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전통과 멋의 도시
한옥마을, 비빔밥. 전주의 대표 문화로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덕분에 한옥마을의 방문객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전주비빔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옥마을을 방문했을 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와 놀이는 관광객들을 전주로 이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가 된다.
그런데 과연 전주의 로컬 사람들도 이러한 관광 문화 속에서 살아갈까? 누군가 짜놓은 한옥마을 코스는 전통의 도시 전주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관광도시로서 유명한 전주에서 관광객들이 정의하는 전주가 아닌, 일상 속 자신만의 ‘전주’를 정의하고 자부심을 갖는 로컬 전주인은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로컬키트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번 ‘완판본문화관’으로의 답사를 기획했다. 완판본문화관은 로컬의 측면에서 ‘전통문화와 지역민의 만남’을 이뤄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문화 계승의 정신을 바탕으로 전주의 옛 출판물을 보존 및 복원하는 동시에 이를 전시, 교육, 체험으로 재해석해 지역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보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옥마을 끝자락, 고즈넉한 한옥에서 완판본문화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완판본문화관은 어떤 곳이며,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완판본문화관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이세리입니다. 저희 완판본 문화관은 전주의 옛 ‘완산’이라는 곳에서 출간된 책을 의미하는 완판본을 문화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전라감영에서 출간했던 완역본(完譯本)과 민간에서 출간했던 방각본(坊刻本)이 합쳐진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 완판본을 많은 분께 알리기 위해 전시와 교육 등의 형태로 다채롭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지역 문화와 관련된 일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성장한 지역에 대한 관심은 당연했고, 학부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하면서 지역의 기록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통 출판과 고향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 일로 이어졌습니다.
로컬키트가 방문한 날에는 ‘나무의 문을 열다’라는 이름의 기획 전시가 한창이었다. 이 전시는 전주 시민들이 이곳에서 목판 인쇄 교육을 거쳐 실제 판각본을 인쇄한 과정을 다룬 것으로, 무엇보다도 전주 로컬의 고유한 문화가 돋보이는 전시였다.
[Q. 그동안 운영된 전시 중 어떤 전시가 전주라는 지역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진행 중인 ‘나무의 문을 열다’ 전시입니다. 전시 쇼케이스 내에 비치된 검은색 책판들은 모두 무료 교육을 통해 양성된 시민 각수 분들의 작품입니다. 전시된 출판물들은 여러 차례의 교정 끝에 거듭 찍어내서 비로소 책이 만들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전주의 전통문화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출판 작업에 참여하신 시민 각수 분들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그분들의 노고를 알리기 위해 완성된 단행본과 작업 과정을 전시로 풀어낸 것입니다.
한 지역 시민분은 전시를 보고는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단행본을 구입하기도 했고, 특히나 전주 시민들이 많이 재방문했기에 전주 지역에 있어 뜻깊었던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나무의 문을 열다’는 전주 지역의 명맥을 잇는 일을 알리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켰기에 저는 이 전시를 전주 지역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Q. 장기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걸 보면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들의 참여율도 높을 것 같은데, 보통 완판본문화관과 연을 맺는 이용객들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합니다.]
관광객과 지역 시민 이용객의 비중은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지역 내 대학교의 관련 학과에서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수업이나 학술 답사의 일환으로 많이들 찾아주고 있습니다. 개별 체험객은 소규모 가족 단위로도 많이 오는데, 한 번 오면 재방문율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목판 인쇄는 엽서나 벽걸이 등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으로 체험할 수 있는데, 한 번 체험하고 흥미를 느껴 다음엔 다른 디자인을 인쇄하고 싶다며 재방문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희 교육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엄마 나 이번에는 호랑이 찍었으니까 다음에는 저거 찍어볼래’라고 얘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체험하기도 합니다.
또 저희 문화관뿐만 아니라 전주 지역에는 조금만 곁을 내주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주를 벗어나지 않고서 이 지역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시는 지역 분들이 많이 계세요.
[Q. 관광도시로 잘 알려진 전주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문화 요소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전주는 한옥마을 외에 도서관과 출판 관련해서도 특화된 도시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동마다 도서관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도서관이 많습니다. 한옥마을 내에도 도서관이 있고, 전주역 앞 마중 길에도 여행자 도서관 등, 책과 친숙한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전주를 방문했을 때 한옥마을을 포함해 책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사람들이 어디서나 전주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전주 문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Q. 팀장님은 다른 지역과 구별될 만한 전주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잖아요. 저는 전주가 가장 지역의 특색이 살아있는 도시가 아닌가 싶고, 실제 이게 전주시 슬로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전주다운 것이 한국적인 매력과 동시에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고유한 문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어릴 적 전주에 살면서 경험했던 지역의 대표 축제들도 날이 갈수록 더 확장되고 잘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예를 들면 비빔밥 축제가 오늘도 하고 있는데요, 이런 축제가 이어지는 것도 매우 의미 있어요. 전주 사람들이 어릴 적 한 번 경험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다시 만날 수 없는 게 아니라 꾸준히 만나다 보니 더 보완되고,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런 부분이 전주만의 특색이라고 생각하고, 전주의 어떤 멋과 맛을 보다 많은 분들과 향유할 기회가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Q. 전주 지역 시민들에게 어떤 문화의 기회를 보장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우선 전시의 경우, 찾아오시는 시민분들이 요청하시면 해설을 제공하여 그동안 몰랐던 지역 문화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의 사례를 토대로 말씀드리면, 시민분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지역의 면면을 알게 되면서 특히나 놀라워하는 것 같습니다. 오래 살던 지역이지만 완판본이라는 전주의 문화유산을 몰랐던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전주 사람들이 전주의 전통문화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관 차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 시민분들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저희는 어떤 체험을 운영하든 간에 목판 인쇄 문화에 대한 교육을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체험을 할 때에 완판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더불어 인쇄하시는 해석본의 내용도 읽어드리고 있어요. 또 목판 인쇄 복원 사업에 대해서는 시민 각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데요. 이 분들은 완판본의 맥을 잇기 위해 전승 활동을 함께 하고 계시는데, 지역의 문화를 위해서 기꺼이 시간과 곁을 대며 동참해 주시는 것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어요. 이렇게 전주의 시민들이 오직 지역의 문화를 잇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모이고, 또 완판본문화관에서는 그 모습을 담은 전시를 기획했을 때 전시를 보시는 전주 시민 분들이 많은 자긍심을 느끼십니다. 시민 각수 분들께 전주에서만 받을 수 있는 전통문화 교육을 제공해 드리는 것 또한 앞으로의 완판본문화관에 대한 제 소망입니다.
[Q. 앞으로 변화하는 미래에 완판본이라는 전통문화, 즉 ‘옛 것’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완판본문화관은 완판본이라는 기록문화 유산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 자체를 잃지 않으면서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께서 완판본을 단순히 옛것, 내지는 과거의 어려운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시기보다는 우리 가까이에서 존재하는, 문화적 보존 가치가 굉장히 높은 아름다운 유산으로 생각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저희가 하고 있는 사업이 이 질문의 답이 될 것 같은데, 먼저 전통적인 결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분들과 함께 전통 판각의 명맥을 잇는 사업을 하나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문화 예술기관 소장 디지털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데, 얼마 전 저희가 참여 기관으로 선정되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문화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 전량을 내년 초쯤이면 코리안 메모리에 모두 올릴 거예요. 사실 전통 기록물도 시대에 맞게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사업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기존 자료들을 디지털화함으로써 저희가 한 발짝 도약하는 시기가 될 것 같기도 해요. 이 작업이 발판이 되어서 더 많은 학술적 연구나 지원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이렇듯 전주의 전통과 멋을 지키되, 시대에 맞춰 꾸준히 전통문화 사업을 보완하는 것이 저희 기관의 방향성입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완판본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디지털 사업의 영역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관장님도 문화는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갖고 계십니다. 저 또한 공감하며, 이 관점을 토대로 앞으로의 활동을 펼쳐 나갈 계획입니다. 오래 해오던 것을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옛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지나도 전주 사람들에게 좋은 문화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전주의 전통과 멋을 지키되, 꾸준히 보완하여 미래까지도 연속성을 가질 수 있는 완판본문화관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고향의 문화인지라 자연스럽게 완판본에 관심을 가졌다고 고민 없이 답했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전주를 깊게 사랑하는 팀장님이었다. 이 자부심과 애정은 전주인인 팀장님에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오직 전주에만 있는 완판본을, 전주인의 손에서 직접 복원하여 지역민들이 느끼는 자부심의 근간이 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 사람들이 전주의 문화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팀장님의 말처럼, 앞으로도 완판본문화관이 더 많은 전주 지역민과 닿길 바라며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