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마을을 지나면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우울이라는 병이 전염병처럼
도시를 휩쓸고 다닌다
캔버스가 회색으로 덮이고
흐릿한 도시의 거리가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검은 실루엣의 한 여인이
그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따금씩 불을 켠 차량만이
거리를 밝히며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바람
여인은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녀가 한 점 그림으로 사라질 때
나도 조용히 붓을 내려 놓는다
먼 산에선 구름 걷히며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푸른 담쟁이(이정렬)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날이 맑으면 맑은대로 좋고 흐리면 흐린대로 좋지요.
이른 아침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가
내려서인지 거리는 조용합니다.
그때 문득 내가 그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지요. 내가 바라본 것은 분명 수채화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