미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도 실추되었습니다. 시력도 점차 잃어가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르댕은 죽기까지 절대로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일페인팅이 시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이유로 파스텔로 재료를 바꾸긴 했지만요. 파스텔로는 주로 자화상과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파스텔 초상화에서는 인물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반면 자화상에서는 매서울 정도로 예리하고 단호한 시선이 눈길을 끕니다. 

물잔(1760), 카네기 미술관

하지만 샤르댕이 정말로 좋아하고 끝까지 놓치지 않고 그렸던 그림은 정물화였습니다. 비록 파스텔로 그린 정물화는 없지만 오일페인팅으로 그릴 수 있는 한 마지막까지 그린 것은 거의가 정물화였지요. 샤르댕의 정물화가 부리는 마법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샤르댕 스스로도 정물화를 그리며 그 마법에 빠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릴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꾸 더 그리고 싶고 아무리 그려도 질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의 정물화를 볼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꾸 더 보고 싶고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하찮은 물건이 이리도 정겹고 포근하고 생명력이 가득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더불어 그의 그림을 통해 이를 발견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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