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이 나는 너무 소중해서
답답함이 밀려온 건 11월 중순쯤이었다. 내 재미를 사람들과 나누지를 못해서 답답함이 차고 넘쳐 이제는 “제발 같이 즐기자”며 100만 원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도 나의 젊음은 한 땀 한 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았다. 결혼하는 순간, 일단 노는 시간이 줄어든다. 아내가 임신하면 더 줄어든다. 아이가 태어나면 더더 줄어든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면? 내 몸은 늙는다. 깨어있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만사가 점점 귀찮아진다. 그러니 나는 어느새 이 젊음에 조금씩 집착하게 됐다. 아니 더 정확히는 ‘놀 수 있는 시간’에 집착하게 됐다. 그러나 주변에는 나처럼 노는데 진심인 사람이 없었다. 아, 왜 그럴까 싶었다.
그렇게 2024년 회고를 했다. 7번의 여행. 4번의 콘서트가 남아있었다. 대구. 베를린. 양양. 제주도. 경주. 춘천. 강릉. 윤하. 10cm. 에이티즈. 뮌헨 vs토트넘. 7번의 여행과 4번의 콘서트(혹은 경기)를 다녀왔다. 어느 날 지인이 그랬다. “오빠는 노는 걸 정말 좋아하나 봐. 뽀로로가 분명해.” 맞다. 하지만 이와 반대 편에서 날아드는 친구의 대답이 있었다. 그건 ‘재미’에 대해 대화할 때 들었던 문장이었다. “대학교 와서 어느 날 현타가 오더라고.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것 밖에 없나?”. 그랬다. 그 수많은 여행을 다니면서도, 수많은 콘서트를 다니면서도 뭔가 아쉬웠다. 이 재미를 왜 나 혼자만 느끼는지, 이 아쉬움이 뭘지 천천히 돌아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재미 실종 사회라고.
재미실종사회
너무 복잡하니 한 줄요약을 하자면 이렇다. 놀이의 발전이 없어져버리는, 똑같은 것만 하는 소위 개-노잼이 돼버리는 사회를 나는 재미실종사회라고 부르고 싶다. 그 정의가 더 궁금하면 아래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재미실종사회를 난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삶의 즐거움과 놀이의 본질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삶의 모든 순간이 성장, 성공, 그리고 생산성을 중심으로 재미가 소비되는 사회. 이 사회에서는 ‘재미’와 ‘놀이’가 사소하거나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재미조차도 그저 스트레스를 푸는 술, 클럽, 노래방과 같은 획일화된 활동만이 ‘놀다’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 잡는 사회. 여기선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반영된 다양한 놀이 방식은 점차 사라지며 재미에 대한 발전은 부재한다. 또한 성장과 성공, 인정과 효율의 방향을 띈 포장된 활동만이 인정받는다. 결과적으로, 재미실종사회에서는 진정한 휴식과 놀이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젊음과 시간을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된 재미를 소비하며, 개인은 점차 삶의 활력을 잃고, 남은 놀이 가능성마저 통제된 환경 속에서 점점 더 제한받게 된다.’라고.
재미가 실종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놀이마저 제한받게 되는 사회. 얼마나 답답한가. 그러나 아무도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반발하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는 것이 내 첫 번째 답답함의 이유였다. 분명 재미와 놀이 역시도, 발전과 진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한국적인 흐름에서는 재미의 진화나 연구, 고민등이 이뤄지지 않는다. 개인만 보더라도 덕질의 역사와 깊이들이 달라지는데, 내가 ‘원피스’나 ‘나루토’를 한 번 정주행 한 것과 두 번 정주행 했을 때 재미가 다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발전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이 부분이 답답했던 것 같았다. 재미는 발전할 수 있음을, 재미는 다양해질 수 있음을 그리고 각자의 맞는 재미가 있을 수 있음을.
이런 면에서 나는 재미가 실종된 사회가 답답했다. 성장과 성공은 순간적으로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재미만을 허락해 버렸고 발전될 여지를 폐지시켜 버렸다. 삶의 중심은 재미보다 성장과 성공이 자리를 차지했고, 재미가 있어야만 균형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밸런스를 파괴해 버렸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내 생각엔 마약과 과음, 스트레스에 대한 미숙한 대처등이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에겐 일정량의 재미와 즐거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성장과 재미가 끈끈하게 결합되어 실패했을 때 삶의 재미의 밸런스를 깨버린다. 실패 시 우리를 우울하고 비참하게 만들어버린다. 아니, 실패하지 않아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재미연구사회
재미가 꾸준히 발전했다면 우리 사회는 더 재밌고 다채로운 사회가 되지 않았을지 상상해 본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특히 양지로 나온 재미들은 얼추 비슷비슷한 결을 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니, 양지쪽에서 온전히 재미다운 재미가 있나 생각해 보면 나는 감히 없다고 말하고 싶다. 재미 자체의 본질을 쫓는다기 보다는 잠시 현실을 잊는 방식으로의 콘텐츠들이 더 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그 취미를 사랑해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몸을 자랑하기 위한 헬스, 무한한 자기 계발을 위한 독서, 성적을 올려 상대방을 무시하기 위한 게임, 찌든 삶을 해소하기 위한 술자리등이 그렇다.
나는 재미가 발전하면 가히 그 스트레스를 넘어 본질적인 재미에 가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례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건강한 재미를 통해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었다. 건강한 재미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건강한 재미를 통해 타인과 진심 어린 대화와 환대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당연히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나처럼 할 수 없음을 안다. 또한 기질적인 부분도 다르다 보니, 이 이야기가 설득력 없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울증을 극복한 여전히 나는 삶을 재미로 채우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타인과 재미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언젠가 재미로 연결되는 그날에 세상은 좀 더 밝아지고,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스타크래프트 세계 안에서는 아빠와 아들이 없고, 삼촌과 형이 없듯이.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서 서로 대화하고 장난 칠 수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