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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Feb 18. 2021

허상과 광명 사이

'소셜 딜레마' 리뷰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기업의 전(前) 직원들이 인터뷰를 위해 의자 위에 앉는다. 그들은 웃고 있지만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그중 하나는 회사와의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중대하면서도 민감한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메일, 소셜미디어 중독. 이 중 하나에라도 중독되어있는 사람 손들어 보시라. 아니 중독되어있지 않은 사람 손들라고 해야 빠를 것이다.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보며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의견을 이야기하는 그들은 사람들의 삶에 편리를 주고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며 다양한 정보를 통해 열린 사고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거대한 IT 공룡기업들의 시작은 이러했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경쟁이 심해지며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면서 처음의 선의는 차츰 그 모습을 잃고 변질된다. 일이 좋아,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가 좋아,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회사가 좋아 열심이었던 그들은 점점 이건 아니라고 의심을 하게 되었다.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용자의 이목을 끌며 그들을 오래도록 붙잡아두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과연 처음에 가졌던 선의에 합당한 것인가. 스스로 자신이 만든 서비스의 중독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들은 이 방향이 옳지 않다고 느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묻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문제가 너무 많아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고 문제가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기 때문에 말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차근차근 들여자보자. 우선 이용자에게 공짜 서비스를 제공하며 광고업자로부터 수익을 얻는 구조 속에서 엄밀하게 말하면 이용자는 상품이 되고 광고업자가 고객이 된다.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은 광고업자에게 좋은 상품을 제공해야 하는데 좋은 상품이란 바로 이용자의 시간과 그들의 취향, 사고, 관심, 가치에 대한 정보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광고업자들은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노출시키고 구입으로 연결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용자를 최대한 웹 상에 오래도록 붙잡아두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개발해낸다. 노티피케이션, 추천 피드 등은 물론 다양한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이용자들은 쉬지 않고 휴대폰에, 노트북에, 컴퓨터에 묶여 지낸다. 

문제는 이에서 더 나아간다. 이용자에 대한 단순한 정보 확보와 눈길 끌기, 묶어 두기를 넘어 이용자들의 사고와 취향을 무의식적으로 조작하고 강화한다는 데 있다. 진짜 뉴스보다 가짜 뉴스에 더 많이 현혹된다는 사실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더욱 더 퍼나르는 것은 물론이고 취향에 맞는 뉴스와 의견만을 골라서 제공하다보니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편향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에 따라 위키피디아의 내용조차 다르게 제시된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객관적인 진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인간의 완전한 패배' '문명의 파괴' '민주주의의 종말' '10대들의 우울증과 자살이 증가했다' '진짜 뉴스가 사라졌다' 등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인간의 생리적 능력은 그대로인데 IT 기술은 AI 등으로 확장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더 이상 이를 소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수익 실현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생태적 한계를 생각할 때 그들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문제를 알았으니 이제 나서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도 문제지만 문제를 알고도 방치하거나 방관하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다큐멘터리는 문제적 상황을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인터뷰에 응한 전 IT기업의 직원, 사업가 및 투자자들, 비즈니스스쿨 교수들은 이에 대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정부의 규제 필요성에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더하여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것들도 제시된다. 노티피케이션(알림)을 끈다, 추천 피드(업데이트)를 클릭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같은 이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팔로우한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제한한다, 이용자들의 정보를 팔거나 추적하는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이스쿨에 들어가기 전까지 휴대폰을 사주지 않는다 등 손쉬운 것에서부터 큰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까지 다양하다. 


휴대폰에서 손을 놓는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만 같고 나 혼자만 소외될 거 같고 나만 뒤쳐질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허상이다. 따라서 허상과 실제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고로 딜레마란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있을 때 쓰는 말이 아닌가. 

허상을 깨는 순간 오히려 어둠이 아닌 광명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다큐멘터리 속 사람들은 의외로 희망적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제 어둠을 벗어나 광명으로 걸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허상이 아닌 실제 속에서 살면 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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