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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Feb 15. 2020

'포르테 디 콰트로'와 함께 하는 밸런타인데이

발렌타인데이 콘서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20. 2. 14.

                                                                                              

요즘 집 밖이 위험하다. 구구하게 설명 안 해도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실체 하는 바이러스 못지않게 다소 과장된 공포와 혐오가 더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이성과 합리보다 강한 건 병에 걸리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 치는 생명체의 본능이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목숨 걸고 덕질할 정도는 아니지만, 네 남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난 공연티켓을 취소했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떳떳하지 않은 마음으로) 고백하자면, 1월에 보려 예매한 연극을 수수료를 물며 취소했다. 바이러스 감염 위험 때문이라기보다, 괜히 뒤숭숭해서 코미디 연극을 볼 기분이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하루에 4시간 이상 뉴스를 보며 휩싸일 수밖에 없는 세기말적 불안에 나도 일시적으로나마 감염되었던 것 같다. 당장 어떻게 되는 게 아닌데, 그런 지엽적인 기피 행동이 생명을 보장하는 덴 한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비이성이 이성을 지배하게 방치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상태도 차차 나아지긴 했지만, 가끔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몇 달 전에 예매한 『발렌타인데이 콘서트』는 혹시나 취소될까 조마조마하며 하루하루 기다린 끝에 만난 무대였다. 포르테 디 콰트로는 1월에도 공연했지만, 난 작년 크리스마 이후 처음 보는 거라 (말 그대로)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이번 콘서트는 다른 아티스트와 나눠 가진 무대라, 시간의 짧음과 그에 비례하는 강렬함에 더 아쉽고 짜릿하고 황홀했다.


1부에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준 피아니스트 정재형과 콰르텟 연주자들, 오케스트라 모두 너무 감동적이고 훌륭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프로그램


2부에 등장한 포르테  콰트로 네 남자는 여전히, 아니 작년보다 더 멋진 카리스마를 뿜으며 무대를 장악했다. 오래간만에 오케스트라 반주에 더해 들려주는 하모니는 고막이 찢겨나갈 만큼 휘몰아치는 열창으로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어쩜 단 한 번의 무대도, 단 한 곡의 노래도 예외 없이 네 사람 다 그렇게 열심히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당연한 거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사람인데 늘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 목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슬쩍 나머지 셋에 묻어가거나 조금 성량을 낮춰 부를 법도 한데, 노래하는 AI도 아니고 매번 내일이 없는 것처럼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 박수와 환호를 아끼고 싶어도 아낄 수가 없다.


두어 달 만에 보는 네 남자는 여전히 훈훈하고 바람직했다. 넷이 마치 짠 듯 각각 다른 머리색이 새삼 눈에 띄었다. 벼리 군이 탈색을 젤 많이 한 듯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었고, 현수 군의 머리도 더 옅은 갈색으로 변했다. 태진 군은 다크 브라운인데, 조명 때문에 정확하게 본 것인지 모르겠다. 훈정이 형의 깔끔한 검은색 헤어 스타일은 변함없었는데, 곧 시작하는 뮤지컬 때문에 또 탄수화물을 거부하는 듯하다. 볼이 쏙 패인 게, 얼굴 옆선은 베일 듯 날렵하고 가뜩이나 단아한 핏이 더 슬림해졌다.


포르테 디 콰트로


밸런타인데이라 초콜릿 얘기에 이어 사랑의 수호신 밸런타인 성인까지 소환한 벼리 군. 그의 엉뚱한 매력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멘트에서 완성된다. 밸런타인 성인이라니... ㅎㅎ


팀의 달달함 담당이라는 태진 군. 그의 젠틀하고 스위트 한 매너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를 거니는 기린이 연상되어 잠깐 혼자 웃었다. 태진 군의 포근하면서도 중후한 목소리도 기린의 환영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하하하~~~) 무대에서 기린을 본 이후로 태진 군이 더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는 뭔지..


훈정이 형은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연신 공연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클래식 전용 공연장 성애자'인 형아는 지난해 『포르테  콰트로와 함께하는 노테 스텔라타』에 이어 또다시 이곳에서 공연하게 되어 무척 고무된 듯하다. 난 그 공연은 못 봤는데, 작년에 현수 군과 태진 군이 함께 한 『카사노바 길들이기 갈라 콘서트』를 봐서 이 공연장의 훌륭함은 몸소 느끼고 있었다. 형아는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도 무척 좋아하더니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도 내 집 같이 편안하다며 만족해한다. 그러고 보니 롯데 콘서트홀도 무척 좋아했었다. 그의 미소를 보니 내가 다 뿌듯하다. 이 형은 안 그럴 것 같은데 의외로 멤버들 중 제일 클래시컬하다. 지금까지 포디콰가 추구해 온 음악의 세계는 훈정이 형의 취향과 의도가 굉장히 많이 반영되었다는 걸 (너무나 당연하지만) 알 수 있다. 물론 다른 멤버들도 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악적 취향과 역량을 갖고 있지만.


다 짜 놓고 마치 안 짠 것처럼 아카펠라로 들려준 'Notte Stellata' 'Odissea'는 포디콰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카펠라를 하는 건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포디콰 네 남자처럼 짜도 안 짠 것처럼 그 과정의 어설픔마저 노출하되, 완벽한 신공으로 즉석 아닌 즉석 화음을 들려주는 팀은 없다. 넷이 마이크를 내리고 옹기종기 모여 서서 입을 맞추면 객석은 술렁인다. 그들의 특별한 선물은 아무리 자주 보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들이 '노테 스텔라타'를 부를 때 가방에 늘 상비하고 다니는 핑거 라이트를 켰지만, 객석이 환해서 잘 안보였을 것이다. 앙코르로  'Adagio'를 쏟아내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네 남자를 보니 이 완전체를 또 언제 볼까 싶다. 예정된 기약이 없으니 더 허전하다. 3월에 훈정이 형은 뮤지컬 공연으로 보겠지만, 넷의 슈트핏이 아른거려 어떻게 기다리나 싶다.


그깟 바이러스 때문에 너무 오래 네 남자를 기다리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정수리 요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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