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를 없애는 육아방법
주도적인 아이로 성장시키는 육아법
by 김준태의 인사이트 Apr 23. 2019
아이들은 겁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존중해야 하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그것을 세상에 널리 이롭게 사용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먼저 지금의 육아법은 과연 옳을까?
우리가 실행하는 것들은 이름은 그럴싸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다.
1. 아이들이 책을 싫어한다.
2. 하고 싶은 일이 없다.
3. 공무원이 모두의 꿈이다.
4. 어려운 일에서 도망간다.
5. 결정장애에 시달린다.
6. 늙어서도 부모님께 의지한다.
7. 세상을 두려워한다.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기아도 없으며. 높은 교육을 받음에도 아이들은 왜 가면 갈수록 꿈을 잃어갈까? 자신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에만 빠져 살까?
결국 이 모든 것엔 원인이 있고 해결책이 있다. 그러나 부모와 교육자가 모르면 위의 부작용은 대대손손 이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먼저 부모와 교육자의 용기가 문제다.
기성세대였던 우리는 분명 여러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얼마나 세상이 어려운 곳이고 불합리한 곳인지 깨닫기도 했다. 그리곤 그것을 아이에게 가르쳐 준다.
그런 부정적인 사실을 토대로 교육과 훈육을 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결정을 부모가 해주어 패스트 트랙으로 안전하게 결과물로 인도하면 아이는 로봇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상실한다.
한국 사람은 세계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이 되었다. 한국에서 팔리는 책은 단 한 분야. 바로 문제지다. 문제지엔 진리란 없다. 그저 답을 위한 문제가 짜 맞춰져 있을 뿐이다. 문제지를 아무리 많이 풀어봐야 세상에 적용될 것은 별로 없다. 세상엔 답을 위한 질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답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책에 빠져 있다가. 학교를 다니는 10여 년만 보다가 70년이 넘는 세월을 책과 담을 쌓는다.
자신의 생각은 없다. 그저 답을 외었을 뿐. 그게 왜 답인지 모른다. 어느 위치에 있던 모두가 그렇게 배웠다. 모두가 그렇기에 무언가 새로운 답을 이야기하면 외면한다. 외면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 없으면 세상은 분란이 없고 평화로울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다른 생각을 똑바로 말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해봤어야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법이다. 케이크를 먹어봤어야 케이크 맛이 생각나서 빵집에 들르는 것이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시키는 것만 잘하면 잘할 수록 하고 싶은 일은 없다. 과거처럼 사회 변화가 없던 시절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육의 근본은 잠재력 개발에 있다. 타고난 천성을 더욱 발전시켜주는 것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외우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과거의 생각이다. 창의력의 기반은 암기가 맞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암기만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기 싫은 것을 암기하라면 낮은 점수가 나오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에겐 적용하려고 한다. 결국 무리한 교육으로 아무런 성과는 없을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여러 사교육을 한다. 결국 모든 게 인위적인 체험에서 무언가를 찾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엔 진리가 없다. 삶의 현장에서 땀으로 이뤄낸 결실을 보지 않고 단순히 재미로만 자신의 사면을 찾으려고 하니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매력에서 나온다. 매력은 특이함이 스스로가 느끼기에 보편적으로 다가올 때 가능하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문과 이과로 나누려는 부질없는 기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내가 할 일 남이 할 일에 대한 경계도 없다. 그저 하고 싶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 그러나 현재 훈육과 교육은 이런 것이 빠져있다.
자신도 원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원하는 일을 찾아주려는 일은 교육적이지 않다.
내가 담배를 피우면서 아이에게 '너는 담배 피우지 마라'라고 한다면. 어떤 아이가 그것을 교육적으로 받아들일까?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도 선생님도 자신의 삶에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럼 아이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보고 배우며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된다.
공무원이 나쁜 건 아니다.
공무원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모두의 꿈이 공무원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회엔 각자의 특별한 역할이 있다. 그리고 각자가 잘하는 분야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치르는 것에만 매달려 자신의 적성과 무관한 일을 한다면. 그곳엔 능률도 없고. 사명감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그냥 먹고사는 것에 있지 않다. 취미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일보다 취미가 중요하다면.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만큼 각자에게 일은 중요하다.
밖에서 무언가 일처리를 할 때. 매우 불쾌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면. 상대방도 나도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통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그 일에 불만족하며 지낼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 일을 그만두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기분이 수백 명 수천 명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사명인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그 일을 하는 것이 맞지만. 어린이가 아무런 경험 없이 공무원이 꿈이라고 한다면 정말 그 꿈이 그 아이의 꿈이 맞을까? 고민해볼 문제다.
어려운 일에서 도망간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어려운 일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인간관계에서 어려움도 날 성장시키고
일에서의 어려움도 날 성장시킨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부모가 해결해주고.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면. 아이는 어려운 일에서는 도망가면 되는 줄 알고 배우게 된다.
조금만 더 가게 되면 더욱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텐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음식도 인스턴트
스마트폰도 인스턴트
관계도 인스턴트
모든 것이 인스턴트에 익숙해진다. 자기의 손으로 요리를 하고. 스마트폰으로 콘텐츠 소비가 아닌 생산을 해보며. 관계도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단절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개선하는 연습도 해야 한다.
그런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직접 모두가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 30이 먹도록 어린이 취급을 받는 성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스스로 밥을 할 줄도 일을 해보는 일도. 관계에 대한 문제도 부모님이 해결해주었다면. 과연 성인이라고 할 수 있들까? 나이가 많은 어린이는 아닐까? 그러나 반대로 부모는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하냐며 한탄할지 모른다. 모두에게 힘든 결과를 낳는 교육이었던 것이다.
결국 힘든 일도 시간이 약인지. 해결하다 실패도 해보고. 끈기 있기 반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와 선생은 해줄 수 있는 일은 지켜보고 응원할 뿐 다른 것은 없다.
결정장애에 시달리는 것.
물건도 못 고른다.
음식도 못 고른다.
직업도 못 고른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결정장애를 안고 성인이 되어간다. 어린 시절 모든 것을 어른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면 안전하다. 리스크는 없고 결과만 얻으면 된다. 하지만 결정장애는 따라온다.
대학 입시. 취업. 모든 것이 끝인 것 같지만. 막상 대학과 직장을 얻게 되면 깨닫게 된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만약 과거처럼 돈 벌고 집 사고 노후를 만 끼 하는 테크트리를 완성하는 게 공통의 꿈이었다면. 이제는 그런 것이 모두의 꿈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결정장애는 너무 인생을 힘들게 한다.
자신이 선택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 늦게 일이 풀리기도 한다. 넘어지기도 한다.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많은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이건 책상에 앉아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경험만이 답이기 때문이다.
결정으로 인해서 책임이 따른다. 자신의 결정은 자신의 책임이다라는 것을 배울 때 성인이 된다. 만약 작은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바꿔야 한다. 막상 정답이 아니어도. 틀리더라도 배울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면. 왜 이제 진짜 인생을 살지 못했는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늙어서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
보모와 자식은 다르다. 관계는 함께 맺지만 분명 생각이 다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
아이들이 온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배울 수 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감당할 수 있도록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이고 응원이다. 부모가 해결을 해줄수록 아이는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갖지 못한다. 경험이 없는 것은 배울 수도 알 수도 없다. 책에서 배우는 것이 1이라면 직접 경험은 100의 이상을 갖는다. 동기부여를 얻게 되며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세상이 두렵다는 것.
사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에 초식동물들은 세상을 두려워하며 늘 긴장한다.
무엇이든 다 해주는 건 초식동물을 만드는 일이다. 사자 역시 스스로 사냥을 할 때 강인함을 얻는다. 사자는 귀한 자식을 절벽에서 굴린다. 그렇게 사자가 되어간다.
아이를 키울 때 바닥에 혹여 넘어질까.
나쁜 친구를 만나지는 않을까.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등등. 그런 걱정은 하면 할수록 현실이 된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서워 피하는 것을 알려주면 아이는 자연히 두려움을 배운다. 세상은 미지의 세계이며. 두려운 것들로 가득하다는 편견으로 가득 찬다.
아이에겐 넘어질 권리가 있다. 넘어져봐야 약간의 상처가 생길 뿐이다. 대신 다음번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거나 안전하게 넘어지는 낙법을 배우게 된다.
친구 역시 부모가 정해주면 필패다. 요즘엔 친한부모끼리 자녀까지 묶어서 친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맺어진 것이 진짜 친구일까? 자연히 성인이 되면 연락이 끊어질 인연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니 부단히 부모가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할 필요는 없다.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왕따의 문제에선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에도 왕따가 있고 학교에도 왕따가 있다.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묵인하고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용인한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배워 학교에서 흉내를 낼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왕따를 개발했을까? 물론 아니다. 어른들이 가르쳐 준 것이고 그 어른들은 누군가의 부모일 것이다.
왕따가 되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다.
조직 자체가 모두의 특성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
힘이 세져서 다른 누군가를 짓밟는 것.
하지만 현재 왕따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어른들이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힘부터 기르게 한다. 그러나 그래도 왕따를 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힘은 상대적인 것으로 아무리 내가 힘을 길러도 나보다 강한 이가 나를 미워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왕따가 리더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힘을 스스로 키우지 않아도 힘을 키울 수 있다. 그건 다른 이를 이해하는 힘을 키우면 그게 힘이다.
보통 어른들은 적을 만든다. 자신과 맞지 않으면 적. 나의 친구의 적은 나의 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절대 리더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적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아군 진영에서 배신자가 나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순간 내가 왕따를 당할 수 있다. 인생은 돌고 돌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에게 한만큼 나도 언젠가는 당하게 된다.
왕따가 리더가 되는 경우는 많다. 그들은 적을 만들기보다는 이해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다. 사람들은 모두 외롭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힘을 보태기 마련이다. 적으로 여기던 사람들 조차 포용하면 힘은 몇 배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아이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지 말자. 사람을 다방면으로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자. 꼭 대단한 리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덕만 쌓으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사람은 모인다. 사람이 모이는 사람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사람이 견고한 성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가 배운 교육. 그리고 육아.
어떤 종교도 교육도 나쁜 것은 없다. 그 안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나 왜곡되기 시작하면 전혀 효과가 없는 허사가 될 수 있다.
아이를 키울 때 절대 두려움을 가르치지 말자. 말로 가르치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작은 것을 얻는 법이 아니라 큰 것을 얻는 법을 가르치자.
무엇보다 아이의 잠재력이 무엇인지.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이롭게 하고. 자신에게도 활력이 될 수 있게 만들지 가르쳐주자.
그럼 나머지는 알아서 모두 해결이 된다. 아이는 세상을 살며 희로애락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많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육아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중요할 것이다. 대화를 많이 하자. 어른은 입을 잠그고 귀를 열어두자. 그럼 아이의 잠재력은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