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by 고요히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이찬혁>


삶에서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다가오는 순간, 누구나 되돌릴 수 없는 인생에 대한 회고의 순간도 오게 된다.

유한한 인생의 파노라마 속에서 나는 종종 하고자 했던 일을 미루거나, 머릿속에서만 그려보거나, 여러 상황을 핑계대며 시작조차 못한 채 머물러 버렸다. 만일 죽음에 당면하는 순간이 온다면,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마주할 회한은 내가 놓쳐버린 시간만큼의 무게로 남게 될텐데도 말이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서 후회만이 선명하게 남는다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할까? 가수 이찬혁의 <파노라마> 가사처럼 언제 끝날 지 모를 이 쥐뿔도 없는 짧은 인생에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버킷리스트는 다 해봐야 해.


코로나19가 성행하던 2021년. 건강상의 사유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그에 대한 소회의 기록으로 우연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 에디터팀이 투박하고 서툰 내 글을 어떻게 심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먹고 살만한 특별한 기술도 빽도 없는 백수에게 브런치 작가 승인은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원치 않던 퇴사 뒤, 상실감과 뒤엉킨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써 내려간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위로해주는 듯했다. 팬데믹 시대에 회사 울타리 밖으로 나온 건 망망대해 위에 표류되는 기분이었기에 아득한 상황에서 브런치 작가 타이틀은 작아진 나 자신을 응원해주었다. 이후로 몇 편의 글을 더 적었지만 향후 먹고 사는 문제와 고뇌의 나날 속에서 허우적거리다보니 글쓰기에 대한 흥미와 동기도 사라졌다. 그렇게 향방을 잡지 못한 생존의 문제 앞에서 글쓰기는 안중에 없다보니 꽤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지 않게 됐다.


그러다 글을 다시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는데는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친구가 책을 선물해주면서 보낸 딱 한 줄의 문구가 글쓰기의 트리거가 되었다.


'뭐라도 시작하는 2026년이 되길 바라며.'


이 짤막한 문구를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착잡함이 땅거미처럼 스며들어 마음을 어스레하게 덮었다. 희미하게 어딘가에 존재하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떠올라 한참을 생각 속에 머물렀다.


한 때 주변 친구들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거창한 포부와 달리 내가 쓰고자 하는 글쓰기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 따위는 없었다.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글쓰는 법에 관련된 책이나 영상을 몇 개만 보는 게 고작이었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일이 되어버렸다. 거창할 필요 없이 기획하지 않고 그저 상념이나 어떤 일들에 대해 꾸준히 기록만 했어도 수많은 글을 남겼을 텐데 말이다. ‘글쓰기’는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나는 줄곧 그 사실을 외면하기 바빴다. 나는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면서도, 당장의 일을 미루고 후일을 도모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렇듯 하루하루를 미루다 보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죽음이 어떤 형태로 느닷없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부정해본들 이미 늦은 일이겠지. 더 늦기 전에 내 인생의 파노라마 속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남기려 한다. 진짜 ‘작가’라는 걸 말이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를 지녔고 차분한 색을 머금은 책 귀퉁이 부분에 내 이름이 새겨진 책.

그래야 마지막 순간에도 미소 지으며 안고 갈 기억 하나쯤은 파노라마 속에 또렷이 추가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