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 무너지고, 싱가폴에서 중국인의 온도를 배우다
싱가포르 마지막 날에 쓰는 일기같은 글이다.
나는 원래 중국인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
뉴스 속에서, 그리고 소문 속에서 들은 ‘그들’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인간미가 부족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부족한 부분, 즉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나 장기매매 같은 소문에 의해 사이코패스 같은 면이 있는 줄 알았다.
한국에 와서 자기 욕망을 위한 새치기를 한다던지,
매너 없는 사람들로만 득실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싱가폴 마리나베이 호텔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베이징 베이스의 미국 뉴욕 부동산 개발 파이낸싱 대표, 그리고 홍콩에서 비트코인 마이닝 시스템을 운영하는 중국 대표와 날 서포트해준 팀과 다같이 만나 대화하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또한 그들만의 꽌시가 아주 깊은만큼 서로 엄청 친하다. 서로 상부상조하며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도운다.
그들은 내가 상상하던 ‘중국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세련되고, 유머가 있고, 무엇보다 사람의 온도가 느껴졌다.
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는 깨달았다 —
편견은 멀리서 생기고, 존경은 가까이서 피어난다.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차이니즈의 가장 큰 장점은 신분의 격차를 빼놓고 봤을 때,
누구나 자신감(confidence)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떤 자리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과 맞서며,
그 이름이 곧 자존심이자 생명력이다.
또한 그들은 받은 은혜를 반드시 기억한다.
받은 것의 두세 배로 돌려주려는 마음,
그건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관계의 도리’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온 마음 다해 은혜를 갚으려는 성품이 있다.
그건 “은혜는 빚이 아니라 마음의 순환”이라는 철학처럼 느껴졌다.
정(情)과 배포의 조화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배포가 크고 포부가 크다.
작은 일에도 스스로의 명예를 걸고,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여도, 속은 따뜻하다.
그들은 사람과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식사는 그들에게 단순한 끼니가 아니다.
신뢰의 상징이자, 관계의 시작점이다.
식탁에서 웃으며 나누는 한 끼는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는 약속 같다.
잔꾀보단 감각, 경쟁보단 에너지
차이니즈는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판단이 빠르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말도 잘 붙인다.
잔꾀가 있어 가끔은 그 재치를 장난처럼 쓰기도 하지만,
그건 결국 생존의 기술이다.
세상은 늘 속도와 타이밍의 싸움이니까.
그들은 모두 사업가 기질형이다.
자신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지고 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자존심 빼면 시체다.”
이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들의 자존심은 경쟁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계층을 넘어선 불(火)의 에너지
흥미로운 건, 이런 성향이 고위층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공통적이라는 점이다.
길거리의 상인이든, 글로벌 기업의 CEO든,
그들은 똑같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확신으로 산다.
지는 걸 싫어하고, 도전을 피하지 않는다.
그 에너지는 도시의 불빛처럼 강렬하고,
그 자존심은 불(火)처럼 꺼지지 않는다.
그들은 불안 속에서도 뜨겁게 산다.
편견은 멀리서, 존경은 가까이서
이제 나는 그들을 단순히 “중국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끈기와 자존심, 정과 인간적인 자신감이 공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그건 단순한 대접이 아니라 신뢰의 초대였다.
진심은 말보다 행동으로,
식탁 위의 미소로 전해진다는 걸 배웠다.
편견 속에선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가까워지면 누구든 존경할 수 있다.
그들의 자신감과 배포, 그리고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은
나에게 또 다른 인간의 온도를 가르쳐주었다.
그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사람을 빛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