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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면서다 Jul 30. 2021

게임의 룰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수기)

파트타임 대학원생이 변호사가 된 법(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로스쿨 창 기고)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로스쿨 창 7-9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주변에 얘기는 잘 안 하지만 극단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던 가짜 대학원생으로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으리라고는 시험 반 년 전만 해도 생각지 못했다. 10월이나 되어서야 통과한 대학원 졸업시험에서 '이 정도면 무리 없겠다' 싶어서 마음을 비우고 응시한 시험에 합격했을 뿐인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아리송한 일이다. 코로나와 겹쳐 비대면으로 학점이수가 가능했던 행운도 있었고, 법학이 적성이나 체질에 잘 맞아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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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주변에 로스쿨에 대해 누군가가 물어보면 저는 스스로를 ‘가짜 로스쿨 졸업생’이라고 표현합니다. 흔치 않은 경우이지만 회사를 운영하며 변호사시험을 준비한 터라 학업과 대학원 생활에 충실하지 못했고, 아직도 로스쿨 과정은 물론 변호사시험에 대해서 가진 정보와 안목은 다른 일반적인 졸업생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이 수기가 배포될 즈음까지 시험준비가 덜 되어 불안하거나 학업수행에 여러 제약조건이 있으신 원우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합니다.


2. 게임의 룰?

로스쿨 원우님들은 지금까지 많은 시험을 경험하셨을 터이므로 여러 시험마다 각기 다른 수험전략이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변호사시험도 예외는 아닙니다. 방대한 법학과목의 분량에 지쳐 한 과목씩을 소화해내기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는 잠시 망각하기 쉽지만, ‘훌륭한 법학실력을 갖추는 것’과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상관관계가 있을지언정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항시 떠올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규칙에 맞추어 플레이해야 합격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 자주 고민했는데, 이를 거창하게 ‘게임의 룰’이라고 표현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변호사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릴 필요도, 고득점을 올릴 능력이나 의사도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현저히 부족한 시간을 활용해 합격의 결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를 전제로 두서없이 제가 생각하고 경험한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한 ‘게임의 룰’에 대해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3. 수기답안 시험

저는 로스쿨 저학년 때부터 변호사시험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글씨를 잘 쓰지도 못하고 작성 속도도 느린 편이어서 수기답안으로 작성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 식별 가능한 글씨를 조금 더 빠르게 쓰기 위한 고시체 연습을 했었고, 연습한 지 불과 일주일이 되지 않아 기존의 손글씨를 쓰던 방법을 바꾸어 그 이후에는 손글씨로 인한 불이익은 전혀 겪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스쿨 재학시 학내 고사를 컴퓨터로 응시한 적이 있는데, 손으로 작성하던 때보다 현저히 더 많은 양의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시험은 수기답안을 작성하는 시험이고 시간 제약 하에서 머릿속에 생각나는 내용을 모두 적어서 낼 수 없다는 점에서 글씨의 식별가능성, 글씨 작성의 속도는 실질적으로 시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특히 키워드로 채점해 점수를 표준화하는 사례형, 기록형 시험에서 단 몇 분이라도 생각나는 일반론을 적어서 채우는 것과 아닌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글씨가 빠르다는 것은 시험 상황에서 시간 관리에 도움을 주는데, 특히 합격만이 목표라면 시간 관리 실패로 인한 백지답안(이른바 ‘통백’) 제출을 막아주는 데에 중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현행 시험 체제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답안을 작성할 때는 글씨를 쓰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형식적 측면에서 고민을 할 필요 없이 빠르게 답안을 적을 수 있도록 숙달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속도를 높이는 것과 형식적 답안작성의 기술(목차, 형식적 기재사항 등)을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빠른 속도로 식별 가능한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 ‘게임의 룰’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수험생분들께는 현재 조건하에서 이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도록 권유하고 싶습니다.


4. 파국을 막는 시험운영

앞의 내용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례형과 기록형의 비중이 높은 현행 변호사시험의 구조상 그 어느 한 과목을 터무니없이 망치지 않는 것이 합격에는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면 더 논리적인 답안을 풍부하게 적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제로 시간을 더 주면 더 좋은 답안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각 문제마다 적당히 키워드 위주로 답을 적어넣는 것이, 일부 문제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완벽에 가까운 답안을 적어넣고 일부 문제에는 궁색한 답안을 적어넣는 것보다 합격에는 훨씬 유리합니다.

실전 상황이 닥치더라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문제를 적당히 쓰고 냉정히 넘어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풀면서 적당히 포기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문제별 시간을 적절히 안배하는 훈련을 미리 모의고사 때 충분히 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5. 다 알고 푸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시험은 문제의 절대적 난이도가 상당한 시험입니다. 제 짧은 경험으로 공인중개사 시험의 민법 과목 선택형과 비교하자면 지문 길이, 요구하는 논리적 사고과정의 복잡성, 시험범위 등 모든 요소에 있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객관식 채점 후 어느정도 합격을 자신할 만한 점수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가 맞춘 문제들임에도 확신이 없는 문제들이 허다합니다. 잘 알아서 맞췄다기보다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는 느낌으로 얻어걸린 듯한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어느정도 불확실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다는 의미기이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긴가민가한 느낌이 학부 졸업시까지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며 성실하게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였던 수험생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어봐도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답을 고르고도 확신을 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면 그것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느정도 알더라도 더 알고 싶기에 시간을 쏟기 쉽습니다.

그러나 변호사시험을 체험해보니 그 어느 과목이든 속속들이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쿡 찌르면 바로 외우고 있던 주요판례의 문구를 그대로 필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하더라도 합격에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물론 학습완성도가 높다면 고득점을 할 수 있고 망친 과목을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며 실무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을 투입하여 합격을 하여야 하는 여건이라면 ‘특정 과목을 더 알기 위한 공부’보다는 ‘아예 모르는 과목이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어차피 키워드식 채점에서 모든 쟁점을 다 찾아 써내려가긴 어렵습니다. 아는 것만 채우고 나오더라도 시간이 남지 않도록 무엇이라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이 선택형은 아는 선지들은 소거하고 최후에는 찍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합격수기를 읽더라도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할 만한 고득점대의 일부 수험생을 제외하고, 당장 합격이 주요 목표라면 특정 쟁점을 완벽하게 쓰는 연습보다는 내가 듣도보도 못한 쟁점이 나올 확률을 줄이는 공부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컨대 공부의 깊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엽적인 부분은 과감히 버려도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도록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6. 망각을 막는 장치

변호사시험은 외울 것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요 과목의 논리체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결국 합격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요 내용을 외우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른바 주요 내용만 해도 외울 것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한 번 외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서 외우는 데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더더욱 어려운 점은 체계적으로 전개되는 주요과목의 법리 외에도 정돈되지 않은 많은 학습내용을 밑도끝도 없이 외워야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어서, 체계적으로 머릿 속에 담아둘 수 있는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이 혼재되어 많은 학습부담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휘발성 강한 내용,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없으나 출제가능성은 높아 반드시 외워야 할 내용들은 그 자체로 기억에 각인시킬 수 있는 인지적 매개장치가 필요합니다. 흔히 사용하는 두문자 등 암기방법은 특히 논리적 체계가 미흡해 휘발성 강한 내용들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망각을 막는 학습 매개행위가 필요합니다. 


7. 맺는 말

저는 매우 특수한 여건 하에서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개인적 경험보다는 최대한 보편적으로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께 권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해 적어보았습니다. 지면 한계로 인해 미처 담지 못한 내용들도 있지만, 결국 핵심은 매우 방대한 시험범위와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당히 소화함으로써 합격할 수 있는 변호사시험의 특징에 맞는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변호사시험에 있어 게임의 룰은 시험 그 자체 특성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하면, 어느 부분은 수험생의 개인적 여건, 학습 수준, 가용할 수 있는 학습 시간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구체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보다 그 개별적인 요소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계신 원우님들께서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여건과 본인의 위치를 두루 고민해 합목적적인 수험전략을 수립하시면 좋겠습니다. 말이 너무 거창해 민망하지만 자신에게 꼭 맞는 변호사시험용 ‘게임의 룰’을 찾아 합격의 기쁨을 누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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