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서 현금을 가지고 다닐 작은 지갑이 마땅히 없어서 안방 구석, 원단을 정리해 둔(이라고 쓰고, 쳐박아 둔 이라고 읽는) 상자를 뒤적거리다 수빈이가 안 입는 바지를 잘라놓았던 조각을 찾았다. 한국에서 사 온 접착심지도 이젠 많이 없어서 쓰다 남은 조각을 몇 개 가지고, 지퍼도 대충 하나 찾아서 들고 나와 식탁에서 도안을 그리다 문득 떠오른 추억. 이십년이 조금 넘은 내 중학교 첫 학기, 아마도 첫 달인 3월 어느 날 저녁의 기억이다. 중학교 생활의 첫 동아리를 테디베어 부로 정한 나와 친구 몇몇은 동아리 첫 날, 각자 필요한 준비물인 쪽가위, 실과 바늘, 각자가 고른 인형 만들기 키트를 책상 앞에 두고 앉았다. 준비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종이 패턴을 오리고, 털이 보송보송한 원단을 넓게 펼쳐서 그 위에 패턴을 대고 그린 뒤 털이 함께 잘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원단을 잘랐다. 패턴에는 '다아트' 표시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다'글자가 흐릿하게 인쇄되어'디'자로 보였고 우리는 한참동안 그걸 '디아트'라고 불렀다. 그걸 더 이상 다아트가 아닌, 디아트도 아닌 다트, 라고 부른다는건 시간이 더 지나서야 알았다.
저녁마다, 주말에는 거의 하루 종일도 바느질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나 둘 만들어진 인형들은 우리 침대 위에 있다가, 방학이 되어 집에 갔다가, 나중에는 친척동생에게 가기도 했다가, 결국은 내가 스무살이 한참 넘어 버려졌지만 주말 기숙사에서 햇빛이 드는 곳을 쫓아다니며 꼬물꼬물 바느질을 했던 기억은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햇살처럼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테디베어 부를 시작으로 퀼트 수업도 한학기인가 듣고, 계발활동 시간엔 일년정도 도예 수업도 듣고, 거의 3년 내내 들었던 생활공예 시간에는 정말이지 많은 종류의 공예를 했는데 재봉틀을 다루게 된 것도, 비즈와 전통매듭, 한지공예, 자수를 간단히 나마 경험한 것도 이 때이다.
만들기만 했던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매 주말마다 담당 쌤의 조그마한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갈 수 있었던 분재반 수업도 재미있었다 (물론 분재는 학기 단위로 진행하기엔 너무나 느리고 지루한 취미였다) 뭐하는 수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화단에 온갖 꽃들을 함께 심고 번갈아 가며 물주기 당번을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참나리를 닮았지만 점박이가 있는 범부채를 심었고 주말에 그 화단에 물을 주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직도 길가에 핀 나리 종류 꽃을 보면 그 생각이 나고 무려 '범부채'라는, 그 후로 단 한번도 듣지 못한 이름이 저절로 소환되는 걸 보면 강렬한 기억임이 틀림없다.
그 기억이 좋아서 고등학교 때도 원예부 활동을 잠시 했고, 나중엔 시들해 졌지만 재봉과 천연염색이 중심인 손작업 수업도 일년 정도 들었다. 아마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손으로 만든 물건을 판매해 보았던 것 같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은 떠올리려 해도 가물가물 해서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만 그래도 어떤 순간들 만큼은 그 때의 분위기나 온도같은 것들이 생생하고 그리워서 내가 손작업 생활을 하는 내내, 나의 근본이랄까 심지랄까 하는 역할이 되어준다.
꼼지락 꼼지락 원단을 자르고 바느질해 테디베어를 만들던 중학생은 자라서 옷과 집안 온갖 것들을 만들어 입고 쓰는 성인이 되었고, 가끔이지만 친구 아기가 입던 옷들을 받아 테디베어도 만든다. 뜨거운 여름날의 주말 아침, 범부채 화단에 물을 주던 중학생은 고등학교에 가서 민트와 알로에 화분을 애지중지 키웠으며 서른살이 되어서는 백개가 넘는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고 물을 주느라 바쁘다. 흙을 빚어 비누받침을 만들고 뿌듯해 하던 중학생은 자라서 수백개의 화분과 그릇을 만들었고 일부는 팔기도 했다. 나이많은 할아버지 목공 선생님의 취향때문에 목공수업이 재미없었던 중학생은 나이를 먹어 집 안에서 테이블을 만들고, 선반을 만들고 먼지를 풀풀 날리며 나무를 만지는 일이 즐겁고 보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