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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Mar 18. 2024

【자격증으로 주부 9단 도전】

   전업주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7개월이 지나고 뭔가 생산적인 주부생활이 없을까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다보면 전문가 소리를 듣지만 왜 주부는 전문가 소리를 듣지 못할까? 그냥 주부 8단 또는 9단 이란다. 그래도 뭐 태권도 8단, 바둑 8단 하면서 8단만 붙이면 경지에 올랐다는 소리니 주부 전문가나 주부 8단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들렸다.     


 나날이 늘어가는 칼질 솜씨, 이제 소리가 꽤 ‘다다다닥’ 한다. 계량컵이나 계량 숟가락이 없어도 밥숟가락 하나면 뚝딱 간을 맞춘다. 그렇게 국과 찌개를 끓이고, 볶음은 기본이 되니 마음속에 도전정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그래 이놈의 전업주부 생활도 뭔가 ‘쯩’이 하나쯤 있으면 전문가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여기 저기 알아보았다. 그리고 폴리텍대학의 신중년과정을 지원했다. 와우 27명 모집에 거의 160명 정도가 왔으니 경쟁률이 6:1. 면접부터 기가 죽었다. 여기도 떨어지면 아주 짜증 지대로다.     


 면접을 보고 보름 남짓 기다리면 발표였다. 그리고 드디어 발표가 있던 날. 내 주민번호를 치고 들어가니 예비합격 2번이었다. 합격이면 합격이고 불합격이면 불합격이지 이런 젠장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하루를 꼬박 기다리고 이틀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었다. 그래 내 인생에 추가합격은 없는 일이다 생각하고 그날 친구의 위로주에 간만에 코가 좀 삐뚤어졌다.     


 숙취에 비몽사몽 몸을 가누기 힘들던 오전 11시, 자리를 털고 좀 일어나려고 하니 ‘징~~’하면 문자가 울렸다. 아무 생각 없이 본 문자에는 ‘축하합니다. 추가합격 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순간 ‘야호’하며 펄쩍 뛰었는데, 내 옆에서 축하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합격통지 문자를 캡쳐해서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나니 그제야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렇게 들어간 4개월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불편한 포장마차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조리실의 잦은 온도 변화와 오후 내내 서서 조리실습을 하는 것은 50대 후반인 나에게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그래도 80이 넘으신 어른도 묵묵히 실습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불평은 사치임을 느꼈다.      


 첫 조리 실습으로 표고버섯 전과 두부조림이 제시되었다. 나는 하나의 음식을 마치면 다음 음식을 하는 것에 익숙한데, 자격증을 받기 위해서는 두가지 음식을 동시에 하는 멀티플레이에 능해야 한단다.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여성들이 멀티플레이에는 능수능란했다. 재료 썰기를 마치면 어느 재료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헷갈렸다. 아~~ 포기할까 싶었다. 그냥 자격증은 됐고, 4개월 즐길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저 멀리 그 80대 어르신이 또 어른어른 했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인데 떨어지더라도 끝까지 해보자는 다짐이 다시 섰다. 그리고 이제 보름이 지났다. 손이 붓는다. 물과 세제에 노출된 내 손이 ‘도라에몽’ 손보다 더 동글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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