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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20. 2019

다정도 병이다!

영화 <The Meddler> 2015년

10여 년 전에 방영됐던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됐다. 잠이 안 오는 새벽에 TV를 틀었다 얻어걸린 것이다. 60대 초반 엄마는 늘 걱정을 달고 살며 노심초사다. 주로 자식들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개성 있는 그 집 자식들은 철없는 면이 있긴 해도 각자 알아서 잘 살고 있다. 집 형편도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엄마 표현대로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밥은 안 굶고 사는' 정도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믿고 의지했던 변호사 맏딸이 애 딸린 이혼남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결사반대하며 난리 친다. 서른여섯 살인 딸에겐 중매도 슬슬 재혼 자리가 들어오는 상황이다. 나이 찼어도 번듯한 변호사인데 뭐가 아쉬워 이혼남(이 남자도 변호사)과 결혼하냐며 진상을 부리신다. 싹수없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보기엔 그 엄마의 행태는 '진상'으로 밖에 안 보인다.


엄마 입장에선 실망하고 딸에게 배신감을 느낄 순 있다. 갖은 고생하며 희생해 뒷바라지했으니 보상심리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자부심이고 어디 가서 당당히 내세웠던 딸인 만큼 자랑할 만한 결혼까지 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문제다.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 그 자부심과 자존심 말이다. 어디 가서 자랑하고 싶으면,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거나 그럴만한 일을 하면 된다. 자식의 공은 자식의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건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자식의 몫이다. 반대로, 성인이 된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자책이나 허물이 되어선 안된다. 자식을 열심히 키워 사회에 내놓았으면 부모는 할 일 다 한 것이라 자족하면 된다.


죽을 때까지, 자식이 자신의 자랑과 만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엄마를 불행하게 한다. 자식이 변호사이지 엄마가 변호사가 아니다. 그리고 변호사면 변호사지, 그걸 갖고 우월감을 내세우는 것도 좀 그렇다. 물론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과 사회적 인식은 그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남의 부러움을 살 만하긴 하다. 그 엄마가 결혼을 말리는 건, 자식의 고생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그런 결혼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고 심지어 창피하고 망신스럽다 여기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건, 딸이 결혼하겠다고 하는 남자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 전처소생 떠맡기는 게, 그게 사랑이냐고 쏘아붙인다.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인가. 애를 안 좋아하는 개인주의자 딸이 이혼남의 (성격이 만만치 않은) 아이까지 감수하며 결혼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 남자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엄마의 논리대로라면 애까지 있는 이혼남은 초혼인 여자와 (감히) 결혼해선 안 된다는 것으로 들린다. 입장이 바뀌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가 그나마 합리적으로 내세우는 (남의 자식을 품을 만큼) 포근하지 못한 딸의 성품은 설득력 없어 보인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여자가 그것마저 극복하며 결혼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고 비장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후회해도 그건 딸의 몫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딸 인생을 엄마가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당장 난관이 예상되긴 해도,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좋을지 안 좋을지는 엄마도 모르는 일이다. 딸보다 오래 살았다고, 어떻게 딸의 몇십 년 후 미래까지 장담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지 모르겠다.


딸에게 생떼 부리듯 허락 못한다고 협박하는 엄마의 모습은 부질없고 안타깝다. 인간적으로 엄마의 심정을 헤아린다 해도 굉장히 무례하고 비정하며 다분히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엄마와 딸


늙은 엄마의 오지랖은 (아주 드물게) 귀여워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처치곤란이다. 마니(수전 서랜든 Susan Sarandon)는 1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딸이 사는 LA로 이사 왔다. 쇼핑몰이 즐비한 그곳은 돈 많은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다. 마니는 남편이 남긴 유산 덕에 돈 걱정은 없지만, 몹시 공허해한다. 드라마 작가인 딸은 매우 바쁘다. 매일 수십 통씩 전화하고 메시지를 남기지만 답이 없다.


로리(로즈 번 Rose Byrne)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자꾸 선을 넘는 엄마 때문에 몹시 난감하다. 범죄 드라마를 보고 공포에 떨며 전화하거나, 딸 집에 들이닥치는 건 다반사다. 헤어진 남자 친구를 들먹이며, 다시 잘해보라고 주책 떠는데 환장할 것 같다. 엄마는 공허해서 그러는 건데 딸은 숨 막혀한다. 엄마의 흘러넘치는 관심과 애정은 딸이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다.  


마니는 자식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거나,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몰상식한 엄마가 아니다. 위트 있고 여유 있는 중산층이다. 격의 없긴 해도 딸의 사생활을 지켜줄 줄도 안다. 남편의 부재로 힘들어하지만 끊임없이 위로와 관심을 바라는 피곤한 어른도 아니다. 그런데도 딸은 진저리 치며 도망치듯 뉴욕으로 떠난다. 일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우며.


보는 이에 따라선 귀엽게 보이는 이 늙은 엄마는 정말 묘하게 사람을 질리게 한다. 돈 많은 엄마를 둔 딸은 참 좋겠다 싶은 것도 잠시, 나 같아도 이 정 많고 유쾌한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것 같다. 선의와 애정을 가진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째서 가장 멀리 피하고 싶은 존재로 전락한 걸까. 영화를 보면 저절로 이해된다.  


마니와 남자 친구 지퍼


외로움과 공허함은 이 엄마를 귀여우면서도 밉살맞은 오지라퍼로 만들었다. 엄마들은 자기 자식을 모르는 것 같다. 자식이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제대로 한 적이 있던가. 자식은 오히려 부모를 외롭게 만드는 존재 아닌가. 살가운 자식도 더러 있고, 연로한 부모의 공허를 채우는 효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식들은 무신경하고 배은망덕하며 부모와 인생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건 자식들이 특별히 나쁘거나 싹수없어서가 아니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존할 만큼 다 자란 생명체는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 큰 성인이 부모에게 결혼 허락을 구하고, 때 되면 찾아가 인생 대소사를 의논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건 그나마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부모들도 예전에 자신의 부모를 적절히 떼어놓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식 낳고 살면서 자신의 과거는 깔끔하게 잊다시피 했겠지만.


인간관계에서, 특히 가족관계에서 객관적이긴 힘들다. 너무 개별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엔 집착일지라도 당사자들에겐 사랑과 관심이고, 냉정해 보이는 관계도 뜨거운 이성으로 유지하는 원만한 간격일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다정도 병'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조금 모자라면 섭섭하고 말지만, 넘쳐흐르면 피곤하고 신경 쓰이다 못해 진저리치고 끊게 된다. 섭섭한 건 채워줄 여지가 있는데, 흘러넘친 건 주워 담을 수 없지 않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유쾌하지만 때론 난감한 엄마


마니의 외로움은 서서히 완화된다. 딸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녀 관계의 치명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엄마를 찾는 딸을 확인하며 안도했을 뿐이다. 그녀는 딸 친구 커플에게 비싼 돈을 들여 결혼식까지 해준다.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체못하는 돈을 기쁘게 쓰기 위해서다. 부유한 미망인이 호구 노릇하는 것 같아 안타깝긴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관심과 돈을 필요로 하는 곳에 오지랖을 떨며 공허함까지 털어 버린다. 참고로, 나 같으면 그런 식으로 베풀지 않고 더 절박하고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쓸 것 같다.


그녀의 오지랖이 보는 내내 편하진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런 오지랖 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잡기도 한다. 솔직히 난 그런 엄마는 싫다. 유산이 충분해 노후를 윤택하게 보낼 수 있다는 건 자식 입장에서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내 친구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며 돈을 쓰는 엄마는 글쎄, 상상도 안되고 상상하기도 싫다. 이것도 엄마의 인생인데 네가 뭔 상관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엄마의 시간과 엄마의 돈은 엄마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으니까. 돈과 시간은 순전히 엄마 것이지만, 친구는 나와 먼저 관계를 맺은 내 친구들이니 나에게 먼저 의논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재고해 보라 말할 것 같다.


어릴 때 내 친구를 대했던 엄마를 떠올리니, 영화에서와 같은 일은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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