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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11시간전

호두까기 인형의 계절.

성탄의 계절

다시 12월이다.​


해마다 이때쯤 이곳 예술의 전당을 찾아오는 발레- 차이코스프키의 '호두까기 인형'.

이 발레를 끔찍이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이 공연 관람이 우리 집 연말 행사가 된 지도 2005년경 이래로 19년 이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동유럽 아이스발레단 공연도 있었고 볼쇼이 발레단 공연도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매년 교대로 초청된다.


연초에 이곳 예술의 전당의 일 년 스케줄을 보며 10~20개를 미리 예약하는데 물론 이것은 빠지지 않는다.

해마다 그 해 감사했던 분들이나 특별한 분들을 위해 두어 장 추가 예약.


일 년이 눈 깜박할 사이 지나고

마지막 달.

찬 바람 부는 겨울 저녁,

봄부터 기다렸던 이 공연, 드디어 오늘 밤. 설렌다...

공연 전 맛있는 가족 외식도 즐거움을 더한다.

해마다 그랬듯이...


독일 작가 호프만의 동화에 차이콥스키 작곡, 프티파가 안무한, 130년 동안 공연되고 있는 크리스마스 최고의 낭만적 작품.


               -  네이버에서-



하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소녀 클라라(마리) 집에서 신비한 마술과 함께 즐거운 성탄 파티가 열린다.

파티가 끝나고 모두 잠든 밤, 생쥐들이 나타나 온 집을 망가뜨린다.

왕자가 된 호두까기 인형과 병정들이 나타난다.

대포를 쏘며 생쥐들과 대결을 펼친다.

생쥐들을 무찌른 왕자와 클라라는 아름다운 눈송이들의 축복 속에 사슴 썰매를 타고 환상의 나라로 떠난다.

그곳에서 세계 각국의 화려하고 재미난 춤들이 이어진다.

두 주인공, 왕자와 클라라의 사랑의 이중무(파드되).

각자 몇 번 턴하는지 세다 보면 저절로 박수가 나오는 이 이중무로 공연은 절정에 이른다.


간밤에 내린 하얀 눈으로 눈부신 성탄 아침.

지난밤의 신기하고 아름다운 여행에서 깨어난 클라라.

꿈이었다.

곁에 있는 호두까기 인형을 꼬옥 껴안는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해마다 노래는 물론 똑같다.

8개의 모음곡.

공연팀에 따라 스토리 버전이 조금 다르고, 해마다  의상들은 화려하게 바뀐다.

꽃의 왈츠 군무가 환상적이다.

공연은 거진 비슷 비슷하지만

공연 시기가  항상 연말 인지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식 ritual이 되어 버렸다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할 즈음

성탄트리를 꺼내어 다시 치장하고

성탄 케이크 스톨렌을 매일 조금씩 잘라 야금야금 먹다가

마침내 성탄절 아침을 맞는  리튜얼처럼.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이 공연이 작년에 다시 돌아왔다.

감격스럽게 우리 가족의 연말 연례행사가 다시 이어졌다. 

금년 공연에 같이 갈 초대손님은 아들 복지관을 이용하시는  몸이 불편하신 부부.

해마다 꿈 같은 이 무용을 즐기기만 했는데 작년에 공연을 보다가 슬며시 든 생각 몇 조각.


이 발레는 눈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른바 첫 번째 곡인 '작은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끊임없이 밤하늘에 내리는 눈.


성탄절 전날 저녁의 들뜬 마음같이 템포가 빠른 서곡이 연주된다.

하염없이 밤하늘에 눈이 내리는데, 치장한  어른 아이들이 삼삼오오 걸어서 파티가 열리는 클라라 집으로 향하고 있다.

거진 3분간 첫 번째 이곡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위에  (인조)눈이, 때로는 아직 열리지 않은 커튼 위로 눈 영상이 하염없이 내린다.

그렇다.

하염없이, 끊임없이, 셀 수 없이 하늘에서...

마치

하염없이, 끊임없이, 셀 수 없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이 한 해의 은총처럼!

 

'여호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시편 36펀 5절-


사무친단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과 땅 사이에

빼곡하게 박혀있단다.

이리저리 손 내밀어 휘저으면 마구마구 잡힌단다.

그러나 내리는 눈송이들이 땅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지듯

즉각 잡지 못하면 잊혀지는 기적들, 감사함.

그분의 선물들.

Notice small wonders!

소소한 일상의 기적들!



이 한 해도 그분께서 지켜주셔서

오늘도 이 자리에 있구나.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별과 달을 붙잡고 계셨고

머리카락, 손톱을 자라게 하시고

심장의 펌프를 작동케 하시고

수많은 불치병, 난치병에서 살짝 비켜서

오늘도 살아 남아 이곳에 있게 하셨다.

이 공연을 볼 수 있는 여유, 시간도 감사.

교통위반 딱지를 몇 번 받았지만 사고가 나지 않음도 감사.

좋은 이웃, 음악, 책...

.....

.....

모든 것이 그분의 선물이다.

내리는 눈송이들을 셀 수 없듯이 다 헤아리지 못하는 선물들.

하루하루 살 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치만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일상의 삶.

그분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으로 우리 가족은 오늘도 이 땅에서 살아

지금 여기서 이 발레를 보고 있다는 기적!

칠순의 우리와 마흔 된 장애인 아들에게 언제까지 이것이 허락될지 모르지만.

이 땅 너머 그곳에도 더 나은 본향이 약속되어 있기도 하지만...


물론 지난 한 해, 감사만 있었겠는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아득히 멀리 계셔서 보이지 않고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에게 손 내밀어  줄 누구 하나 없는 것 같아

늙은 여자가 무너져 펄썩 주저 앉았던 일.

살아야 할 이유가 구태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휙 지나갔던 순간.

사람과 세상에 대한 허탈감.


그런데 예술은 예술이다.

공연을 보노라면

뽀죽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차가운 가슴이 따뜻해진다.

섭섭한 일은 사라지고 감사한 일만 생각난다.

이 환상적인 발레가 생의 아름다움을 들추어낸다.

(점핑하는 무용수들을 보며 난 평생 저렇게 한번 날아 보지도 못했구나...

날기는 커녕, 무릎도 아프고 어깨도 아픈 나이.

얼마나 연습에 연습을 했으면 저렇게... )

아름답게 열심히 내년을 살고픈 의지가 생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아기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있는 12월에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본다.


       


        '아들의 호두까기 팜플렛 컬렉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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