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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y 19. 2018

야만이 야만을 지배할 때

책 <버마 시절 Burmese Days>  GEORGE ORWELL

약 한 달 전 일이다. 뒤늦게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듣는 나의 친구는 영어 산문 시간에 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 Burmese Days>이란 소설을 교재로 수업하는데, 강사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가 일본이 아니라 영국 식민지였다면 영어를 제2 모국어처럼 배웠을 텐데 쓸데없는 일본어를 배워서 안타깝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난 이 소설을 읽지 않아 모르겠는데(사실 이런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다), 소설에 나오는 영국인이 양심적이고 젠틀한 캐릭터였나 보다. 그 강사는 버마인들이 영국인 앞에서 영국 험담을 하며 자유롭게 의사 표현하는 걸 보며, 우리가 일제시대 때 숨죽이고 핍박받던 걸 생각하면 버마인들이 부럽기조차 하다는 말을 하더란다. 이왕 지배당할 거 영국의 식민지가 됐어야 했다며. 이 부분에서 친구는 소위 빡쳤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강사한테 따지고 싶은데, 자신의 울분을 논리적으로 말할 겨를이 없어서 일단 참았다고 한다. 다음 수업 시간에 또 그런 식으로 말하면 한 소리 해야겠다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 강사한테 말할 거냐고 물었다. 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그게 지금 할 소린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굴욕적인 것이지, 좀 더 관대한 지배자와 덜 관대한 지배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식민지 국가 입장에서 보면, 무력이나 강제로 주권을 빼앗고 경제적 약탈과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다른 국가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침략자일 뿐이다. 간혹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덕분에 근대화됐다는 정신 나간 소리 하는 노인들도 있는데, 당신이 딱 그 꼴로 보인다. 당신은 식민사관을 옹호하는 노예근성에 찌든 사람 같다. 일본이 아닌 영국의 식민지여야 했다니.. 조지 오웰이란 작가의 양심 한 조각이 반영된 소설만 보고, 영국이 일본보다 관대한 국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 아닌가. 대영제국의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들 국민에게 물어보고 그런 소릴 해라. 그들도 영국의 식민지배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관대한 문명국가의 식민지여서 기를 펴고 살 수 있었다고 감사해하는지. 영어는 식민지 지배를 안 당해도 얼마든지 익힐 수 있는, 수많은 언어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자유지만,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선 삼갔으면 좋겠다. 만일 내가 당신의 말을 오해한 거라면 미안한데,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앞으로 주의했으면 좋겠다.'


친구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 딱 그 말이라며 잘 정리(?)해줘서 후련하다고 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난 기어이 그 강사가 그런 요상한 발언을 하게 만든 조지 오웰의 소설 <버마 시절 Burmese Days>을 읽었다. 근데 읽고 나서 설마 했다. 이 소설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버마 시절>은 1920년 대, 지금은 미얀마가 된 버마에서 조지 오웰이 인도 제국주의 경찰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주의 정책을 비판한 작품이다. 그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는, 복잡한 역사적 분쟁을 겪으면서 영국에 의해 강제로 인도의 한 부분이 됐다. 즉, 한 나라가 아니라 영국령 인도의 한 지역인 것이다. 이 소설은 버마의 카우크타다라는 마을이 배경인데, 백인 제국주의자들이 조직한 클럽을 중심으로 영국인들과 버마 공무원, 현지 의사와 원주민들의 이야기다. 작가의 페르소나인 듯한 영국 남자 플로리가 주인공이다. 그는 다른 야만적인 제국주의자들과 달리 식민지 정책에 비판적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하지도 못하고 그곳을 벗어나지도 않는 무능하고 소심한 지식인다. 플로리라는 인물의 가장 큰 특징은 얼굴에 난 모반이다. 백인인 그에게 검은 모반은 혐오와 원죄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특히 여자 앞에서) 모반을 의식하며 감추려 한다. 종종 버마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를 보며, 백인들은 혹시 흑인의 피가 섞인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린다. 모반이 그 증거라는 의미심장한 농담까지 보탠다. 결국 체체에 순응하지 못한 플로리는 비극적으로 자살한다.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 경찰을 그만두고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노숙 생활을 하다 소설가가 됐지만, 그의 페르소나인 플로리는 이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나 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플로리를 제외한 영국인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잔인하고 극단적인 식민주의관을 가졌다. 그들은 인종적 편협함과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버마의 원주민들을 짐승 보듯 하며 어떤 접촉도 허용하지 않고 자신들끼리만 교류한다. 어떤 면에선 그들이 야만적이라 멸시하는 원주민보다 더 무지하고 야만적이다. 영국인들의 맹목적인 백인 우월주의와 오만한 제국주의는, 한 세기 전임을 감안하더라도 구역질이 날 정도다. 그들에게 굽실대며 기생하는 일부 원주민 검둥이(백인들 눈엔 유색인종은 모두 '검둥이'다)들도 파렴치하긴 마찬가지다. 작가가 한 줄기 양심이 있는 인물을 통해 그렸다 해도, 영국인 눈에 비친 당시 동양의 환경과 문화는 미개하고 혐오스러운 묘사가 대부분이다. 버마의 자연은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연 요새지만, 영국인들에겐 괴물 같은 스콜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눅눅하고 불쾌한 재앙일 뿐이다. 특히 이 소설엔 현지 특유의 냄새에 대한 묘사가 잦다.


우기에 논에서는 썩은 쥐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가 난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백단향, 마늘, 코코넛 기름, 인도 재스민 향이 뒤섞인 냄새가 풍겨왔다. 이 냄새만 맡으면 그는 머리가 욱신거렸다.

이 차는 아주 지독해 보이는군요. 진한 녹색이네요. 차에 우유를 타지도 않고요. (녹차를 마신 후) 우! 흙냄새가 나요.

(중국인 가게에서) 이 향신료 같은 것들, 냄새가 지독하군요. 생선 냄새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저것은 또 뭐죠?


현지의 강렬한 비주얼 쇼크에 적응되기 전에, 이 비틀린 백인 이방인들을 자극한 건 냄새다. 땀 냄새, 기름 냄새, 사람 냄새, 음식 냄새. 이런 불쾌한 냄새들은 백인들의 멸시와 인종차별을 가열차게 부추기고 정당화한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더위와 습기를 알코올 섞인 땀으로 배출하며, 식민지에 대한 소모적이고 비이성적인 공격과 험담을 멈추지 않는다.  

제국주의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플로리와 그의 버마인 친구 의사 베라스와미의 정치적 논쟁에서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 영국인은 반 영국적이고 인도인은 친 영국적이다. (당시 버마가 영국령 인도라, 정치적으론 버마 원주민은 인도인이다.) 베라스와미는 영국인들에 대해 광적일 정도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도 인도인인만큼 당연히 하위 계층이며, 타락한 인종이라고 생각한다.
플로리가 양심에 입각해 영국이 도둑질할 목적으로 이 나라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베라스와미는 그 덕분에 버마의 정글이 개발되고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기계와 배를 만들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할 수 있는 건 영국 덕분이라는 것이다. 영국 사업가들 덕분에 국토의 자원이 개발되고 문명화되어 유럽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됐다고 찬양한다. 플로리가 값싼 학교에서 싸구려 지식이나 가르쳐 유럽인과 경쟁하지 못하게 하고 산업을 파괴하는 꼴이라 항변해도 버마인의 찬양과 믿음(?)은 속수무책이다. 버마 현지인의 논리는 공고하다.

내 친구여, 이 문제에 관해서는 명성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요. 인도에서는 늘 이런 식이지요. 명성이 좋으면 올라가고 나쁘면 추락합니다. 유럽인들이 고개 한 번 끄덕이고 윙크 한 번 하는 것이 수천 장의 공식 문서보다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다. 이 불쾌한 기시감은, 우리의 식민지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굴욕적인 식민사관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피지배자들을 우리는 무수히 많이 봐왔다.


친구에게 정말 이 책을 읽고 강사가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보니, 수업 시간에 이 소설을 언급했지만, 교재로 쓴 것은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이라는 것이다. 뭣이라고?!! 이 책이 아니라고? 그 강사의 영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는 발상의 근원지는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라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그 에세이엔 조지 오웰의 양심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나 보다. 저런 영국인들의 식민 지배라면 받을 만하다고(?) 생각할 정도면.


난 그렇게 의지와 집념이 강한 스타일이 아니다. 이만한 일로, 지금까지 살면서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소설을 찾아 읽을 정도로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지도 않다. <버마 시절>은 다행히 진지하고 묵직한 소설이 주는 독서의 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 읽은 걸 후회하진 않는다. 사실 꽤 재밌는 소설이다. 하지만 <코끼리를 쏘다>까지 읽어야 하나, 좀 고민스럽다. 왠지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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