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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Sep 18. 2021

여편네 : 여편네의 방에 와서, 만용에게

- 김수영의 다원주의(16)

여편네 : 만용에게, 여편네의 방에 와서


[거대한 100년, 김수영] (17) 여편네 <독살을 부리는 자본 옆에서, 졸렬한 타박이라도 하여야 했다>에서 맹문재 교수는 김수영의 시 작품에 쓰인 여편네를 아내를 비하한 의미로만 한정하는 시각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수영의 시에서 여편네는 물질주의에 함몰된 전형적인 인물을 겨냥한 의도로 이해해야 온당하는 것이다.   


문재 교수가 김수영의 시에서 여편네를 “시인이 의도한 특별한 상징의 대상”으로서 "물질주의에 함몰된 존재에 대한 멸시와 경멸이 투영된 호칭”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맹 교수 「만용에게」(1962)에서 김수영 자본을 상징하는 여편네 적으로 간주하고 대결했다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수영 여편네를 사회적인 자본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활의 상징으로 활용하면서, 육체를 가진 인간이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로 인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그는 현실적인 “수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자기나 “여편네”나 매일반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모이 한 가마니에 430원이니 한 달에 12, 3만 환”이 들어간다고 덧붙인다.


맹 교수는 이를 두고 “여편네”가 430원짜리 닭 모이 한 가마니로 이틀을 먹일 경우 한 달의 사료비가 6450원이면 되는데, 실제로는 12만~13만환이 들어가니 그 원인이 무엇이냐고 남편에게 따지는 말로 해석한다.


그리고  “여편네”는 사료비가 두 배로 들어가는 원인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만용이”의 실수나 소행을 의심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지금 발화자는 여편네가 아니라 분명히 남편인 김수영이다. 그는 자신이 비록 초월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시인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수입을 “계산”해야 하는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라는 고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맹 교수의 말처럼 여편네는 양계를 사업으로 간주해 수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반면에 남편은 수입보다는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해준 것으로 여긴다는 이분법이 여기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여편네와 구별하는 것은 언제나 수입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는 수입만 따지는 여편네와 달리 상황에 따라 생활과 예술 사이를 오가는 생활인이자 시인이다. 그가 지금 “새벽 모이”를 주장하는 이유는 제목인 만용이 때문에 돈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의 계산에 의하면 닭 시중하는 “만용”이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여기서 만용이는 그의 산문 「양계 변명」에 소개된 것처럼 담양에서 올라와서 그의 집에서 야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간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이다.


새 학기에 그의 수업료를 내주어야 하는데 그 학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만용이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그는 알을 많이 낳아 수입을 올리려고 “새벽 모이”를 주장한다.


하지만 아내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반대한다. 그래서 아내와 충돌하는 “주기적인 수입 소동”이 날 때는 자신도 아내에게 지지 않고 맞선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시인으로서 초월적인 예술을 추구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현실 생활을 위해 아내 못지않게 독기를 부리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그는 만용이의 미래를 위해 소중한 학비를 벌기 위해서 독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너와 내가 반반”이라고 마무리하는 것은 여편네와 자신의 생각을 모두 긍정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것은 단지 모이 주기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을 상징하는 아내와 초월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자신이 반반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자신은 현실적 생활과 초월적 예술을 모두 긍정하면서 양극의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문재 교수는 여기서 김수영이 물질주의적 잣대로 자신을 소외시키고 경쟁을 부추기는 여편네를 적으로 간주하 맞서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김수영이 이 싸움에서 자신이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여편네가 자본가라면 자신은 고용인이고, 여편네가 전문가라면 자신은 비전문가이고, 여편네가 프로라면 자신은 아마추어임을 체득”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맹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이 이길 수 없는 자본과의 싸움에서 주눅 들지 않고, 물러서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의 시가 당대적이면서도 시대를 넘을 수 있는 힘은 그 누구보다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소시민성을 부단히 반성하면서 대항한 데 있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힘센 여편네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대결했다. 결국 자신이 추구한 자유정신을 온몸으로 밀고 나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김수영은 자본을 상징하는 여편네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입만 따지는 여편네 못지않게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생활인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적인 돈을 무조건 부정하지 말고 젊은이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시인으로서 초월적인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인간으로서 현실적 생활도 함께 긍정하면서 그 양극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이다.  


한편 김수영이 여편네를 적으로만 간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의 시적 사유와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여편네의 방에 와서」에서도 나타난다.


문재 교수는  이 시에 나오는 “어린애”를 두고 “독살을 부리는” 자본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졸렬한 타박”에 그치는 김수영의 소시민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김수영은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정치혁명에서 시인으로서의 개인적 문학혁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그는 “여편네의 방”으로 왔는데도 “소년”처럼 되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여편네의 방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을 상징하고, 소년은 “성을 내지 않는” 어리고 순수한 존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빗대어 신귀거래(新歸去來)를 이 시의 부제로 삼고 있듯이 군사 쿠데타 직후 사회적 혁명의 광장에서 개인적인 생활공간인 밀실로 물러나서 소년처럼 어리고 순수한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가 “죽음”이 오더라도 “바다”의 물결과 “나무”와 “물”의 체취를 다해서 “어린 놈”에게“성을 내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도 군사 쿠데타로 인해 광장에서 밀실인 여편네의 방으로 쫓겨 왔지만, 흥분하거나 성을 내지 않고 소년처럼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당시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혁명공약”을 발표하고, 혁신계 신문인 《민족일보》를 강제로 폐간했으며, 교원노조를 비롯한 노동조합들을 해산해 버렸다.


이런 “죽음”의 상황에서 시인은 단순히 흥분하고 성을 내는데 그치지 않고, “대자연의 법칙”(「기도」)을 본받아 성취한 “작년” 사월혁명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소년처럼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태양”, “죽음”, “언덕”, “애정”, “사유” 아래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어린애”로 설정하는 이유도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시 새로운 혁명을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 “간단(間斷)” 아래의 어린애가 되겠다는 말은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에서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 세계는 그러한 무수한 간단(間斷)”이라고 했던 것이나, 「가다오 나가다오」에서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라고 했던 것처럼 혁명은 무수히 끝나고 시작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리고 점에서 선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점(點)”의 어린애나 혁명에 대한 고민을 의미하는 “베개”, “고민”의 어린애도 모두 새로운 혁명의 시작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자신이 “어린애”를 더 사랑하고, “어린 놈”도 내 눈을 안다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군사 쿠데타로 어쩔 수 없이 방을 바꾸었지만, 자신이 어린애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진정으로 기쁘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제는 사회적 혁명의 방에서 나와 개인적인 생활공간인 여편네의 방에서 새로운 혁명을 기쁘게 시작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인이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혁명이 무엇인지는 곧바로 이어지는「격문」에서 보다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시인은 군사 쿠데타 이후 마지막의 “몸부림”, “신경질”, “방대한 모조품”, “막대한 모방”, “증오”, “굴욕”, “치기”, 그밖의 무수한 “잡동사니와 잡념”을 깨끗이 버리고, 자연적인 공간인 시골에서 “농부”의 몸차림으로 갈아입고 “석경(石徑)”을 보니 모든 것이 다 편편하고 시원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자신이 “진짜 시인”이 되었으니 시원하고, 이 시원함이 “진짜이고 자유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군사 쿠데타 이후 사회적인 정치혁명이 죽어버린 상황에서 시인으로서 개인적인 문학혁명을 시작하겠다는 격문(檄文)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수영의 시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는 그를 혁명가 아니면 소시민 등으로 일면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는 시인으로서 초월적인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생활인으로서 생활난 해결에도 적극적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시민으로서 사회적 혁명을 추구하면서도 시인으로서 개인적인 예술에도 충실했다.


김수영은 좌우나 선악의 폭력적인 이분법을 거부하고 생활과 예술, 시인과 생활인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이다.



만용에게(1962)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430원이니

한 달에 12, 3만 환이 소리 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60개밖에 안 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값이

일주일에 6일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봄에는 알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7할을 낳아도

만용이(닭 시중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나는 점등(點燈)을 하고 새벽 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430원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주기적인 수입 소동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반반―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 보려무나!”


여편네의 방에 와서(1961)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이렇듯 소년처럼 되었다

흥분해도 소년

계산해도 소년

애무해도 소년

어린놈 너야

네가 성을 내지 않게 해주마

네가 무어라 보채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성을 내지 않는 소년     


바다의 물결 작년의 나무의 체취

그래 우리 이 성하에

온갖 나무의 추억과

물의 체취라도

다해서

어린놈 너야

죽음이 오더라도

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나는 점점 어린애

태양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죽음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언덕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애정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사유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간단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점(點)의 어린애

베개의 어린애

고민의 어린애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너를 더 사랑하고

오히려 너를 더 사랑하고

너는 내 눈을 알고

어린놈도 내 눈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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