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갬성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것이다. 다양한 지표가 있겠지만 그 시대에 살았고 그때만의 갬성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지표가 대표적일 거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만약 그렇다면 호불호 양상은 결국 연령에 따라 많이 갈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남녀가 첫사랑에 뜨거운 불을 지피기 시작한 건 90년대 중반 즈음부터다. 삐삐, IMF, MS-DOS, 전화선 모뎀 인터넷, 플로피 디스크, 16화음 폴더폰 등 현재 20대들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다 겪은 세대였다. 시간이 흘러 세대가 변해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다 사랑을 한다는 점이다.
뭐든지 처음은 신선하고, 기대되고, 떨리고, 서투를 수밖에 없는데, 첫사랑은 유독 다른 모든 처음의 경험보다 몇 배는 더 자극적이다. 맹목적일 정도로 순수한 그 감정은 오로지 처음 그 시간과 그 사람을 보낸 후엔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간결한 장치 몇 개로 개연성을 유지하며 흘러가는데 대놓고 70~80년 대생들만 타깃으로 잡은 건지 시대적 배경과 문화 설명은 다소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도중이었지만 90년대 이후 생들에겐 좀 뜬금없고 불친절한 전개일 수 있고, 감정이입이 힘들지 않을까 란 생각을 했다.
주인공 남녀 양측 입장과 선택이 다 이해가 되니 괴롭다. 사랑해서 잃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가. 또,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 역시 말로 다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이가 몰랐으면 하는 '자신'을 속에 숨기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남자 주인공은 친구들이 등장할 때마다 망가진다. 그걸 알면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가 망가질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둘은 망가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거시적으론 관계가 깨지는 듯하다. 하지만 깨진 뒤엔 항상 우연이라는 기적이 따라오더니 결국엔 점점 더 깊어지고 가까워진다.
자동차와 운동화 발로 내달리는 달음질의 격차는 얼마나 큰가. 그 격차를 사소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인 걸까? 또, 몇 번이나 나를 무너지게 만든 사람에게 다시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 사랑인 걸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한없이 별로일 영화지만 추억에 묻혀 깊이 깔려있던 과거 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한없이 아련하고 고마운 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