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백패킹을 다녀와서.
여자들과 함께하며,
20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걸으며,
발의 물집을 확인하고 쓸린 상처들을 매만지며,
난생처음으로 온 가슴에 햇빛을 받으며 생각했다.
몸은 그냥 몸이구나.
몸은 내가 가진 많은 것들 중에 하나라서, 내 시간과, 돈과, 관계들이 소중한 것처럼 소중하다.
몸은 그냥 몸이라서, 성적인 행위를 할 수 있지만 몸이 성적인 것이 아니고, 귀하고 선한 일을 할 때 쓸 수도 있지만 몸이 자체로 그런 것은 아니다.
돈이 갑질을 하는 데 쓰인다고 그 자체로 천박한 것이 아니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인다고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 아니듯 몸도 그렇다. 몸은 그냥 몸이다.
물론 몸은 미우나 고우나, 살아있는 동안 지니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내 돈과 시간, 관계,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요령 있고 야무지게 쓰면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몸 여기저기에 잔주름이 늘고, 예상치 못한 흉터를 만들고, 만성으로 이어질 게 뻔한 부상을 달고 살며 가끔 적나라한 내 몸과 마주할 때마다 어쩐지 한숨이 나오곤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조금 더 그랬다. 한때 엄마의 일부였고, 결국 분리되어 나온 후에도 엄마에겐 때로 분신 같은 존재였을 나. 엄마가 귀하게 여겼던 하얗고 매끈했던 손의 마디가 자꾸만 굵어질 때마다 엄마가 준 두 손을 지켜내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고 팔에 화상 흉터를 남겼을 때도 그랬다.
어릴 때 '몸은 소중한 거라 남에게 함부로 보여주거나, 만지게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배우지만 사실 그 본질은 몸의 '소중함' 이라기보다는 주체성의 문제가 아닐까. 남의 돈이나 시간을 맘대로 빼앗으면 안 되는 것처럼 몸도 그렇다. 몸만 유별난 것이 아니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으면 (상대방이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자랑할 수 있고, 기꺼이 남과 나누고 싶으면 나눌 수 있다. 나 혼자만 알고 혼자만 보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 너무너무너무 소중해서 꼭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니라, '내 거니까' 남이 막 대하면 안 되는 거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안 보여주고 싶으면 안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몸도 쓰면 쓰는 만큼 낡는다. 몸으로 많은 경험을 하면 그만큼 몸이 낡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많이 달리면 관절이, 많이 읽고 들으면 시력과 청력이 낡는다. 가끔은 실수로 심각한 흉터나 손상을 입기도 하지만 돌이킬 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 몸은 그냥 몸이니까. 어린 시절처럼 흉 하나 없이 무결하게 유지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물론 늙고 닳아가는 몸이 아쉽지만, 그만큼 내가 내 몸을 열심히 사용했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익혔구나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7년 전보다 많이 낡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강해진 몸을 만끽하며 지난 며칠을 보냈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꽤나 거나한 잔병치레를 하고, 3분간의 줄넘기의 결과로 2주간 한의원을 다니고, 학교에서의 별명이 '종합병원'이었던 내가,
시도 때도 없이 근육자랑을 하고, 남의 짐을 빼앗아 들고 하이킹을 하고, 백패킹에서 돌아온 다음날 근육통 하나 없이 자전거를 타고 쏘다니게 되기까지, 크다면 크고 사소하다면 사소한 노력들이 있었다. 사실 크지는 않고 작고 사소한 노력이 오래 이어졌을 뿐인 것 같기도 하다.
몸이 늘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는 않았지만, '몸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하는 순간을 자주 느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부디 그러길 바란다.
앞으로도 이 몸을 알뜰살뜰 야무지게 쓰며, 오랜 세월 함께할 수 있기를.
오늘도 역시, 몸을 가지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