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제2의 고향, Hawaii
학생 시절, 그때를 생각해보면 나에게 휴식이란 막연히 공휴일이 주어지면 쉬는 것, 모두가 쉬는 날 자의로 가 아닌 타의로 주어진 휴식에 쉬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 휴식의 방식과 의미는 조금 더 다양하게 변했단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누군가가 쉬라며 정해준 휴일에 쉬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정한 시기에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휴식이라고 할까 (물론 삶의 발란스를 너무나도 강조하고 휴가를 너무 잘 이해해주는 회사 문화 덕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한 이후로 아무리 많은 면에서 자유를 이해해주는 회사라고 할지라도, 대기업의 특성상 회사에서 정해진 시스템 하에 잦은 미팅과 계획들, 절차대로 따르는 방식에 하루의 일과 중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그런 나에게 때론 그 틀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 틀 안에서 벗어나 가끔씩은 자극적인 것들이 인생에서의 소소한 기쁨과 재미를 주듯, 가끔은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은 충동적인 휴식을 선물하여 여행 중의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게서 오는 소소한 추억을 선물하기도 하며, 어떨 때는 정말 힐링이 필요한 나에게 함께 있으면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쁨과 힐링을 주는 소소한 선물이 되기도 하며, 특별한 큰 명목이 없어도 어느 휴식이건 나에게 잔잔한 여운과 배움을 남겨주는 것은 사실이기에 난 여행이, 휴식이 참 좋다.
다시 이곳을 찾기까지 나에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한 곳이 하와이였기에, 그만큼 미숙했던 그때 그 시절의 아등바등하였던 나의 힘든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이곳을 찾겠노라 마음을 열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까진 조금 오래 걸리지 않았나 싶다. 지금 그 당시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해보면 사실 애잔하고도 기특하기도 하다 (짠내가 조금 나는 건 사실이다). 오랜 기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에게 이젠 하와이의 좋은 기억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해줘도 되지 않나 싶어서 적당한 타이밍에 기회가 되어서 하와이행 티켓을 구입하게 되었다.
여행은 가끔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를 선물한다
이번 여행도 역시나 나에겐 '무계획' 여행이었다. 인생에 소소하고 사사로운 건 너무 지나치게 고민하고 신경 쓰는 건 건강에(?) 좋지 않으니 대신 인생의 큰 결정이다 신중해야 하는 중요한 일에 좀 더 에너지를 쓰는 게 효율적이다고 믿는 나만의 인생에서의 '미니멀리즘' 탓에 나는 무계획 여행을 선호 한다. 무계획 여행의 장점은 어차피 여행 가서 할 고민 걱정, 부딪히면 다 해결될 것들을 여행 전부터 계획과 스케줄에 대한 고민거리를 굳이 안겨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때 어차피 할 고민은 그때 하자는 편이기에 필수적인 것 (항공과 첫날 숙박) 외에 사사로운 건 계획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은 꼭 있기 마련.. 꼭 가져가야 할 것들을 깜빡하는 일도 생긴다.
하와이에서 young professional들과 함께하는 네트워킹 행사에 초대받았다. 나갈 준비를 다 하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봤는데 정작 그때 입어야 할 드레스만 쏙 빼놓고 챙기지 않는 해프닝이 생기는 일도 있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사진에 정신이 팔려서 차키를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놀다 물속에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식으로 차키를 찾는다던가 (하와이 물이 맑았기에 가능한 일)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생긴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평생 우려먹을만한 덜렁이 딱지를 붙이게 되고 '너같이 덜렁대는 애가 회계사 하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라며 하나같이 입을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휴식이 나에게 값진 것은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 덕에 직장 생활하면서 만들어진 나의 '성격'에 묻혀 잠시 잊고 지냈던 본연의 나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 주는 소소한 행복이 주어지기에 여행이 가장 나다울 수 있고, 가장 값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발레리의 유명한 말 중 하나이자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차 키를 물속에서 겨우 찾아내고, 마카푸 포인트를 지나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던 중 코코 해드를 보고 무작정 차를 세웠다. 지대도 높고 해안가라 바람이 좋아 한참을 기대어 서서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늘 짜인 일상,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에 하루 중 내 머리가 온전히 일을 잊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봤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폴 발레리의 말처럼 생각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면 정말 일만 하다가 발전 없이 인생이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나는 억지로라도 조금씩 머릿속의 일 생각을 비우고, 휴식할 때만은 온전히 이 시간 만은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나를 위한 시간들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다른 생각들은 뒤로한 채 온전히 나에 대해만 집중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불현듯 생각나는 프로젝트, 불현듯 생각나는 미처 끝내지 못하고 온 것들 등등.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휴식을 취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되고, 그 휴식 안에서 온전히 나를 위한시간을 가질수록, 그 과정에서 행복해하는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이기에 이 휴식의 순간이 더욱 필요하고도 값진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